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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傳(完) 여동생은 한국을 찾은 조카부부를 위해 한옥을 체험하라며 부천시에서 운영하는 전통한옥에서의 숙박을 마련했다. 널찍한 대청마루와 노란 종이장판이 깔린 온돌방이 꽤나 깔끔했다. 문제는 수요일 하루만 예약이 비어 있었다.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짐은 프런트에 잠시 맡긴 후에 남대문 시장을 아이들과 둘러보며 필요한 쇼핑과 식사를 했다. 오후에 아이들 고모부가 차를 갖고 와서 예약한 한옥으로 가방을 옮겼다. 다음날 사위의 외숙모와 경복궁에서 약속이 있다며 아침 일찍 한옥을 나섰다. 외숙모는 경복궁 영어 가이드 투어를 준비하고 조카부부를 구경시키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젊은이의 메카라는 홍대입구에 시간이 되는 조카들을 나오게 했다. 피난민의 자식으로 친척이 별로 없던 나는, 미국과 한국에 떨어져 살더라도 아이들만큼은.. 더보기
사위傳 제주에 정착하고 나서 일 년쯤 되었을 때, 세 아이 중에서 큰 아이가 가장 먼저 제주를 찾았던 때가 2012년 3월이었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제주공항 하늘 위까지 왔던 항공기는 갑자기 짙어진 해무 탓에 김포로 회항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다음날이 돼서야 겨우 조우할 수 있었다. "아빠,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고 안내방송을 하고 나서 계속 빙빙 돌기만 하는 거야. 30분도 더 그러더니 해무 때문에 착륙이 어려워서 김포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나는 해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답답한 거야. 그래서 스튜어디스를 불러 물어보았더니 옆자리 아저씨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더라." 그렇게 만난 아이가 자신이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다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려주었다. 원래는 남자 친구의 모임에서 만난 남자.. 더보기
9월 24일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현실에서는 소설이나 할리우드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일들이 실제로 종종 벌어진다. 15년 전 발생한 9·11이 그랬다. 민간항공기를 동시 다발적으로 공중에서 납치한 그대로 테러용 무기로 사용한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금년 7월 발생한 니스 테러도 비슷하다. 렌트한 25톤 트럭을 살인무기로 사용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스스로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자 강력한 욕구인 생명을 포기하면 이렇듯 상상을 벗어난 일이 발생하고, 자살폭탄 테러처럼 막기도 힘들고 피해도 크다. 지난 9월 24일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내 친구의 처형식 - 애너하임 35년 지기 촉탁살인'도 상상하기 힘들지만, 이민이라는 현실세계에서 발행한 실제 사건이라.. 더보기
행복과 전쟁 (이미 지난 글에서 여러 차례 논리를 제시했듯이)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인간의 3대 권리'로 생명(Life), 자유(Liberty), 행복추구(Pursuit of Happiness)를 들고 있지만, 생명이나 자유도 행복을 추구하는데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요소일 뿐이다. 오래전 국가고시를 준비하느라 유신헌법을 달달 외운 적이 있었는데, 당시 헌법조항 어느 곳에 '행복'에 대한 문구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은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추구'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추구(追求): [명.. 더보기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13) 대학 동창 C는 지방거점 국립대학 교수다. 학창시절 평범했던 그는 졸업 후 연세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지방 국립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졸업 후에는 만날 기회가 없던 그에 대한 소식은 고등학교 절친이었던 Y에게 들었다. Y는 일본의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유럽을 거쳐 국책 연구소에 있다가 지금은 자신의 모교에서 교수로 있다. 서로 전자공학 분야의 교수로 지내는 인연으로 학회 같은 곳에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Y는 C가 내 대학친구인 것을 알고 C에 대한 소식과 함께 평가를 전했다. "얼마 전 세미나에서 네 동창 C를 만났는데 대단하더라. 너희 학교 출신답게 자수성가 타입이야. 그런데 그쪽 교수사회에서는 완전 왕따 취급을 당하드만. 그 친구는 자기 할 일만 하고 전혀 다른 교수들과.. 더보기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12) 노인이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내가 젊었을 때 노인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위엄, 완고함, 일방적 훈시, 어려움, 소통불능 등이 연상되는 단어들이다. '노인'하면 떠오르는 과거 중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분이었다. 자칭 시인으로 수업시간에 자작시를 읽어주곤 했다. 무엇 때문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무슨 질문을 했다가 '경박하다'는 꾸지람을 공개적으로 들어야 했다. 경박하다는 단어의 뜻이 아니라 그런 말을 듣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 기억이 오래도록 남았다. 유일한 친가 쪽 인척 어른 중에 아버지보다 몇 살이 많으신 당신의 이모부님이 계셨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정년퇴직한 분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명절.. 더보기
제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내 인생에 전혀 계획에 없던 제주에서 살게 된지도 12월이면 6년이다. 2010년 12월 집을 구하러 다니던 당시를 생각하면, 6년의 시간이 마치 수 십 년이 된 양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100미터나 떨어진 곳에 촌로가 운영하는 구멍가게 하나 밖에 없던 곳에 편의점과 마트가 들어서고, 겨울철이면 오며가며 밀감을 따먹던 귤밭은 주택단지로 변했으며, 지금 이 글을 타이프하는 동안에도 건물을 짓는 망치소리가 요란하다. 새벽이면 잠을 설치게 만들던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는 사라진 공간에는, 화물을 적재한 덤프트럭의 굉음이 이른 아침의 고요함을 깨뜨리며 지나간다. 거실에서 바라보이던 아담한 밭도 누군가가 3층을 올려 시야가 가려버린 것은 물론 한낮의 햇볕도 막아버렸다. 그 자리에는 감나무가 있어서 내 소유.. 더보기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11) 사례 2. 출신의 한계를 연륜의 지혜로 극복하고 행복한 노후를 산, '빌 디마지오' 이너시티 그룹의 빌 디마지오는 최하층 빈민 출신이다. 막일꾼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불구가 되었으며, 16세 되던 해에는 어머니가 운명했다. 임대 아파트에 살며 자신의 형과 침대를 같이 쓸 정도로 가난했다. 간신히 10학년을 마친 그의 학창시절 지능검사는 80대 수준이었다. 지능지수로 보면 그는 터먼그룹 여성의 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쉰 살이 된 디마지오를 만나 본 면접원은, 그를 책임감 있고 헌신적이며 매력적인 남자로 기록했다. 작은 키에 뚱뚱하기는 했어도 여전히 젊음의 혈기가 넘치고, 얼굴에 표정이 살아 있어서 눈에는 총기가 돌았으며,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었다. 그는 면접원의 눈을 .. 더보기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10) 은퇴 후 가장 나빠지는 것이 '자식과의 관계'라는 기사가 어제의 뉴스를 장식했다.(뉴스 동영상 보기, 관련기사 보기) 은퇴 후에 소득감소로 인한 심리적 위축이 영향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베일런트 박사의 연구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연구 대상자들에게서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노후생활이 건강하고 만족스러웠다. 예를 들어, 그는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적 원인을 조사해 보았는데, 여성의 경우 아이들을 돌보느라 지쳐서 병원에 온 경우는 아무도 없었으나 병든 부모를 간호하느라 지쳐서 온 여성들은 있었다는 사실은 내리사랑을 증명한다. 부모를 간호하는 것은 노동이지만, 자식을 돌보는 것은 즐거움이다. 같은 땀방울이라도 노동과 운동으로 생기는 땀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자.. 더보기
단식 그 후(斷食 後) 혹자는 무슨 단식까지 하면서 건강을 생각하느냐, 먹고 싶은 것까지 참아가면서 건강하면 뭐 하느냐,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 세상이 뭐가 좋다고 오래 살려고 하느냐며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 분들을 부정할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 나 또한 과거에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다. 살아가면서 새로운 경험을 만나고, 그 경험으로 생각이나 신념까지도 바꾸며 사는 게 인생이다. 서른 살이 넘어 처음 만난 편도선 증세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편도선이라는 게 몸에 있는지도 몰랐던 내게,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할 정도로 편도선이 부어 며칠 고생하고 난 후부터 새벽에 일어나 뛰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직장생활이 몹시 바빠 형편이 되지 못할 때는 몇 달 씩 거르기는 했어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