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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10)

은퇴 후 가장 나빠지는 것이 '자식과의 관계'라는 기사가 어제의 뉴스를 장식했다.(뉴스 동영상 보기, 관련기사 보기) 은퇴 후에 소득감소로 인한 심리적 위축이 영향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베일런트 박사의 연구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연구 대상자들에게서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노후생활이 건강하고 만족스러웠다. 예를 들어, 그는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적 원인을 조사해 보았는데, 여성의 경우 아이들을 돌보느라 지쳐서 병원에 온 경우는 아무도 없었으나 병든 부모를 간호하느라 지쳐서 온 여성들은 있었다는 사실은 내리사랑을 증명한다. 부모를 간호하는 것은 노동이지만, 자식을 돌보는 것은 즐거움이다. 같은 땀방울이라도 노동과 운동으로 생기는 땀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자식들에게 연로한 부모를 돌볼 의무가 없다는 말이냐?'라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에 의하면 '리어왕의 비극'처럼 자식이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많은 비극이 발생한다. 즉, 어린 사람들을 키우기 위해 나이 든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는 아니라고 한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오랫동안 유지된 가부장제도나 서구의 노예제도가 사회안정에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젊은 며느리들이 시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이나 비자발적인 강제 노예생활은, 적어도 성인발달에서만큼은 걸림돌이라는 주장은 그럴듯하다.


그는 65세가 넘은 그랜트와 터먼 그룹에게, '자녀들에게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가르쳐 준 것만 강조할 뿐, 자신이 배운 것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기 일쑤고 심지어 그런 질문에 몹시 당황하기도 했다. 주저 없이 답하는 대상자들은 100% 만족스러운 노후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을 의미할까? 자녀들과의 관계를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의존한다는 사실만 강조하다 보니,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기 쉽다. 특히 '낀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이런 경향이 심하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모든 필요한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이미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 배울 생각은커녕, 낡은 지식과 뒤떨어진 사고방식으로 무장하고 단지 오래 살았다는 핑계로 경험을 가르치려고 든다면 자식들에게 좋은 이미지의 부모가 될 수 없다.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내가 아이들에게 배워? 뭘? 무얼 가르쳐 주었는지 물어야지, 어떻게 반대로 물어보나?" 이렇게 반문하며 당황했을 것이 틀림없다. 터먼의 여성처럼 아이큐가 높지도 않고, 하버드 출신처럼 학력이 좋은 것도 아니니 당연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아이들이 나보다 - 최소한 내가 그 나이 때보다 - 똑똑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책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뭘 배워야 하지?


다음 달에 딸아이가 자기 신랑과 함께 한국에 온다. 한국계 회사에 다니는 덕분에 기회가 생긴 딸의 출장에,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와본 적이 없는 사위가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출장 말미에 3일의 휴가를 낸 덕분에 5일 가량의 여유가 생겼다. 딸과 한국에서의 일정을 이야기하면서 딸 부부가 서로를 극진히 배려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그 아이에게서 배울 것은 바로 부부간의 배려심이다.


얼마 전에 SSA를 알아보려 인터넷으로 접속을 했는데 몇 년 만의 접속이라 그런지 전화번호를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따랐다. 딸아이의 번호를 넣으니 그 번호로 전송한 코드를 몇 분 내로 입력하라고 한다. 다급한 마음에 딸에게 전화했고, 아이의 짜증을 들었다. "아빠, 지금 고속도로 운전하고 있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뻘쭘해진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끊을 수밖에 없었다. 5분도 안 되어 아이에게 전화가 다시 왔다. "아빠, 아까 신경질 부려서 죄송해요. 퇴근 중에 갑자기 받아서 그랬어요. 코드 알려 드릴게요."


입력시간이 지나 버린 코드는 다시 받아야 했지만, 아이에게 배울 것은 분명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바로 행동에 옮겼다는 점이다. 또 유머감각도 있다. "아냐, 운전 중인지도 모르고 전화한 내가 잘못했지."라는 내 말에는 이렇게 대꾸했다. "에이, 거짓말! 기분 나빴으면서, 헤헤헤."


두 딸 다음은 아들이다. 녀석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무엇을 하든 열심이고 성실하며 신중하다. 여러 사람이 말렸던 일이긴 해도, 작년에 캘리포니아에서 자동차 스모그(Smog) 테스트 비즈니스를 인수해서 해 볼 생각을 잠시 했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업이니 아들에게 자세히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녀석은 조목조목 문제점을 열거하고 분석한 결과와 함께 반대한다는 의견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올바른 판단은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야 하는데 현업에서 떠나 은퇴한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같은 조건에서는 젊은 사람에게 질 수밖에 없다. 자식보다 나를 성의껏 도와줄 젊은이들이 있을 수 없다.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상담자들은 내 아이들이다.


<후기>

'자녀들에게 무엇을 배웠습니까?'라는 질문에 곧바로 답할 수 있습니까? 'Yes'라고 했다면 행복한 노후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No'라는 답을 하셨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확실히 인정할 수 있는 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구체적인 이유와 사례를 함께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노후에는 지금보다 보다 행복해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성인이 된 자식들에게 '~~ 해라' 든가, '~~ 하지 마라'는 명령조의 말은 하지 말아야 할 1순위입니다. 바로 꼰대 짓이니까요. 특히집에서나 음식점에서 식사 중에는 더욱 더 금물입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아이들이 부모를 만나러 두 번 올 것이 한 번으로 줄어드는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말을 해서 자식들이나 손주 볼 기회가 줄어든다면 누구의 손해일까요? 행복한 노후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스스로에게 그 출발점이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던 한국인의 조사에서도 원인은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있을 겁니다. 은퇴한 것은 자식이 아니라 자신이니까요.


저는 야구 팬입니다. 그중에서도 LG 트윈스를 좋아합니다. LG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쌍둥이를 낳기 전부터 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의 팬이었습니다. 정규리그 막바지인 요즘 그 엘지가 연승을 해서 신이 납니다. 어제는 2대 0으로 지고 있다가 8회에 동점을 만들더니 연장 11말 투아웃 이후에 끝내기 홈런으로 삼성에게 이겼습니다, 하하하.


▼ 엘지의 이천웅 선수가 끝내기 홈런을 치는 장면

▼ 엘지의 이천웅 선수가 홈런을 확인한 후, 환호하며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다.

▼ 엘지의 이천웅 선수가 동료들의 축하 세레머니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