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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13)

대학 동창 C는 지방거점 국립대학 교수다. 학창시절 평범했던 그는 졸업 후 연세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지방 국립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졸업 후에는 만날 기회가 없던 그에 대한 소식은 고등학교 절친이었던 Y에게 들었다. Y는 일본의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유럽을 거쳐 국책 연구소에 있다가 지금은 자신의 모교에서 교수로 있다. 서로 전자공학 분야의 교수로 지내는 인연으로 학회 같은 곳에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Y는 C가 내 대학친구인 것을 알고 C에 대한 소식과 함께 평가를 전했다. "얼마 전 세미나에서 네 동창 C를 만났는데 대단하더라. 너희 학교 출신답게 자수성가 타입이야. 그런데 그쪽 교수사회에서는 완전 왕따 취급을 당하드만. 그 친구는 자기 할 일만 하고 전혀 다른 교수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야. 회식이나 술자리 같은 행사에는 일절 끼지도 않고, 퇴근하면 총알 같이 집으로 간다는 거지. 소문을 들으니까 보통 가정적이 아닌 것 같던데. 아이들에게 그렇게 잘한다며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20년 이상 지난 이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얼마 전에 대학동창 카톡방에 C교수의 딸이 첼로 연주회를 한다는 공지를 본 탓이었다. 그리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무슨 끼나 특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옛부터 있는지 없는지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던 그 친구를 만났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러나 졸업 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뭇 다른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가정밖에 몰랐다'라는 말이 울림으로 다가왔다.


내 30대는 직장이 모든 것이었다. 어린 아이들과의 추억이 별로 없다. 대전 엑스포에 데려갔던 것, 겨울에 눈사람을 같이 만들었던 것 정도가 전부다. 매일 잠잘 때 나가서 잠든 후에 들어왔다. 어쩌다 집에 있는 휴일은 피곤에 절어 소파에 너부러져서 TV 리모컨만 만지작거렸다. 직장에서 왕따 당하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할 일이 없어도 윗사람 눈치보며 퇴근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행동에 옮길 용기는 없었다. 내가 비굴했다는 것은 윗분에 따라 달리 처신했다는 것이 증명한다. 마음씨 좋은 부장과 일할 때는 눈치 보지 않고 종종 일찍 퇴근하기도 했으니까.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란 어떤 것일까. 가정에서는 자상한 남편, 좋은 아빠, 착실한 자식의 역할을 다하고, 회사에서는 부하로서 능력이 있고, 상사로서 리더십을 보이면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능력이 모자라서 그럴 수 없다면 어느 역할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까. 가정에 우선순위를 둔 C가 옳았을까, 회사를 전부로 여겼던 내가 맞는 선택을 했던 걸까.


이틀 전에 독립유공자 조동빈(92)옹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을 했다. 1945년 일본 유학 중 징집되자,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재정분야를 도왔다고 한다. 간단하게 전하는 뉴스로 자세한 사연을 알 수는 없으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생을 희생한 분들 당사자나 그 후손들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듣기 힘들다. 징집되었다가 탈영하여 광복군 장교가 되었던 고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준 목사는, 지난 총선에서 미국에서 벌인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어제 기소되었다.


반면에 식민지 시대 친일인사의 후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 경제, 학술,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지도층으로 활약하고 있다. 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민병석의 차남으로 최장수 대법원장을 지낸 민복기 씨가 대표적 인물이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아버지로서 형편없는 분이었지만, 루드로 학살 등 노동자 착취로 이름을 떨친 록펠러는 보기 드문 훌륭한 아버지였다. 장애인 아들을 위해 미국의 모든 길을 뜯어 고친 사람 아닌가.


록펠러 가문은 미국에서 최고의 가문으로 부통령을 포함 많은 명사들을 배출했으며, 민복기(1913~2007) 대법원장의 자손들도 판사나 기업인 등 지도층이 되었다. 장준하(1918~1975) 선생이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실족사를 한 후, 그 자손들은 정부의 감시하에 어렵게 살아야 했다. 반면 일본군 장교로 해방을 맞은 박정희(1917~1979) 대통령의 딸은 대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으며, 내년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에 총 1,900억이라는 돈이 사용된다고 한다.


차이가 무엇일까?


성인발달연구에 의하면 초기 성인시절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 집중되다가, 배우자(친밀감 단계), 자식(생산성 단계) 등으로 넓혀가며 궁극에는 주변인물, 사회, 국가, 인류(의미의 수호자 및 통합)에까지 확장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끝까지 자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자식에게서 끝나기도 한다. 간디는 일반인과는 다르게 일찍 조국과 민족, 인류까지 관심을 확장한 분이다. 이런 사람은 위인이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더라도 자기 자신이나 자식에게만 관심이 제한된다면 통합단계에 도달할 수가 없으며, 성인발달의 관점에서는 만족스런 노후가 불가능하다.


베일런트 박사는 책에 사례연구(Case Study)로 여러 사람을 등장시킨다. 이너시티 집단인 '프레드릭 호프'는 아이큐가 90밖에 되지 않아 연거푸 유급을 당하기도 했으나 평생을 트럭운전수로살면서 훌륭한 인격으로 삶을 완주했다(175쪽). 67세의 호프는 이너시티 그룹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신체건강이 좋았다. 반면 터먼그룹의 '그웬돌린 하비샴'은 효성이 지극한 딸로서 사업에 성공했고, 아름다운 가구로 장식된 샌프란시스코 저택에서 화려한 의상을 걸친 모습이었으나 평생 행복을 모르고 산 여인이었다.


소설가 메이 사튼(May Sarton)은 70세에,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다워졌다'라고 노년을 표현했다. 노년학자인 캐럴 리프(Carol Riff)는 '개성은 삶의 다른 분야에서 생겨난 상실감을 보충해 주는 영역이다'라고 했으며, 윌리엄 제임스는 '누구나 살아가다보면 완고함이라는 종착역에 이르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노년으로 갈수록 완고해진다는 것은, 창의력이 부족하거나 외곬수가 돼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선택을 발전시켜 온 결과로 보는 것이 옳다.


한국의 고전이나 옛날 이야기에는 유독 독하다 못해 악랄한 시어머니가 많이 등장한다. 또 자상하고 인자한 바깥 노인이 자주 보인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건 지어낸 허구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가진 사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여성은 남성화되고 여성은 남성화가 진행되면서 차이가 줄어든다. 여성은 에스트로겐이 줄어들고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함에 따라 독해지는 반면에 남성의 가슴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얼굴선은 부드러워지며 테스토스테론은 감소한다. 남성은 수염이 더디 자라는 반면, 여성들은 얼굴에 털이 자라고, 여성들의 가슴은 평평해지고 목소리가 굵어지며 얼굴선도 날카로워진다.


실제로 어느 연구에서 27세의 여성들이 목적지향성, 조직력, 실천력, 자신감, 현실성 등 행동평가에서 남편들보다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은데 비해, 5~60세 여성들은 오히려 조금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서로 다른 26개 문화권을 비교분석한 문화인류학자 데이비드 거트만(David Gutmann)이 1987년 발표한 바에 의하면, 14개의 문화권에서는 노년으로 갈수록 여성에게 주도권이 넘어갔으며 12개 문화권에서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문화권에서도 남성의 주도권이 증가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느지막이 자유를 찾은 여성들이 바깥 활동에 전념하는 동안, 남편이 가사를 돌보는 가정도 흔하지 않았다.


영화 대부를 생각해보라. 젊었을 때의 대부(로버트 드니로 분)는 살인하고 집에 온 뒤 태연하게 아이를 안고 마누라를 대하지만, 죽을 때는 정원에서 손자와 장난을 치다가 쓰러져 숨을 거둔다. 젊어서 한때 아프리카에서 사자 사냥을 즐겼던 어느 사업가는, 59세가 되자 로드아일랜드의 환경보호협회에서 이사가 되어 자연보호에 앞장섰다. 만약 그가 60이나 70까지 사냥을 즐겼다면 결코 행복한 노후를 맞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성인발달에 관한 전향적인 연구에서는 폐경기가 되었다고 해서 여성의 성격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수재들만 연구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후기>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소일거리를 걱정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관심이 자기자신 근처에만 머물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성인발달에 따라 관심을 주변과 이웃, 사회로 넓히면 할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게다가 보람까지 있습니다. 소일거리를 걱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한국인들은 이 부분에서 약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교문화의 제사라는 관습 때문에 관심이 자신과 자식에게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게 원인일 겁니다. 자수성가 비율이 세계 최저수준인 것이 증명합니다. 사회나 국가에 기여하기보다는 자식에게 물려주기 바쁜 겁니다. 성인발달 관점에서 보면, 이런 점은 한국인들이 행복한 노후를 맞기 힘들게 합니다.


어제는 제주를 찾은 부부를 만나 점심을 같이 하는 등 다섯 시간 동안 즐거운 대화를 가졌습니다. 제주에 도착한 날 전화로 카페지기에게 식사 한 번 사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기에 주저하지 않고 응답했습니다. 별 것은 아닐지 몰라도, 이 카페를 통해서 주변과 이웃을 생각하는 '의미의 수호자'나 '통합'의 단계로 생각하는 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분들이 사는 식사라면, 뻔뻔하지만(?) 즐겁게 받으려고 합니다. 단, 3만원이 넘으면 김영란 법에 저촉되는 것 아시죠, 하하하.


어제 대화에서는 자매님에게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지 않는 내일에 행복을 저당 잡히지 않고, 오늘에 충실한 실제 본보기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나 사람에게서나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것이 즐겁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