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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최순실의 탐욕 10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 생각난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2008년에 터졌지만, 그 전조는 이미 2007년부터 나타났었다. 아니 2006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2006년 말까지 미국의 부동산 값은 미친 듯이 올랐으니까. 뉴저지 중부 '브리지워터(Bridgewater)'에 있는 천 스퀘어 피트(28평)도 안 되는 2베드 2베스 콘도(한국식 아파트)가 30만 불 중반대 가격이었다. 2007년 4월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의 파산을 시작으로 줄줄이 대형 금융회사가 쓰러져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상상하지도 못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파생상품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 어려운 용어를 이해하게 된 것은 회사에서 레이오프되고 할 일이 없게 된 이후였다.. 더보기
탄핵 독후감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탄핵 심판 선고일에 이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심판결과를 주문했다. 이로써 작년 12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의결된 후로 숨 가쁘게 진행된 대통령 탄핵은 예상대로 인용되었고, 작년 10월 말부터 이어진 촛불집회도 지난 토요일로 막을 내렸다. 60 평생에 처음 겪는 대통령 탄핵이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한국에 없었을 뿐더러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번은 달랐다. 유신시대를 살아온 당사자로서 그때의 씨앗으로 집권한 박근혜 정부에 관심이 많았을 뿐더러, 은퇴자로서 할 일이 별로 없는 겨울이라 시간도 많았다. 지난 4개월 동안 독서할 시간도 없이 오후 2시부터 잠잘 때까지 각종 뉴스를 쫓아다니고 이.. 더보기
내 아들은 비정규직 자식들이 모두 성인이 된 탓인지, 아니면 은퇴하고 아이들과 멀어져서 무기력하게 사는 자격지심 탓인지는 몰라도 아이들 눈치를 보게 된다. 너희들이 보고 싶어서 뉴저지에 가려고 하는데 언제가 좋겠느냐고 물어본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딸아이의 결혼식 때 갔다 오면서 남은 아이들도 곧 짝을 만날 걸로 생각했고, 어차피 그때 가면 될 걸로 생각했던 것이 벌써 4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미혼인 딸은 남자 친구를, 아들은 여자 친구를 만나 사귀는 것 같더니 헤어지고 말았다고 들었다. 4개월 전에 딸과 사위가 다녀갔지만, 그 아이들이 다녀간 이후로 마음에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여행은 그때 가봐야지 알아요. 요즘 일이 많아지고 있어서요." 아들에게서 받은 카톡이다. 이번에 가면 아이들과 멀지 .. 더보기
노무현과 트럼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처음 참가한 투표가 2008년 오바마가 출마한 대선이었고, 오바마는 그때까지 내가 선거에서 투표한 사람으로 당선된 첫 대통령이었다. 그 오바마가 오늘로 두 번의 임기를 끝내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금융위기 때 해고된 나는 평상시의 네 배가 넘는 장장 98주에 걸친 실업수당 덕분에 2년 동안 생계유지에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레이오프 전까지는 정치나 경제 같은 시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에, 오바마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실업자가 되어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기도 했지만, 미국의 금융위기를 가져온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궁금증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면서 시사에 관심을 .. 더보기
디지털 세상에서 디지털의 반대 개념은 아날로그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아날로그 밖에 몰랐던 세대가, 디지털이란 단어를 처음 접한 게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대학시절 후반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디지털 공학’이라는 과목에서 부울 대수를 배웠는데 사뭇 낯설었다. ‘1’과 ‘0’만으로 수를 만들고 계산을 하는 것인데, 산수인지 수학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공부하라고 사준 휴대용 계산기를 전당포에 잡히고 술 마셨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게 사회에 나와서 처음 컴퓨터를 접했으니 입문과정이 쉬울 리가 없었다. 내가 처음 본 11MB짜리 하드디스크는 작은 냉장고 크기였고 전원을 넣으면 디스크가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몇 분을 기다려야 데이터를 읽을 수 있었다.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더 작은 메모리에 100GB 이상.. 더보기
군주민수(君舟民水) 교수사회를 대변하기 위해 1992년에 창간되었다는 교수신문에서는 2001년부터 해마다 12월 말에 그해를 대표하는 ‘4자성어(四字成語)’를 교수들의 투표로 결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시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미 들어 알고 있겠지만, 2016년을 정의하는 4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로 결정했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과 같아서 직접적인 의미는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는 것처럼 민심을 거스른 임금은 백성에 의해 끌어내려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3년 전 봄 진도 앞바다에서 뒤집혀 246명의 단원고 학생을 포함 304명이 사망했던 세월호 사건과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어 직무가 정지된 일련의 사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와 2015년의 ‘혼용무.. 더보기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 뉴스는 대부분 자극적이다. 자극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뉴스도 상품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과 마찬가지 이유로 눈에 잘 띄도록 하기 위해서 자극적일 필요는 충분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바카라로 수만 불을 잃었다는 것보다는 어쩌다 당긴 슬롯머신에서 수십만 불이 쏟아졌다는 기사가,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거나 부동산으로 도널드 트럼프 같이 거부가 되었다는 기사가, 도박이나 주식, 부동산 투자 잘못으로 파산했다는 기사보다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당연하다. 뉴스의 소비자는 독자지만 수익은 광고주로부터 온다. 독자가 많은 뉴스나 시청률이 높은 방송에 광고가 몰리고 수익은 커진다. 주식투자 대박기사에는 증권회사의 광고가 몰리지만, 주식실패로 자살한 사람의 기사에 광고하는 회사는 없다. 이민도 마찬.. 더보기
아들과 바둑, 그리고 하사비스 “아빠는 바둑을 배우라고 하는데, 저는 무엇 때문에 바둑을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바둑은 왜 두는 거예요?” 몇 해 전 아들과 대화중에 들었던 말이다. 나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속으로 한숨만 쉬었다. 기억은 5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다. 코흘리개 시절 방학이면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친척집에서 지냈다. 나이가 열댓 살이 많은 고모와 삼촌들도 있었지만 나보다 어린 삼촌도 있었다. 매미소리가 요란하던 어느 여름날 대학교수인 할아버지와 대학생인 삼촌이 대청마루에서 바둑을 두었다. 나와 내 또래 삼촌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바둑판을 구경했다. “야, 야, 여기 한 수만 무르자, 거기가 아다리(註: 단수를 의미하는 일본어로 당시의 언어)인 걸 못 봤어. 그냥 따면 어떡해.” “아버지 무르는 게 어딨어요, 이것.. 더보기
빗나간 모성애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그 친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성(姓)이 ‘황’이라는 것만 생각날 뿐. 그는 아이스하키 선수로 입학한 친구였다. 당시 그 고등학교는 6대1이 넘는 후기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내가 5회 졸업생일 정도로 신생이었던 학교는 별 볼 일없는 축구부도 있었으나, 아이스하키는 대회마다 중동고등학교와 우승을 다투곤 했다. 1970년대 초 아이스하키 팀을 갖고 있는 학교가 몇 개 없었던 탓이 컸을 거다. 운동 특기자였던 황은 일주일에 한두 번 교실에 들어왔을 뿐이어서 얼굴은 알았지만 친하게 지내거나 말을 건네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입영열차 안에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다 입대를 했으니까,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그를 본 기억이 없었으니 6~7년 .. 더보기
머리 깎기 지금은 얼마인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살 때는 이발비로 보통 20불을 지불했다. 팁을 포함하면 23불이나 25불을 주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가격이 비싸다고 여겼다. 머리를 감겨주는 것도 아니고 베큠으로 몸에 묻은 머리카락만 제거해주는데도 한국에 비해 몇 배나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회사 내에 있는 구내이발관을 이용하면 5~6천원으로 머리를 감는 것은 물론 면도까지 말끔하게 할 수 있었다. 주로 한아름에 쇼핑하러 가면서 같은 건물에 있는 이발소를 이용했는데 처음에는 17불이었던 이발비가 20불로 요금이 오른 후에는 싼 이발소를 찾았다. 내가 찾은 15불 짜리 이발소 이름이 'Tony's barber'였다. 가구나 의자가 낡고 가운이 얼룩졌어도 이발하는 솜씨만큼은 불만이 없었다. 나중에 토니라는 이름의 이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