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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최순실의 탐욕 10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 생각난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2008년에 터졌지만, 그 전조는 이미 2007년부터 나타났었다. 아니 2006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2006년 말까지 미국의 부동산 값은 미친 듯이 올랐으니까. 뉴저지 중부 '브리지워터(Bridgewater)'에 있는 천 스퀘어 피트(28평)도 안 되는 2베드 2베스 콘도(한국식 아파트)가 30만 불 중반대 가격이었다. 2007년 4월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의 파산을 시작으로 줄줄이 대형 금융회사가 쓰러져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상상하지도 못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파생상품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 어려운 용어를 이해하게 된 것은 회사에서 레이오프되고 할 일이 없게 된 이후였다.. 더보기
빗나간 모성애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그 친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성(姓)이 ‘황’이라는 것만 생각날 뿐. 그는 아이스하키 선수로 입학한 친구였다. 당시 그 고등학교는 6대1이 넘는 후기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내가 5회 졸업생일 정도로 신생이었던 학교는 별 볼 일없는 축구부도 있었으나, 아이스하키는 대회마다 중동고등학교와 우승을 다투곤 했다. 1970년대 초 아이스하키 팀을 갖고 있는 학교가 몇 개 없었던 탓이 컸을 거다. 운동 특기자였던 황은 일주일에 한두 번 교실에 들어왔을 뿐이어서 얼굴은 알았지만 친하게 지내거나 말을 건네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입영열차 안에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다 입대를 했으니까,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그를 본 기억이 없었으니 6~7년 .. 더보기
한국 사는 재미 한국에 사는 재밋거리의 하나는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뉴스다. 지난 시월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된 이후에는 시시각각으로 전개되는 뉴스거리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으로 모이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6차를 넘으면서 모든 이슈를 삼키고는 이번 주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막장 드라마를 능가하는 막장 현실 막장 드라마의 원조는 2008년에 방영된 '아내의 유혹'이라는 일일드라마다. 미국에 살면서 볼 기회는 없었지만 하도 소문이 요란해서 몇 차례 다운로드해서 보았던 기억은 있다. 자살을 가장한 아내가 얼굴에 점 하나 붙이고 다른 사람을 가장해서 남편에게 복수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이 줄거리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40년 관계도 그에 못지않다. 뿐만 아.. 더보기
Dynamic Korea 금년 여름 국가브랜드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계기가 되어 그때까지 사용되던 'Dynamic Korea'대신, 문화체육부에서 'CREATiVE KOREA'를 새로 만든 것이 발단이었다. 야당의 어느 국회의원이 프랑스 국가브랜드 'CREATIVE FRANCE'를 표절한 나라 망신이라며 울분을 토했다.(관련기사 보기) 프랑스와 다른 것은 색깔과 'CREATIVE' 단어에 들어간 'I'가 대문자에서 소문자로 바뀐 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최순실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국가브랜드 사업에 35억을 사용했다니 그런 눈먼 돈을 최순실과 차은택 일당이 그냥 보고만 있었을 리 없다. 그 기사를 보면서 들었던 개인적인 생각은 이랬다. - 우리나라가 '창의적'이라고? 아무리 생.. 더보기
가을아침(秋朝)의 역설적 단상 드디어 약속한 일을 끝냈다. 장장 5주에 걸쳐 궂은 날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쉼 없이 케이블을 자르고 연결하는 단순한 일을 반복했다. 사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은 더 이상 싫었다. 평상시 같으면 거절했겠지만, 한국을 방문했던 딸아이 부부가 돌아가고 난 후, 마음이 영 허전해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잡념이 심했다. 책을 펼쳐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부질없이 불쑥불쑥 찾아드는 자책과 회한으로 괴로웠다. 그러던 중 제주에서 사귄 친구 P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니 11월 말까지만 도와달라는 말에 전혀 망설임 없이 나섰다. 기대했던 대로 시간은 잘 갔다.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하는 일이지만 20가닥의 가느다란 통신선을 착오 없이 연결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쉬웠으므.. 더보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자! 기억 속에서 최초로 병원에 갔던 기억은 중3이다. 등교 길 만원버스에서 누군가의 구둣발에 발등을 밟혔다. 쓰리고 아팠으나 담임에게 말하고 양호실에 찾아 갈 용기가 없었다. 그깟 걸 갖고 그러냐는 핀잔을 받을 게 두려웠을 것이다. 그냥 지나친 발등은 날마다 무섭게 부어올랐으며, 결국 너무 붓고 아파서 신발을 신지도, 학교에 가지도 못할 정도까지 되었다. 동네 의원의 나이 든 의사는 엄마를 시켜 나를 꼼짝 못하게 붙잡게 하고는 마취도 없이 칼로 째고 피고름을 짜낸 뒤 심지를 넣고 상처를 싸맸다. 살면서 그보다 더 아팠던 기억은 없다. 교련시간에 뙤약볕 아래서 모의총을 들고 행군훈련을 하면서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럼증을 느껴도, 쌍코피가 주르르 쏟아지고 교관으로부터 양호실에 가라는 말을 듣고서야 양호실이나 숙직.. 더보기
비정상 사람, 비정상 대통령 (이곳에 올릴 생각 없이 쓴 글입니다만, 오랜만에 블로그에 올린 글이고 최근에 글을 올리지 않아 가져왔습니다. 정치 관련 글에 식상한 분들은 백스페이스 키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1.지난 7월 한 사람이 흙으로 돌아갔다. 계절이 순환하듯 낳고 죽는 일이 자연현상의 일부이기는 하나, 사람의 일이기에 낙엽 지고 눈 내리는 것처럼 그렇게 대할 수만은 없다. 1947년생이니까 70세를 다 채우지 못했다. 담도암 진단을 받고 6개월 정도 더 살았을 뿐이었다. 나와는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인연이기는 해도, 전해 들은 고인의 인생만큼은 평범하지 않았다. 1960년대 군대생활 중 전우를 사망하게 하는 총기 오발사고를 냈다. 때마침 김신조 무장공비 일단이 청와대를 습격하는 사건을 겪었던 군은 두 가지 옵션을 제안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