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퇴이야기/제주의 삶

두맹이골목에서 6년을 제주에서 살았으면서도 이런 골목이 있는지 몰랐다. 마치 어릴 때 살았던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3가의 60년대 뒷골목과 흡사했다. 다른 것은 흙바닥이 아니라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라는 것뿐, 차 한 대 들어설 수 없는 좁은 골목하며 구불구불한 길도 먼 기억 속의 그곳과 아주 흡사했다. 다른 길과는 다르게 좁은 도로 한 가운데는 1미터 정도의 폭으로 주황색이 칠해져 있었으나 예사롭게 지나쳤다. 그러나 며칠을 근처에 머물면서 그곳이 관광코스라는 걸 절로 알게 되었다. 제주에는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사설 테마파크가 있다. 6~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낯익은 장소와 소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당시의 향수를 달랠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꾸민 곳인데 반해, 이곳은 그 옛날의 모습을 자연적으로 간직한 곳이었.. 더보기
제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내 인생에 전혀 계획에 없던 제주에서 살게 된지도 12월이면 6년이다. 2010년 12월 집을 구하러 다니던 당시를 생각하면, 6년의 시간이 마치 수 십 년이 된 양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100미터나 떨어진 곳에 촌로가 운영하는 구멍가게 하나 밖에 없던 곳에 편의점과 마트가 들어서고, 겨울철이면 오며가며 밀감을 따먹던 귤밭은 주택단지로 변했으며, 지금 이 글을 타이프하는 동안에도 건물을 짓는 망치소리가 요란하다. 새벽이면 잠을 설치게 만들던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는 사라진 공간에는, 화물을 적재한 덤프트럭의 굉음이 이른 아침의 고요함을 깨뜨리며 지나간다. 거실에서 바라보이던 아담한 밭도 누군가가 3층을 올려 시야가 가려버린 것은 물론 한낮의 햇볕도 막아버렸다. 그 자리에는 감나무가 있어서 내 소유.. 더보기
내가 본 명절 스케치 (2013년 9월24일에 작성한 글) 명절의 의미도 세월이 가면서 바뀐다. 타임머신을 타고 잠깐 명절을 되돌아 본다. 어렸을 때 명절의 기억은 좋은 것만 있다.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옷이지만 새 옷을 얻어 입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찾아오는 손님들로부터 용돈도 받을 수 있으니 어찌 아니 좋았겠는가! 청소년이 되어서는 두둑해진 주머니 사정으로 사촌들이나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극장이나 탁구장에 출입도 했다. 사회에서는 명절이 그리 달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가깝고 먼 친척들을 찾아다니며 인사 다니는 일로 바빴고 때로는 직장 상사들을 찾아봐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식구들이 모이면 말이 씨가 되어 문제를 종종 일으켰다. 모처럼 식구들이 모.. 더보기
Chez Olivier (2013년 9월13일에 작성한 글) - The closer to the sea, the better! 바다에 가까울수록 난 좋습니다. 염해나 태풍이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프랑스 남부 해안 마을에서 태어나서 바다가 고향이나 마찬가지예요. 바다가 보이는 쪽에 커다란 창을 내고, 바다를 보면서 빵을 굽고 커피를 만들어 찾아온 손님에게 대접하며 사는 게, 꿈이에요. 하하하. 제주에 뼈를 묻으려고 찾아왔어요. 내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집을 지을 겁니다. 이제부터 바다에 가까운 곳에 집 지을 땅을 보러 다닐 거예요. 우리는 살 곳을 정하기 위해서, 2010년에 충북 수안보 근처 월악산 자락에서 반 년 정도 살아보고나서 최종적으로 제주로 결정했어요. 캐나다 몬트리올의 어느 대학에서 한국학 교수를.. 더보기
제주의 짧았던 하루 (2013년 5월 27일에 작성한 글) 사람마다 생김새도 틀리고, 생각도 틀리며, 살아온 지난 날도 살아가는 방법도 틀리다. 따라서 누가 살아온 것이나 생각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부도덕한 것이 아니고, 남을 해(害)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그 어떤 것이라도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믿는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도, 문제는 그 본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의 말이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조건 반대하고 몰아부치는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것이 문제다. 내 식구이고 내 편이 하는 일이라고 무조건 옳다고 고집하며 과오를 덮기에 급급하고, 상대편의 생각이고 의견이기 때문에 티끌만한 흠집도 굳이 들쳐내어 본말을 전도하려는 시도가 문제가 아닐까! 정정당당한 경쟁은 너도 이기.. 더보기
제주 올레길을 완주하고 (2013년 5월 22일에 쓴 글) 지난 5월 8일 걸었던 6코스를 끝으로 올레길을 완주했다. 아니다, 아직 18-1코스인 추자도가 남았지만, 그곳은 하루에 한 편뿐인 배로 가야하기 때문에 최소 1박이 필요한 곳이다. 가을 추(秋)가 이름에 있는 섬이니 가을에나 한 번 가볼 예정이다. 올레는 제주 서귀포 출신 여성 언론인이자 카톨릭 신자인 서명숙씨(현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가 수십년 기자생활에 지친 심신을 추스리기 위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생긴 아이디어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 정도의 길은 제주에도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제주 올레길은 때마침 생겨난 저가항공사와 맞물리면서 전국적인 '걷기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올레길은 제주어로 '마을 길에서 .. 더보기
영실에서 돈내코로 (2013년 5월 14일에 쓴 글) 제주에서 세번째 맞는 봄인데, 가장 좋은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비도 별로 없고, 바람도 비교적 심하지 않은 화창한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도 안팍의 기온도 야외활동에는 그만입니다. 지난 월요일(5월 13일), 여느 날 처럼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상쾌한 공기가 방안을 채웁니다.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는 않았지만, 배낭을 찾았습니다. 배낭이랬자 넣을 것도 없지만, 혹시 모르니 갈아입을 티셔츠와 양말, 그리고 생수병을 챙겼습니다. 집사람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제주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6시 반 첫 버스가 1100 도로를 경유해 어리목과 영실로 갑니다. 영실까지의 요금은 2,500원이다. 몇몇 등산복 차림의 사람.. 더보기
제주의 요즘 (2013년 4월 22일) '춘래불사춘' 이라고 하더니 최근 한국이 그렇다. 4월도 중순을 지나 하순으로 가고 있는데, 지난 주말에는 강원도와 충청북도에 눈이 왔다고 한다. 어제는 새벽에 운동삼아 고사리 끊으러 나갔는데, 전날에 내린 비 탓인지 손이 시려울 정도로 쌀쌀했다. 한참이어야 할 고사리가 산간에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듯하다. 이상기온 탓이지는 몰라도, 최근 몇 년 사이 이곳 제주의 날씨가 크게 바뀌었다고 제주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고사리장마'라고 4월 초에는 항상 비가 왔었는데, 그것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하긴 모든 것이 크게 변했는데, 날씨라고 옛날 같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든 엘니뇨 현상이든 간에. 지난 주말, 노가다 일을 했다. 집짓는 곳에서 노가다.. 더보기
통시 (2013년 4월 15일에 쓴 글) 주노아톰님의 제안으로 클린올레 행사에 처음 참가하였다. 마침 아직 걸어보지 못한 15코스에서 열린다고 하니, 일부러 찾아가서 혼자 걷기도 하는 올레길인데 마다할 리가 없다. 집 근처에 사는 제주 친구를 만나, 이런 행사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더니 자신도 참가하겠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 15코스 출발점인 한림항 비양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이미 와있던 아이린씨 부부가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 집 짓는 것 때문에 바빠요. 하루가 언제 가는지 모르겠어요. 마침 어제 타일을 붙여놓고 마르길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오늘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듀크씨는 실직했다면서 어떻게 지냈어요? 항상 온화한 미소를 띤 얼굴로 학자.. 더보기
어떤 웃음 (2013년 4월 14일에 쓴 글) 모슬포 시장을 들렸다. 가파도를 다녀오는 짧은 뱃길에도 집사람이 멀미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 좀 쉬었다 갈만한 곳을 찾다가 허름한 대폿집을 택했다. 한낮에서 해가 한웅큼 기울어져가는 오후 세 시에서 네 시 사이, 가게 안에는 이미 노인 세 분이 안 쪽에 자리를 잡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너털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 옆에 자리를 잡은 우리 일행은 안주거리를 고르기 위해 메뉴판을 들여다 보다가 '아강발'을 시켰다. 만 2천원 짜리 족발은 너무 부담이 되고, 5천원짜리 아강발이 적격이다. (아강발은 제주도 방언으로 새끼돼지 족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주분들은 족발보다는 아강발을 더 좋아한다.) 아강발을 안주로 대낮에 소주 몇 잔을 들이키며, 오늘 다녀온 가파도에 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