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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애마부인

(2012년 11월 30일에 쓴 글)

 

뉴저지 모리스 카운티 파시패니(Parsippany)라는 곳에 거구장이라는 규모가 꽤 큰 한식당이 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80번 하이웨이가 부근을 지나고, 미국 초창기 뉴욕과 펜실베니아를 연결하는 주도로이었던 46번 도로 옆에 있다. 비싸고, 불친절하고 맛없기로 유명하지만, 부근에 한식당이 없는 관계로 갈 곳이 없어 자주 찾곤 했다. 들리는 말로는 주방장이 스패니쉬라고도 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스패니쉬를 고용했다는 거다. 현지인들도 많이 찾았는데, 그들이 한식을 형편없는 음식으로 알까 봐 걱정이 될 정도이었다.


어느날 거구장에서 반 마일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황부자 순두부'라는 음식점이 생겼다. 규모는 비할 바 없이 작아, 거구장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구멍가게 수준이었지만, 초이스가 생겼으니 손님인 우리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주인이 '애마부인'이라는 영화를 찍은 '안소영'이라는 것이었다. 그 안소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순두부가 맛있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초기에 그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점심시간에는 다른 사람들과 합석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1980년 대 초, 야한 영화를 구경할 수 없었던 시대에 스티미(Steamy) 무비를 열었던 것이 애마부인이었고, 나도 그 행렬에 동참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사귀던 여자와 함께 종로 어딘가의 개봉관에서 그 영화를 보기위해 서성거렸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가슴 큰 여자가 속이 비치는 옷을 걸치고는, 아무 이유없이 에로틱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타고 가는 장면은 생각난다. 그것도 영화라고 찍었나 했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영화가 아니고 같이 간 여인 때문이었을 거다. 영화를 보면서 손도 잡았고 나중에는 이성과의 생애 첫키스로까지 이어졌으니까. - 나처럼 이 세상 어디선가에서 늙어가고 있겠지……


내가 그 가게의 단골이 된 것은 결코(?) 안소영씨 때문은 아니었다. 오로지 순두부 한 가지 메뉴였지만, $6.99 라는 비교적 싼 가격에 소고기, 돼지고기, 해물, 섞어, 김치 등의 메뉴에 순한 맛, 보통, 매운 맛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했다. 리쿼 라이센스가 없는 집이라, 저녁에는 근처 리쿼에서 소주나 위스키를 사 들고 가면 되니까, 저녁에 술 생각이 나는 샐러리맨의 가벼운 주머니에는 안성마춤이었다.


그녀는 비즈니스 초보자인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손님이 조금만 많으면 주문 받는 것도, 돈 계산하는 것도 허둥댔다. 거기다 저녁에는 예닐곱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홀에서 놀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에는 돈을 냈더니, '아이고, 준비한 잔돈을 차에서 안 가지고 왔네!' 하면서 차로 달려나가기도 했다. 손님이 별로 없는 늦은 저녁에는 '장부장님 같은 분들 때문에 자기가 장사를 한다.' 며 내게 립서비스를 하기도 했는데, 다소 짓궂은 농담에 능수능란하게 대꾸하는 것을 보고, 그 임기응변의 재치가 보통은 뛰어넘는다고 느꼈다. 영화배우로서의 관록을 보는 듯 했다.


얼마 후, 그 가게의 주인이 바뀌었고, 다시 그녀를 볼 수는 없었다. 가게가 웬만큼 자리를 잡자 다른 사람에게 판 모양이었다. 그녀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된 것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 얼마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TV에서 였다. 어느 방송의 아침 프로에 그녀가 나와서 사회자와 대담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유명했던 왕년의 에로 배우로서.


- 제가 미국 동부에서 꽤 큰 식당을 경영했었어요. 식당도 잘 되서 번창했구요. 그런데, 여자 혼자 아이를 미국에서 키운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그녀는 자신의 미국생활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었다. 그녀는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겠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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