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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기타

9월 24일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현실에서는 소설이나 할리우드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일들이 실제로 종종 벌어진다. 15년 전 발생한 9·11이 그랬다. 민간항공기를 동시 다발적으로 공중에서 납치한 그대로 테러용 무기로 사용한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금년 7월 발생한 니스 테러도 비슷하다. 렌트한 25톤 트럭을 살인무기로 사용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스스로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자 강력한 욕구인 생명을 포기하면 이렇듯 상상을 벗어난 일이 발생하고, 자살폭탄 테러처럼 막기도 힘들고 피해도 크다. 지난 9월 24일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내 친구의 처형식 - 애너하임 35년 지기 촉탁살인'도 상상하기 힘들지만, 이민이라는 현실세계에서 발행한 실제 사건이라 놀라움을 준다.


방송을 볼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복잡한 스토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등장인물인 이씨와 조씨는 중·고등학교 절친으로 현재 56세(2011년 사건 당시 51세)인 것으로 보아 1960년이나 61년생으로 보인다. 조씨는 2천 년대 중반에 가족이 미국에 들어와 불체자 신분으로 용접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이씨는 생명보험을 4개나 들어놓고 사고사로 죽기 위해 2010년 11월 미국의 친구 조씨를 찾아왔다. 이씨가 가입한 생명보험은 질병사나 자살 같은 옵션 없이 오로지 사고사만 적용되는 최소 불입금 최대 보험금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씨는 한국의 온천지역에 모텔 건물과 음식점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세금을 못내 압류가 들어올 정도로 재정상태가 좋지 않았다.


(사건 후 조씨의 진술에 의하면) 라스베이거스 등을 다니며 자신을 죽여줄 사람을 찾았으나 여의치 않자 친구인 조씨에게 부탁한다. 이씨가 만든 시나리오는 렌트한 차를 타고 인적이 드문 길을 가다 펑크가 나서 타이어를 바꾸던 중, 강도를 만나 사살되는 것이었다. 그는 권총을 구입해서 조씨와 함께 사격연습까지 했으나, 친구 조씨가 거절하자 불체자인 것을 이민국에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하고, 나중에는 조씨 부부가 잠자는 방에 들어가 조씨 부인을 겁탈한다. 결국 조씨는 이씨의 각본대로 그를 사살한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내가 후배와 에어컨 일을 할 때 부품을 사러 다니던 길인 듯 낯이 익었고, 이씨가 미국에 도착한 시점은 내가 미국을 떠난 시간이기도 했으며, 사건이 발발한 시간은 내가 제주도에 막 정착한 직후였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심지어 이씨가 차를 렌트했다는 곳도 '가든 그로브'에 있는 낯익은 곳 같았다. 사건 후 버려진 차를 추적 조회한 경찰에 의해 조씨는 바로 검거되었고, 경찰의 추궁에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 1급 살인죄로 기소되었던 조씨는 최근의 재판에서 배심원들이 그의 주장을 인정하는 바람에 '과실치사'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은 적이 없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이었지만, 내가 주목한 부분은 언어였다. 영어가 아주 서투른 조씨가 처음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통역을 담당했던 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 2세로, 그는 "친구가 내 아내를 건드렸다."를 "He touched my wife."라고 번역했다. 잘못된 통역과 번역으로 인해 단순 과실치사로 끝날 재판이 5년을 끌었다. 언어라는 게 이렇듯 어렵다는 사실에, 나 같은 '언어의 둔재'도 잠시 위안(?)을 받았다.


조씨의 인생을 생각해보았다.


어떤 생각으로 2천 년대-짐작컨대 2003~4년에 불체자 신분으로 두 딸 등 가족을 데리고 미국에서 살 생각을 했을까. 용접공으로 주급을 받고, 와이프는 식당에서 일하는 삶에 보람과 즐거움이 있었을까. 그가 도박장을 자주 찾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재판이 끝나면 그는 얼마간의 형을 살고 나온 후에 결국 추방되어 다시는 미국에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잘못된 이민의 선택으로 또 한 가족이 망가지는 모습에 한동안 마음이 먹먹해졌다.


▼ 방송 보기


▼ 피의자 조서 복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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