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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12)

노인이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내가 젊었을 때 노인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위엄, 완고함, 일방적 훈시, 어려움, 소통불능 등이 연상되는 단어들이다. '노인'하면 떠오르는 과거 중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분이었다. 자칭 시인으로 수업시간에 자작시를 읽어주곤 했다. 무엇 때문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무슨 질문을 했다가 '경박하다'는 꾸지람을 공개적으로 들어야 했다. 경박하다는 단어의 뜻이 아니라 그런 말을 듣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 기억이 오래도록 남았다.


유일한 친가 쪽 인척 어른 중에 아버지보다 몇 살이 많으신 당신의 이모부님이 계셨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정년퇴직한 분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명절이면 선친 대신 찾아가 뵙곤 했다. 1990년대 초 옛날이야기를 말씀하시던 어른이 갑자기 벌게진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시는 게 아닌가. 일어나서 오래 된 앨범을 갖고 오시더니 낡은 사진을 보여주며 소리내어 우셨다. 나는 송구한 마음에 당황스러웠다.


해방 전 평양에 있을 때 우리 집안에 얽힌 이야기를 그때 난생처음 들었다. 그분과 내 할아버님은 동서 간이었으나 나이 차가 25년 이상 나서 무척 어려웠다고 했다. 아버지가 결혼할 때 부조를 적게 했다고 불려 가서 혼났다는 옛이야기를 하셨다. 평양 근교에서 20마지기 정도의 논밭을 일구어 근근이 사시던 할아버님은, 국민학교 교사이었던 어린 동서가 넉넉하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었다.


'무뚝뚝하고 대단했던 분도 연세가 드니까 별수 없이 이렇듯 약한 모습을 보이는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한국 체육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이었다. 생전에 아버지는 이 어른의 일이라면 쫓아가 머슴처럼 일했고, 나는 한 번도 이분과 자상한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65세 정년 시까지 매우 활동적이고 건강하셨던 분이었는데도 은퇴 후 갑자기 노인이 되더니 10년도 안 된 74살에 돌아가셨다. '한국문화 대백과사전'에는 이분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광성고등보통학교 재학 때인 1936년에 제3회 전조선 중등학교 육상경기 선수권대회에서 저장애(低障碍)와 높이뛰기 우승, 세단뛰기 2위, 1937년 제4회 전조선 중등학교 육상경기 선수권대회에서 고장애와 세단뛰기 우승, 높이뛰기 2위, 그리고 1937년 제3회 전조선 육상경기 선수권대회에서는 세단뛰기에 우승하는 등 광성고등보통학교의 전국 제패에 크게 이바지하였다."(출처보기)


책을 읽는 가운데 추억을 떠올리며 당시의 어른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성인발달이라는 관점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년 후 찾아온 허탈감이나 상실감에 대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가 성숙하지 못했으며 만족스럽지 못한 노후생활을 지냈다. 명예교수로 서울대를 정년한 후에도 몇몇 대학에 한두 해 강사로 나갔으나, 그것마저 떨어진 다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나 계획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50년 전 기억 속에 이 어른은 한겨울의 다다미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논문을 쓰거나 책을 집필했을 정도로 일과 공부밖에 모르는 분이었다.


그랜트 집단의 연구 대상자들은 하버드 출신답게 명사들이 많았다. 미국 대통령부터 상원의원, 유명한 물리학자, 훌륭한 판사나 변호사, 의사와 교수까지 사회 지도층이 망라되어 있다.


그들 중의 하나인 저명한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늙어가면서 점점 더 행복해졌다. 젊음에 반해 일반적 미국인들에게 노년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면서 부족함을 채워나가며, 무난하게 잘 사는 법을 터득했는데 그 시간이 60년이나 걸렸다. 내 삶은 병든 부모, 전쟁, 상대적 빈곤, 한 번의 결혼 실패, 회의와 좌절감, 술, 방황과 같은 비참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노인이 된 지금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되었으며, 비교적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갖추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복한 가정에서 자란 또 다른 하버드 졸업생은 이렇게 말했다.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는 아내와 잘 지내는 법을 배웠고, 서른 살부터 마흔 살까지는 일에서 성공하는 법을 배웠다. 마흔 살에서 쉰 살까지는 내 개인적인 일보다는 아이들 걱정을 더 많이 했다.” 78세가 된 그를 만났을 때 멋진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즉 성인이 된 뒤 첫 20년은 친밀감과 직업적 공고화라는 자신의 일에 집중했으나 그 뒤에는 자신의 일에서 벗어났다. 이 졸업생은 저명한 교수로 지내다가 나중에는 대학의 학장이 되었다.


반면에 터먼그룹의 여성들은 높은 지능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자신의 일보다는 부모와 남편을 위해 희생하면서 자아가 위축되는 삶을 살았다.


누구나 노년은 비참할 수도, 즐거울 수도 있다. 성인발달 6단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성취를 보이느냐에 달렸다.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노후는 대체적으로 불행했다. 20대 젊은이들보다는 70대 노인들이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할 확률이 훨씬 높다. 프로이트는 "젊어서 창녀가 늙어서 수녀가 된다"라고 말했다. 성적 욕망이 넘치는 이탈리아의 젊은 바람둥이 귀족이 나이가 들면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처럼 이타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성적학대를 당한 사람이 노년에 이르러,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을 학대한다면 방어기제가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봉사를 하거나 성적학대 피해자를 위해 상담 역할을 하며 스스로 과거의 상처를 치료한다면 그것은 성숙한 방어기제가 된다. 터먼 그룹의 연구에 의하면 여성의 성적 만족감(오르가슴 빈도)도 친밀감보다는 생산성(연륜의 지혜) 단계를 성취한 연구 대상자가 높다는 결과를 보였다.(책 172페이지)


성공적인 노화란 무엇일까? 혹자는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그에 대한 정의는 다르더라도 확실한 것은 60년의 추적조사한 결과, 남성이나 여성이나 정신건강만큼은 노년으로 갈수록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후기>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습니다. 아마 젊었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이만한 감동을 갖지는 못했을 겁니다. 어려움과 시련을 거치며 60년을 넘도록 살았기에, 그 경험이 더욱 가슴을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도움을 구하거나 상의 친구도 없던 미국에서, 40대 후반에 만난 뜻하지 않았던 불행에 대응하는 방법이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을, 책을 몇 번씩 정독하며 절절하게 깨달은 것도, 그 내용을 글로 옮겨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이유입니다.


또 저를 즐겁게 하는 사연도 생각해냈습니다. 제주에 와서 이 카페를 만들고 열심히 글을 쓰는 것은 '성숙한 방어기제'라는 위안입니다. 본문에서 예를 들었던, 성적학대를 받았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비슷한 사람들을 상담해주는 것과 비슷하니까요. 유치한 공치사라고요? 들켰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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