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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기타

단식 그 후(斷食 後)

혹자는 무슨 단식까지 하면서 건강을 생각하느냐, 먹고 싶은 것까지 참아가면서 건강하면 뭐 하느냐,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 세상이 뭐가 좋다고 오래 살려고 하느냐며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 분들을 부정할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 나 또한 과거에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다. 살아가면서 새로운 경험을 만나고, 그 경험으로 생각이나 신념까지도 바꾸며 사는 게 인생이다.


서른 살이 넘어 처음 만난 편도선 증세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편도선이라는 게 몸에 있는지도 몰랐던 내게,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할 정도로 편도선이 부어 며칠 고생하고 난 후부터 새벽에 일어나 뛰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직장생활이 몹시 바빠 형편이 되지 못할 때는 몇 달 씩 거르기는 했어도 30년 동안 꾸준히 실천한 덕택에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2008년 초 모친의 참담한 마지막 모습은 인생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몇 년 전부터 엄마는 치매로 자식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때도 있었어도 인간의 존엄까지 잃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죽음 직전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했다. 그 노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아는 나로서는 그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자식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토록 악착 같이 인생을 험하게 살았단 말인가. 건강을 게을리 하면 지옥은 저 세상에만 있지 않다는 사고가 이때 생겼다.


최근의 일로는 2012년 봄에 나타난 이상증세(관련 글보기)가 있다. 어떻게 몸의 왼쪽 절반만 저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그 증세는 아스피린을 복용한 후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나 쉽게 잊혀질 일도 아니었다. 더 열심히 걸었고 더 많이 운동했다. TV에서 간헐적 단식이라는 건강 프로를 보고 1년 가까이 실천해 보았다.


그리고 금년 초 건강검진을 받을 때는 내심 확신하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노력했으니 좋아진 건강수치가 나올 것으로자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낙관적인 내 기대와 전혀 달랐다. 공복혈당은 당뇨 수준이었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경계수준을 넘어 위험수치를 보였다. 운동만으로는 건강유지가 힘들다는 자각이 생겼다. 음식을 가리지 않으며 배가 불러야 만족하는 식성이 문제라는 자각이었다. 오래 살 마음이 없다고 해서 엄마처럼 인생을 끝낼 수는 없었다.


그런 배경으로 행동에 옮긴 특단의 대책이 단식이었다. 한 달의 과정을 끝내고 평소 생활로 돌아온지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혈액검사를 다시 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 바뀌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먼저, 잠을 전보다 잘 자고 있다는 느낌이다. 평균 7시간 정도의 수면을 취하며, 불면으로 밤을 지새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숙면을 했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체중은 보통 75~77킬로 정도로 80킬로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단식 전에는 좀처럼 80킬로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83킬로까지 나갈 때도 있었다. 체중유지를 위한 것도 있지만, '먹고 단식하고 먹어라(Eat, Stop, Eat)'는 책(Brad Pilon 저)을 읽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 점심과 저녁을 거르는 '간헐적 단식'을 병행하고 있다.


재채기 발작과 콧물 등이 나오는 알러지 비염 현상도 약간은 좋아진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부는 요즘에 부쩍 심해지는 것이 정상인데, '클라리틴(Claritin)' 같은 알러지 약을 먹지 않고도 그런대로 버티고 있다. 특유의 낙관적인 성격이 이런 느낌을 갖게 만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니까 읽는 분들이 알아서 판단하셨으면 한다.


단식효과가 아니라 단식하면서 한 달 동안 금주를 한 영향이겠지만, 평소에 있었던 '역류성식도염' 증상이 완화되었다. 평소 술을 즐기는 사람이 한 달 이상 끊을 경우 '역류성식도염'이 낫는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단식 이후에는 음주 습관도 한 주에 1~2회로 줄였다.


▼ 아래는 최근 '미밴드'라는 싸구려 팔찌를 차고 다니면서 스마트폰에 기록된 데이타다. 이런 데이타를 신뢰한다기보다는 '배운 도둑질'로, 이런 전자기기를 만지는 것이 취미인지라 재미삼아 사용해 보았다.


좌측 그림은 아침마다 뛴 운동량이다. 지난 11일 동안 비가 오는 날을 빼고는 컴컴한 새벽에 학교 운동장에서 뛰었다. 8킬로가 넘는 거리는 아닌데도 데이타는 이렇게 나왔다. 우측 그림은 수면상태를 기록한 것이다. 어떻게 깊은 수면과 얕은 수면을 구분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손목에 찬 팔찌의 센서가 손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판단한다고 짐작만 한다.


데이타가 엉터리 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긍정을 심어주며 몸과 마음이 좋아진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효과는 있다. 바로 '플라시보 효과'다.


<후기>

어느 회원 분이 메일로 추석인사를 전하면서 단식 후에 잘 관리되고 있는지를 물으셔서 그에 대한 대답을 겸해서 쓴 글입니다. 힘은 들었지만 지난 글, 최종결과 편에서도 숫자로 밝혔듯이 저는 긍정적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고 판단합니다. (관련 글보기)

그러면 내년에도 또 할 거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글쎄올시다'입니다. 아직은 확실히 대답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만큼 쉽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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