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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민

후회와 인생 (이글은 '결단의 기로에 서서'라는 제목으로 '하얀물결'님이 2년 전에 쓴 글과 그 글에 대한 제 답글입니다. 약간의 편집을 했어도, 두 개의 글이라 읽기에는 약간 긴 글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역역이민 하신 어떤 분이 한국에 가서 살아보니 살 곳이 못 된다며 가지 말라는 글을 올렸었는데. 아마 거기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많은 공감이 가는 글이라는 생각에 '끌어올리기'를 했습니다.) 짧지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을 사는데 정답이 있다면, 어덯게 하든 그 정답을 알아내서 그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정답대로 잘살아갈텐데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생사에 정답이 없다보니 살아가는 동안,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한치 앞도 모른 채 어느 한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 더보기
거짓과 기만 (4) 4. - 야, 이 새끼! 군대 가더니 또라이 됐네. 그 똘똘하던 듀크는 어디 가고 어디서 꼴통이 되어 나타났네. 친구들이 면회 온 바람에 외출 나와, 부대근처 주막집에 자리를 잡고 소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고 있을 때, 광주사태를 운운하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대해 욕을 해대던 친구들에게, 내가 전두환을 옹호하자 친구들이 난리를 쳤다. - 주막 주인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가라고 쫓아내기도 했었다. 하하하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란 의미) 전두환이란 인물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군대 시절이다. 서부전선 25사단 포병대대 PX에서 전우신문에 게재된 그에 대한 글을 읽었다. 34년 전 이맘 때이었을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늦게 입대한 군에서, 아마 쫄병을 겨우 면할 때이어서 그 정도 여유는 .. 더보기
역이민 하지 마세요! 레이오프 당한 후, 2년에 가까운 서바이벌 노력이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온지도 어느덧 3년이 넘었다. 위축되고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고국이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30년 넘게 직장생활만 했으니, 50대 중반의 나이에 재취업도 힘들었고, 경험도 없는 비즈니스를 하기에도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비즈니스를 새로 시작해서 어려워 하는 친구에게 얼마간 도움(투자)을 주고, 집사람과 같이 그곳에서 일(단순노동)을 해서 생활비나 벌어보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간 LA 이었지만, 결국 노후생활을 위한 자금만 축낸 셈이 되고 말았다. 사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비록 늦은 나이긴 하지만, 생존을 위해 기술이라도 배워 테크니션으로서 살아보려고 시도했으나, 속고 속이는 아수라판(?)에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어서.. 더보기
인터넷에서 가져온 역이민 관련 글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역이민 관련 글들을 보고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참고하실 정도는 됩니다. 1. 지난 11월 20일에 방영한 KBS 뉴스 보도 내용입니다. 제목입니다. [앵커&리포트] 역이민 급증…국내 ‘동포 타운’에 관심 고조 (원문을 보시려면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758746&ref=A 을 클릭) 2. 다음은 지난 9월 2일에 작성된 글로, LA의 미국 이민법 변호사가 작성하여 본인의 블로그에 올린 글로 원문은 http://blog.daum.net/usalawyer/792 에 있습니다. 제목은 ''갈등 공화국'에 역이민 하려면'으로 갈등 공화국인 한국으로의 역이민은 가급적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 더보기
역이민에 적합한 사람들 - 둘 (2013년 3월 29일에 쓴 글) - 우리 나중에 아이들 다 키워놓고 나이 들면 한국에 나가 살아야 하는 거 아니니? ○ 야, 이 자식아! 거기 뭐 있다고 가서 살 생각을 하냐? 숨겨놓은 작은 마누라가 있길 하냐, 꿀 발라놓은 떡 감춰둔 게 있길 하냐? 인간들 바글바글하고 네편 내편 갈라 편싸움이나 하기 좋아하는 곳을 뭐 좋다고 가냐? 친구들이야 가끔 가서 보면 되고, 시니어가 되면 그린피도 반값인데, 여기서 골프나 치고 살면 되지, 한국에 가서 살 필요 있냐? 야, 난 거긴 가서 살기 싫다! 귀국해 살면서, 오래 전 콜로라도에 사는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리곤 한다. 81년에 미국으로 간 친구는 나보다 이민 15년 선배인데, 이민 초보자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사인.. 더보기
역이민에 적합한 사람들 - 하나 (2013년 3월 28일에 쓴 글) 내 경우는 무슨 계획을 하고 한국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평생 직장생활만 한 사람으로서 경제위기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해고되고 당혹감 속에서 몇 차례 실패를 거듭한 이후, 이렇게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한국에서 덜 쓰고 마음 편히 사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게 된 동기와 계기가 있긴 했지만, 거의 애드혹(ad hoc)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그렇게 돌아왔으니,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었다. 집을 구하는 문제부터 모든 것이 듣고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틀렸다. 어떤 동네에 사는 것이 좋은지 충분한 검토 없이, 정착자금으로 계획한 금액을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그것도 다급하게 - 이삿짐이 이미 부산항에 도착하였기에 - 구할 수 밖에 없었다. 게.. 더보기
대화와 공감 (2012년 12월 21일에 쓴 글)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운 이유는 스스럼 없는 대화일 것이다. 말을 하는데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오는대로 지껄이고 떠들다보면 잡념도 없어지고 스트레스도 풀린다. 이민생활에서도 그랬다. 교회나 성당에도 나가고 열심히 구역회도 참석하는 것도 그곳에는 이민자들이 겪는 공감이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즉 대화가 되는 상대를 만나서 웃고 떠들며 서로 고충을 토로하다보면 이민생활의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때로는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나는 그랬다. 한국으로 돌아와 살게 되면서 느끼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바로 대화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거다. 친구들도 옛날 같지가 않다. 지난말 몇 년 만.. 더보기
한바탕 잘 놀았습니다! (2012년 11월 17일에 쓴 글) ○ 옛날 직장동료나 내 친구들을 봐도 그냥 한 자리에 계속 있었던 사람들이 다 잘 된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제주를 떠난 사람들도 마찬가지라, 그냥 제주 토박이로 산 분들은 고향에서 터잡고 웬만큼 잘 사는데, 외지로 가서 사업한답시고 떠났던 사람들은, 잘 안 되서 제주로 다시 돌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년 전에 옛 직장동료를 만났더니 그러더군요, 내가 그냥 있었다면 최소 처장은 하지 않았겠냐고. 물론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겠지만. 30년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겠다는 말을 사촌매제로부터 들었을 때, 위로의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 - 형님이나 나나 한바탕 잘 놀았다고 생각하면 되지요! 제주에서 태어나 미국이라는 넓은 땅에 가서 실컷 잘 놀았지 않습.. 더보기
거소증과 CITI Bank 통장 (2012년 11월 6일에 작성한 글) 한국으로 돌아온 지도 어느덧 2년이 되어, '외국국적동포국내거소신고증'(이하 거소증)을 연장하라는 편지를 두어 주 전에 받았습니다. 저는 국내에서 비자를 받지 않고, LA 영사관에서 F-4 비자를 받아서 온 경우라서 인천공항에 입국한 날짜가 바로 체류기한이 시작하는 날짜가 된 것입니다. 즉, 거소증 발급일자는 2010년 12월 17일인데 체류기한은 2012년 11월 13일로 되어 있습니다. 해서 지난 주에 거소증 체류기간 연장신청을 했습니다. 여권과 거소증, 그리고 수입인지대 3만원이 필요했습니다. 갱신이라 사진은 필요 없었고, 양식을 작성하는데 10분, 기다리는데 10분, 담당자가 처리하는데 10분, 총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뒷면에 펜으로 적은 것이 전부라 담.. 더보기
한국이 좋으십니까? (2) (2012년 10월 8일에 작상한 글) 대구 MBC 창사특집으로 지난 9월 27일과 28일에 방영한 '독일 경상도 사람들'이란 프로를 보았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14년 동안 광부로 또는 간호원으로 독일로 간 분들 중에 특히 경상도 출신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어느 분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박정희 정권때 일종의 특혜가 아니었나 하는 말씀이 있어서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웃고 말았다.) 단순하게 광부나 간호원의 일을 했다고 피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고생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지하 천 미터를 내려간 갱도는 40℃ 이상에 95%의 습도이었다고 한다. 벌거벗고 일해도 장화에 땀이 가득차서 가끔씩 벗어서 거꾸로 들고 쏟았다고 한다. 독일에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