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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죽여주는 여자 박카스가 약인지 음료인지는 모르겠으나 약방에서 팔았으니 약으로 생각한다. 그 박카스를 처음 마셔 본 것은 중학교 입시를 보러 갔을 때다. 아마 1967년 12월이었을 거다. 아무튼 무척 추웠던 것만큼은 확실히 기억난다. 용산 남영동에 위치한 용산중학교 교문으로 들어가는 나를 붙잡아 세운 엄마는 어디를 다녀오더니 따끈한 박카스 병 두 개를 내밀었고, 나는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들이켰다. 그런 정성도 무색하게 낙방하고 말았으니, 나는 지금까지 박카스를 누가 주는 바람에 먹었을지언정 일부러 사 먹은 기억은 없다. 요즘은 광고를 볼 수 없지만 TV가 별로 없던 그 시절에 박카스 광고는 매시간 나왔고 “피로회복을 위해 동아제약 박카스D를 마시자!”라는 선전문구는, 박카스를 마시지 않는 내게도 각인되어 있다. “끼.. 더보기
내일(來日)의 의미 ‘내일(來日)’이라는 단어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내일과 함께 연상되는 단어는 ‘희망’이다. 사람이나 어떤 상황에 따라서는 내일과 희망은 같은 의미로 인식되기도 한다. 최소한 우리 세대는 그랬다.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는 확실히 그랬다. 아니다, 지금까지 그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는지 모르겠다. 희망은 추상명사다. 오감으로는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없는 실체는 느낌으로 알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 실체가 나아진다거나 좋아진다는 의미라는 걸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내일=희망’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을 버틸 수 있는 것은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희망적’이라는 상태보다 인간에게 시련을 견디.. 더보기
자살하는 사람들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장 많이 듣는 사건 사고 중의 하나가 자살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최진실 가족의 비극적인 자살부터, 자살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강원도 펜션에서 벌이는 집단 자살과 최근의 빈곤 자살까지, 뉴스에서 전해지는 자살은 주요 뉴스에 끼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새어나온 연탄가스로 어디서 일가족이 또는 아이들이 사망했다는 1960년대 뉴스를 듣는 듯했다. 어렸을 때 가정에 TV는 없었고, 라디오가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시절,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연탄가스로 인한 사망소식을 전했었다. 서울에서, 인천에서, 부산에서, 대구, 광주에서 연탄가스로 누가 죽었다는 소식처럼, 누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거의 날마다 이어진다. 자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1970년대, 4장짜리 신문 시절,.. 더보기
경쟁하는 자살 공화국 (2011년 11월 17일)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지난 날 60년대는 무척 가난했다. 요즘같은 계절이면 연탄걱정, 김장걱정으로 한숨을 쉬시던 부모님 모습이 떠오른다. 연탄을 몇 백 장 들여 놓아야 겨울을 날 수 있었고, 배추와 무를 몇 백 개씩 김장을 해야 봄까지 먹고 살 수 있었다. 비좁은 단칸 방에 아버지, 엄마, 동생들, 그리고 나 다섯 식구가 생활했어도, 아버지 코고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 못이루는 일도 없었고, 입김이 허옇게 뿜어져 나와도 추워서 잠 못 자는 일도 없었다. 꽁치 반토막만 있어도 그 날 저녁은 더없이 행복했고, 김치찌게에 돼지고기라도 몇 첨 들어가면 그것은 밥도둑이었다. 아버지가 약주를 드시고 사온 센베이 과자 한 봉지에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가 되었고 자식이 되었었다. 스트레스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