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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개고기의 추억

(2012년 12월 22일에 쓴 글)

 

- 장형, 업스테이트 뉴욕에 보신탕 하는 곳이 있다는데, 안 갈래요?


○ 아니, 이 미국에서 개고기를 판다구요? 큰일 나려구!


- 산속에 있는 야영장인데, 그 근처에 골프하러 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개를 잡는답니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오백 불이라니까 몇 사람 회원을 모집해서 같이 갑시다. 다섯 사람만 모이면 일인당 백불만 내면 되고, 또 고스톱 멤버도 되니까 점심무렵에 가서 저녁까지 고스톱이나 치면서 보신탕이나 실컷 먹고 옵시다.


골프를 시작하기 전이니까, 아마 십년도 훨씬 더 된 어느 초여름 이야기일 거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C의 제안에, '미국에서 보신탕을 먹을 수 있다구!' 하는 생각에 호기심이 일었다. GPS도 없던 시절이라 지도책만 갖고 업스테이트 뉴욕을 향해 길을 나섰다. I-287을 타고 북쪽으로 가다가 17번 도로로 1시간 이상을 갔다. 한참을 헤매다가 찾아간 곳은 산속이었는데, 오두막 집과 넓은 잔디밭 그리고 연못이 있는 꽤나 깊은 숲속이었다.


닭과 오리를 놓아 키우고 있었고, 어렸을 때 동네에서 흔히 보던 누런 개들도 몇 마리 보였다. 마당 한 귀퉁이 지붕만 가린 곳에는 넓은 평상이 있었다. 커다란 들통에 무엇인지 펄펄 끓고 있는 부엌에서,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30대 후반의 주인은 조금만 기다리면 되니까 기다리는 동안 평상에서 고스톱이나 치라고 필요한 도구들을 평상으로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고스톱을 치는 대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연못에는 제법 굵은 송어들이 헤엄치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족구나 배구를 할 수 있는 운동장도 있어 한여름에 야영하기는 좋아 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190 에이커가 넘는 땅이라고 했다. 교회나 한글학교에서 야영도 할 수 있고, 놓아 기르는 토종닭이나 오리 또는 송어로 음식을 만들어서 근처에 오는 골프 손님들에게 제공하는데, 손님들이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플러싱이나 팔팍 같은 곳에서 오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 때문에 자주 찾을 것 같지는 않았으나, 이런 시골에서 어떻게 살까도 싶었다.


모처럼 한국식으로 하루를 잘 보냈다. 팔팔 끓고 있는 보신탕 냄비를 옆에 두고, 소주도 마셔가며 고스톱도 치고 떠들썩하게 늦은 저녁까지 잘 놀았다. 나중에는 고기가 꽤 남았는데, 아깝다며 보신탕을 좋아하는 걸 아는 사람들은 내게 싸주기까지 했다. 미국에서 개고기를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참, 한국사람 대단하다! 어떻게 이곳에서 보신탕을 할 생각을 했을까?'


- 얼마나 맛있게 잘 먹었는지 몰라요, 장 선생 덕분에. 귀한 것이라 팔팍에 사는 누님에게 갖다 주었더니, 우리 누님은 잔 뼈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쪽쪽 빨아 드셨다지 뭡니까, 헛헛헛. 다음에는 나도 돈을 낼 테니까, 구할 수만 있으면 좀 구해다 주쇼.


아이들 때문에 알게 된 K 선생은 나보다 댓살이 위였는데 보신탕 먹으러 간다는 것을 이야기 했더니, 좀 얻어다 달라고 했었다. 그 부탁으로 K 선생에게 한 그릇 보냈는데, 한참 나중에 만났을 때 이렇게 이야기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플러싱에는 파는 장사꾼이 있다고도 했다. 카고밴에 싣고 다니면서 입소문으로 아는 사람에게만 팔러다닌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여부를 내가 확인할 길은 없다.


갔다온지 한두 달쯤 지났을까? 결국 이곳이 로칼 TV방송국의 기획취재에 걸려 취재가 되는 비참한 사태(?)를 맞았다. 로칼 방송국(채널 12번이었던가? WMBC로 기억하는데 정확한지 자신은 없다)에서 한인을 고용해서 미리 예약을 하고는, 그 시간에 기자와 함께 카메라를 출동시킨 것이었다. 방송 뉴스시간에 나고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법석이 일어났다. 당연히 코리안에게도 망신살이 뻗친 것이다. 주인은 개가 아니고 코요테라고 우겼다. 코요테 사냥은 불법이 아니고 인디언들은 코요테를 사냥해서 먹기도 하는 풍습 때문에 같은 개과인 코요테로 흉내만 냈다고 한 것이다.


뉴스거리가 된 처음에는 떠들썩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조용해졌고 한참 후에는 주인이 방송국을 고소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보도했다는 것인데, 그 후로는 누가 이겼는지 아니면, 주인이 기소가 되었는지 들은 기억은 없다.


확실한 것은 주인은 우리에게 '코요테'라고 결코 하지 않았었다. 

하긴 코요테도 개의 일종이라 그랬을까!


<후기>

개를 가족처럼 사랑하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이야깁니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치르면서, 군사정권 시절 강제로 보신탕 집을 문닫게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생업(?)을 잃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섰는데 그런 분 중의 하나가 울진의 재래시장에서 개고기집을 차렸었습니다. 아주 소문난 솜씨(?)를 자랑하는 분이었던 모양입니다.

남편이 덤프트럭 운전기사로 취직이 되어 울진에 왔는데, 워낙 시골이니 단속이 없는 것을 보고 차렸던 거지요.


그때까지는 '사람이 어떻게 개고기를 먹을 수가 있느냐!'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는데, 울진 원자력 건설에 종사할 때 직원들에게 이끌려 한번 먹어본 이후로 개고기 예찬론자가 되었답니다.


로렌스님 처럼 힘든 수술하신 분들은 원기회복에 개고기가 최곤데......


미국에서 개고기 먹어보신 분 있으시면 한번 나와 보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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