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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복(福) (2013년 6월 25일) - 아빠, 복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몰라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이렇게 시작한 딸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아이가 일하는 회사에 40대 중반인 사람이 새로 들어왔다. 사업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져서 접고 창고 매니저로 들어왔다. 사업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회계를 비롯한 회사업무 전반에 걸쳐 모르는 게 없다. 같이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호흡이 척척 맞아 같이 일하는 게 즐겁다. 몇 달 전에 어카운팅 부서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이 갑자기 그만 두는 바람에 60대 초반인 아주머니가 새로 들어왔는데, 참 현명하고 좋은 분이다. 몇 년 전에 그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던 분이라 업무를 잘 알고 있었으며 매사에 합리적이고, 모르는 일을 질문하.. 더보기
어떤 이민자의 아이들 (2013년 6월 21일) - 아빠, 오늘 친구 분들과 골프 치러 가죠? 여기 서랍에 돈 있으니까 필요하시면 가져 가세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크레딧 카드 드릴게요. 필요하면 쓰세요. 지난 금요일이었다. 전날 저녁 아이들이 내 스케쥴을 물었었고 나는 골프 치러 간다고 말했었는데, 아침에 출근하는 아들 녀석이 예상치 않았던 말을 했다. 공항 배기지 클레임에서 카트를 사용하는데 5불이 필요했다. 은행에 있는 돈을 믿고 달러는 한 푼도 없이 왔는데, 한국의 크레딧 카드가 무엇 때문인지 작동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양손에 가방을 끌고 나올 수 밖에 없었고, 그걸 본 아들 녀석이 돈 한 푼 없이 나가는 나를 염려했었나 보다. 그걸 사용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흐믓한 마음으로 지갑에 챙겨 넣었.. 더보기
딸과의 데이트 (2013년 6월 2일) 정말 오랜만에 아이와 일주일을 오롯이 함께 보냈다. 지난 일요일 밤에 와서 어제 토요일 출국할 때까지, 오는 날과 가는 날을 제외하면 불과 5일이었지만, 그 5일 동안 주야장창 같이 지냈다. 집사람은 90이 넘은 장인 수발 때문에 꼼짝도 못한다. 물론 같은 회사를 다닐 때도 같이 생활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먹고 마시며 붙어서 돌아다닌 것은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해부터 세 아이가 돌아가며 다녀간 셈이다. 키울 때는 '원시인'이니, '야만인'이니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키워놓고 나니 장점(?)이 많다. 작년에는 시간당 $50을 받는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어서, 다른 아이와 같이 오겠다는 걸 극구 말렸었으나, 이번엔 레귤러 잡으로 들어가서 휴가를.. 더보기
딸과의 통화 (2013년 1월 24일에 작성한 글) 어제의 일이다. 학원차를 운전하고 있는 도중에 휴대폰이 울린다. - 아빠, 나. 지금 뭐해? ○ 운전하고 있는데. 왜? 무슨 일이 있니? 시간을 보니 오후 한 시가 훨씬 넘었다. 뉴저지 시간으로는 한밤중이다. - 아니 별 일은 아니고. 아빠, 운전하는데 통화해도 돼? ○ 그럼, 이어폰 끼고 있으니까 이야기 해라.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딸이 전하는 이야기다. - 아빠, B사 알지. 그 회사에서 잡 오퍼가 와서, 다음주에 인터뷰한다. 너무 자주 회사를 옮기는 것 같아서 그렇긴 한데, 시니어 어시스턴트를 주겠데. 연봉도 1~2만 불 더 받을 수 있고. 지금은 그냥 어시스턴트로 있잖아. 지난번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할 때보다 연봉이 깎여서 옮겼잖아, 레귤러 직원이니까.. 더보기
내가 살았던 뉴저지를 소개합니다. (2013년 1월 13일에 작성한 글) 미국의 50개 주(州)들은 각각 특색이 있다고 들었다. 미국에서 오래 산 어떤 분으로부터 주의 경계를 넘으면 경치는 물론 보이는 색까지 일변한다는 말을 듣고 일리있다고 생각했지만, 중부나 서부는 몰라도 최소한 동부는 아닌 것 같다. 뉴저지는 하와이, 로드아일랜드, 델라웨어에 이어 가장 작은 주다. 한국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경상북도(대구 포함 약 2만 ㎦)보다 약간 크지만(약 2.2만 ㎦), 인구는 대구 포함 경북인구의 1.5배인 9백만 가까이 거주하며, 주(州)단위 인구밀도는 미국에서 가장 높아서 일본의 평균인구밀도(337명/㎦)보다 높은 유일한 주(459명/㎦)다. 50개 주에서 면적은 네 번째로 작지만, 인구는 11번째로 많다. (출처: 위키피디아) 위도상으로.. 더보기
개고기의 추억 (2012년 12월 22일에 쓴 글) - 장형, 업스테이트 뉴욕에 보신탕 하는 곳이 있다는데, 안 갈래요? ○ 아니, 이 미국에서 개고기를 판다구요? 큰일 나려구! - 산속에 있는 야영장인데, 그 근처에 골프하러 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개를 잡는답니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오백 불이라니까 몇 사람 회원을 모집해서 같이 갑시다. 다섯 사람만 모이면 일인당 백불만 내면 되고, 또 고스톱 멤버도 되니까 점심무렵에 가서 저녁까지 고스톱이나 치면서 보신탕이나 실컷 먹고 옵시다. 골프를 시작하기 전이니까, 아마 십년도 훨씬 더 된 어느 초여름 이야기일 거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C의 제안에, '미국에서 보신탕을 먹을 수 있다구!' 하는 생각에 호기심이 일었다. GPS도 없던 시절이라 지도책만 갖고 업스테이트 .. 더보기
애마부인 (2012년 11월 30일에 쓴 글) 뉴저지 모리스 카운티 파시패니(Parsippany)라는 곳에 거구장이라는 규모가 꽤 큰 한식당이 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80번 하이웨이가 부근을 지나고, 미국 초창기 뉴욕과 펜실베니아를 연결하는 주도로이었던 46번 도로 옆에 있다. 비싸고, 불친절하고 맛없기로 유명하지만, 부근에 한식당이 없는 관계로 갈 곳이 없어 자주 찾곤 했다. 들리는 말로는 주방장이 스패니쉬라고도 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스패니쉬를 고용했다는 거다. 현지인들도 많이 찾았는데, 그들이 한식을 형편없는 음식으로 알까 봐 걱정이 될 정도이었다. 어느날 거구장에서 반 마일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황부자 순두부'라는 음식점이 생겼다. 규모는 비할 바 없이 작아, 거구장의 10분의 1도 안.. 더보기
한바탕 잘 놀았습니다! (2012년 11월 17일에 쓴 글) ○ 옛날 직장동료나 내 친구들을 봐도 그냥 한 자리에 계속 있었던 사람들이 다 잘 된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제주를 떠난 사람들도 마찬가지라, 그냥 제주 토박이로 산 분들은 고향에서 터잡고 웬만큼 잘 사는데, 외지로 가서 사업한답시고 떠났던 사람들은, 잘 안 되서 제주로 다시 돌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년 전에 옛 직장동료를 만났더니 그러더군요, 내가 그냥 있었다면 최소 처장은 하지 않았겠냐고. 물론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겠지만. 30년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겠다는 말을 사촌매제로부터 들었을 때, 위로의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 - 형님이나 나나 한바탕 잘 놀았다고 생각하면 되지요! 제주에서 태어나 미국이라는 넓은 땅에 가서 실컷 잘 놀았지 않습.. 더보기
영어 이야기 (2012년 11월 2일에 작성한 글) 이민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뭐니뭐니해도 영어일 것 같다. 어려서 이민을 간 경우가 아니라면, 그래서 학교에 다닌 경우가 아니라면, 나이 서른을 넘어 이민을 간 경우라면, 또 언어에 천재적 소질이 있는 경우가 아니거나,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경우가 아니라면, 영어는 정말 극복하기 힘든 장벽이 아닐까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경우는 그랬다. 컨디션이 좋은 날, 긴장하고 들으면 곧잘 들리던 영어가, 잠을 잘 못 잤다든지 하여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잡념으로 집중이 안 되는 날은 무슨 소린지 하나도 들리지 않기도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게 술술 나오던 영어가, 또 어떤 날은 무슨 단어를 어떻게 연결하여 말을 만들어 낼지 전혀 감이 안 .. 더보기
단풍회상 (2012년 10월 31일에 작성한 글) 한국에서는 설악의 단풍을 최고로 쳐도 될 것이다. 내장산의 단풍도 유명하고 지리산의 단풍도 좋지만, 내가 본 것 중에서는 설악의 단풍이 최고였다. 몇 년 전인지 기억도 없지만, 20년도 훨씬 더 되었을 것 같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산악회에서 1박 2일 설악산 가을 산행을 갔었다. 토요일도 일하던 시절이었으니까 토요일 오후에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오색약수에 도착해서 1박을 한 후, 새벽 4시도 전에 일어나, 간밤에 여직원들이 만든 김밥을 배급받아 출발했다. 컴컴한 새벽에 후래쉬 하나 들고 대청봉을 향해 좁은 산길을 오르는데, 그 시간에도 이미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밀려서 올라가고 있었다. 설악폭포에 이르렀을 때쯤 되서야 날이 밝기 시작했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