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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영어 이야기

(2012년 11월 2일에 작성한 글)

 

이민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뭐니뭐니해도 영어일 것 같다. 어려서 이민을 간 경우가 아니라면, 그래서 학교에 다닌 경우가 아니라면, 나이 서른을 넘어 이민을 간 경우라면, 또 언어에 천재적 소질이 있는 경우가 아니거나,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경우가 아니라면, 영어는 정말 극복하기 힘든 장벽이 아닐까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경우는 그랬다. 컨디션이 좋은 날, 긴장하고 들으면 곧잘 들리던 영어가, 잠을 잘 못 잤다든지 하여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잡념으로 집중이 안 되는 날은 무슨 소린지 하나도 들리지 않기도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게 술술 나오던 영어가, 또 어떤 날은 무슨 단어를 어떻게 연결하여 말을 만들어 낼지 전혀 감이 안 잡히기도 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영어를 배웠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매뉴얼을 읽기도 하고 또 영어회화반에 등록해서 다니기도 했다. 30년전 사회 초년병 시절, 미국에 연수갈 사람들 영어시험을 본다고 해서 들러리로 LATT라고 불리는 시험에 처음 응시했었다.


- 미스터 장은 다음 기회에 가고, 이번에는 미스터 손을 보낼 거야. 그러니 미스터 장은 그렇게 알고 시험을 보라구.


당시 부장님이던 분이 나를 불러서 한 이야기였다. 아무 준비없이 본 시험에 56점을 받았다. LATT(Language Arts Test & Training)는 읽기, 쓰기, 듣기와 말하기를 시험보는데, 60점을 넘는 합격자가 하나도 없었다. 본사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실력없는 직원은 차라리 보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장이 취임하고 나서 교육훈련규정을 엄격히 적용한 것이었다.


- 무조건 시험을 잘 보라구. 성적좋은 사람부터 보낼테니까. 이거 무슨 망신이야, 본사 교육훈련부장에게 개망신 당했어. 엉터리로 추천했다는 거야! 우리 사업소에 실력있는 사람이 그렇게 없어!


부장이 해당 직원들을 불러놓고 새로운 지침을 내렸다. 한 번 시험을 본 경험이 있는 나는 작전을 세웠다. 리딩과 라이팅은 그럭저럭 자신이 있었지만, 미국인과 직접 대화하는 리슨닝과 스피킹은 도무지 자신이 없었으니 미국인이 하는 대로 끌려갔다가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단어를 소재로 문장을 여러 개 만들어 외웠고, 시험관은 내 예상대로 '결혼했니?'하고 물었다. 나는 그것을 되받아서, 'How about you?'로 시작해서 내가 외운 문장으로 질문도 하고 대답도 했다. 내 꼼수(?)에 걸린 순진한 시험관은 인터뷰가 끝나자 내게 '굿 잉글리쉬'라고 말했다. 75점이라는 괜찮은 점수가 나왔고, 유일한 합격자가 되어 미국연수로 플로리다 동쪽 해변도시 멜번(Melbourne)의 오션 프런트 호텔에서 일출을 보는 영광을 누렸다.


그렇게 시작한 연수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당시에 연수비용으로 상대편 회사에 지불한 돈은 4년 동안 다닌 대학 등록금 전체의 열 배가 넘는 큰 돈이었고, 나는 필사적으로 무언가 배우기 위해 매달렸지만, 강의내용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도면 몇 페이지를 펼쳐라는 정도가 기껏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때를 썼다. 너희들이 가르쳐주겠다고 해서 왔는데, 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게 우겨서 많은 자료를 받아내기도 했지만, 정말 스트레스는 많이 받았다. 나중에는 꿈도 영어로 꾸고, 미국경찰에게 쫓기는 악몽도 많이 꿨다. 그 정도로 심하게 영어에 시달리며 몇 달 지나자 거짓말 처럼 귀가 열리기 시작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웬만큼 영어에 자신이 붙었을 때는 귀국할 시간이었다.


그리고는 영어와는 전혀 무관한 생활을 십 몇 년을 했다. 출장을 두어 번 가기는 했었지만, 그때는 3백만 불이 넘는 바이어측 엔지니어 입장이었으니, 단어 하나만 꺼내도 미국인들이 알아서 눈치 채고 설설 기었다. 결코 내가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었는데, 대충 적당히만 하면 이민 가서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 적당히 살면 옛날 젊었을 때 처럼 영어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했었다.


처음에는 영어를 배운답시고 뉴스위크도 정기구독하고, TV도 열심히 보았다. 물론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도무지 늘지 않았다. 40이 넘은 나이도 탓해야겠지만, 나는 언어에는 소질이 전혀 없어 보였다. 소심한 탓인지 위축감이 들었다. 중요한 대화를 할 때는 아들놈이라도 옆에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남들은 그만큼만 하면 됐지 얼마나 해야 되냐고도.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영어를 한심하게 하는지.


중학생 아들놈에게 강요도 해보았다. 내게 말할 때는 영어로 하라고. 놈이 울면서 말한다. 어떻게 아빠에게 반말을 하느냐고. 녀석에게 영어는 반말이었다. 포기했다. 아이들이 'Friends'라는 시트콤을 보면서 깔깔거릴 때, 옆에 앉아서 저게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저 여자가 지금 뭐라고 했는지 묻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귀찮아 하는 걸 보고 그것도 포기했다.


회사에서도 영어로 스트레스고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집에까지 와서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자니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결국 포기했다. 살아가는데는 지장이 없으니 그냥 대충 살아가자고. 영어로 상황에 맞게 농담을 할 수는 없지만, 남들이 웃을 때 5초 10초 늦게 알아채고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은 되지만, 마음 속에 있는 억울함을 속 시원히 풀어낼 수는 없지만, 싸워야 할 일이 있을 때 영어가 안 되서 피해야 하지만, 대충 알아듣고도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떡이지만, 미국인들과 심각한 자리는 만들고 싶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 미시건에 살다가 뉴욕에 왔잖아!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브롱스 동물원에 갔었거든. 아마 유태인 동네였던가 봐. 동물원이 어디냐? (Where is the zoo?) 했거든. 그랬더니 어떤 친구가 손을 내저으며 여기 사람들이 다 유대인이야! (All of the jews!) 하는 거야. 난 처음에 못 알아들었다니까! ㅎㅎㅎ.


도치형님이 하는 말이다.


- ㅎㅎㅎ 예, 웃기는 이야깁니다. 그런 이야기는 저도 많아요. 저는 처음 연수 갔을 때, 회사 레스토랑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못 알아듣는 거에요. 몇 번을 말해도 못 알아들으니 정말 당황스럽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나 보았더니 '새뮤치'라고 하는 겁니다. 샌드위치를 샌드위치라고 말하면 못 알아듣고 새뮤치하면 알아들으니.... 또 알라나 알라나 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감도 못 잡겠더라구요. 나중에 보니까 아틀란타를 알라나라고 하는 겅에요. 비행기에서 밀크를 달라고 해도 못 알아듣고, 가게에서 밧데리를 찾아도 못 알아들으니 참 내. 배터리? 배러리? 도대체 어떻게 발음 하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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