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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제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내 인생에 전혀 계획에 없던 제주에서 살게 된지도 12월이면 6년이다. 2010년 12월 집을 구하러 다니던 당시를 생각하면, 6년의 시간이 마치 수 십 년이 된 양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100미터나 떨어진 곳에 촌로가 운영하는 구멍가게 하나 밖에 없던 곳에 편의점과 마트가 들어서고, 겨울철이면 오며가며 밀감을 따먹던 귤밭은 주택단지로 변했으며, 지금 이 글을 타이프하는 동안에도 건물을 짓는 망치소리가 요란하다.


새벽이면 잠을 설치게 만들던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는 사라진 공간에는, 화물을 적재한 덤프트럭의 굉음이 이른 아침의 고요함을 깨뜨리며 지나간다. 거실에서 바라보이던 아담한 밭도 누군가가 3층을 올려 시야가 가려버린 것은 물론 한낮의 햇볕도 막아버렸다. 그 자리에는 감나무가 있어서 내 소유는 아니지더라도 이맘 때면 감도 심심찮게 따먹을 수 있었는데.


집 옆 계곡을 장식했던 자연석은, 집을 구입할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었지만, 하천을 정비한다는 구실로 불도저가 들어가서 평평하게 만들어버렸다. 구불구불 2차선의 옛날식 정겨운 도로는 사라지고, 도시를 닮은 4차선 도로가 직선으로 새로 났으며, 신호등 하나 없던 거리에는 대여섯 개의 신호등이 설치되어 출퇴근 시간에라도 걸리면 두어 번 신호를 받아야 지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6년 동안 제주에서 본 것이라고는, 깎아내고 베어낸 자리에 들어서는 고층 아파와 다세대 주택, 그리고 새로 뚫리는 도로였다.


이렇게 된 것의 배경에는 우근민(1942~)이라는 전 도지사가 있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12년 동안 도지사를 지내며 '개발만이 살 길이다'라는 신념으로 개발 위주의 도정을 펼쳤다.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원시시대로 살 수 없다'라는 논리로 대항했다.(관련기사) 약간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개발을 하지 않으면 원시시대로 돌아간다'는 우격다짐식 논리를 펼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분이 조폭과 다름없는 건배사 '조배죽'으로 유명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관련 게시글 보기)


그 결과가 이제야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장기적 계획 없이 무분별한 난개발로 섬은 황폐화되고 있으며, 쓰레기 하치장이나 생활하수 처리시설의 부족으로 처리되지 못한 오폐수가 바다를 오염시키고, 넘쳐나는 쓰레기는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곳곳에서 악취를 풍긴다. 비자 없이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관광정책은 중국인들의 배만 불리고, 정작 제주도민에게 돌아가는 과실은 별로 없다. 게다가 최근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자기들이 가져온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주점 주인과 손님을 집단 폭행한 것도 모자라, 아무런 이유 없이 성당에서 기도하는 여성을 살해한 중국인까지 생겼다. 개발로 이웃 간의 인심은 흉흉해지고 여기저기 생긴 카페와 펜션은 경쟁으로 되는 곳이 별로 없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알 수 없다. 물론 덕보는 사람도 있다. 개발이 없었다면 밭조차 할 수 없는 돌맹이 땅을 가진 촌부가 어떻게 에쿠스를 탈 것이며, 서울이 부럽지 않은 아파트에서 쾌적한 삶을 살 것인가!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다면 나같은 사람은 제주를 살 곳으로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제주가 낯선 내가 처음 만난 제주는 살기가 꽤 괜찮은 곳이었다. 그랬던 것은 어제까지의 일이고 오늘은 아닌 곳이 되었다. 그리고 내일은 제주가 어떻게 변할까. 개발 위주의 정책을 포기하거나 늦추지 않는다면 무지한 내 생각에도 추측하기가 어렵지 않다. 제주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자산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다. 개발로 자연스러움을 잃는다면, 청정바다가 사라진다면, 살인과 폭력이 일상이 된다면 대도시나 다름없는 제주를 누가 찾을까?


그래도 활짝 열린 창밖으로 보이는 기막히게 청명한 가을 하늘과, 얼굴을 스치는 더없이 상쾌한 바람은 개발의 망치소리도 막을 수가 없나 보다. 어제 하루종일 비오고 바람 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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