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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복(福)

(2013년 6월 25일)

 

- 아빠, 복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몰라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이렇게 시작한 딸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아이가 일하는 회사에 40대 중반인 사람이 새로 들어왔다. 사업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져서 접고 창고 매니저로 들어왔다. 사업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회계를 비롯한 회사업무 전반에 걸쳐 모르는 게 없다. 같이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호흡이 척척 맞아 같이 일하는 게 즐겁다.


몇 달 전에 어카운팅 부서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이 갑자기 그만 두는 바람에 60대 초반인 아주머니가 새로 들어왔는데, 참 현명하고 좋은 분이다. 몇 년 전에 그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던 분이라 업무를 잘 알고 있었으며 매사에 합리적이고, 모르는 일을 질문하면 일의 전후좌우까지 상세하게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아는 게 너무 많아 같이 일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


창고 매니저는 아들만 셋인데,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가 그 나이의 아이들이 그렇듯 약간 엇나가고 있다. 그 아이를 다잡기 위해서 집안에 TV도 치우고 꼼짝달싹 못하게 훈육을 하고 있다. 아주머니가 창고 매니저에게 아이를 그렇게 훈육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자기가 옆에서 거들어도 창고매니저는 자신의 방법 뿐이라고 믿는다.


딸 아이는 자신과 비슷하게 못된 아빠(?)를 가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설득을 한 모양이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주장만 하며 고집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딸 아이 생각에는 그렇게 하면 아이는 더 비뚜루 나갈 것 같다고 생각한다.


- 아빠, 나는 복이 많은 것 같아.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 전에 아르바이트 했던 회사 사장님도 그렇고. 그 사장님이 아빠가 오시면 식사 한 번 같이 하고 싶다고 했어.


즉, 복인 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복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거지, 복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은 것 같다며, 아이의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60년대에 이민온 아주머니는 한 때는 집을 세 채나 가질 정도로 은퇴준비도 넉넉하게 했다. 그러나 남편이 갬블을 하면서 다 날렸고, 60이 넘은 현재도 생활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즐거운 마음르로 살며, 영어를 못하는 한인 노인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사회보장 상담사 자격증 시험을 보기도 한다.


로스쿨에서 아직 공부하고 있는 자기의 딸에게 이런 말도 했다고 전한다.


- 언제나 나는 네 편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너에게 등을 돌려도 난 네 편이다. 그러니까, 만에 하나 네가 잘못해서 원치않는 임신을 해도 내게는 숨기지 말아야 한다. 네가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네 편이니까.


그래, 들어보니 참 현명한 분인 것 같구나. 그런 분들을 가까이 해야 한다. 네가 그 회사를 그만 두더라도 그런 분과는 계속 연락하고 네트워킹을 유지하면서 평생 네 멘토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이곳에 온지 며칠 지나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IT부서에서 같이 일하던 옛날 부하직원들을 그렇게 만났다.


- ㄱ사장님이 자기 페이스북에다가 자기가 회사를 경영할 때, 보너스 많이 준 것을 후회한다고 올렸나 봐요. 그걸 본 사람들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말들이 많더라구요.


내 친구이기도 했던 옛날 사장의 페이스북을 보고 있느냐는 옛 부하의 질문에 별로 관심이 없어 잘 보지 않는다고 했더니 돌아온 말이다.


경제위기가 오기 전의 일이지만, 한때 회사가 잘 되어 몇 년 동안 큰 돈을 벌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사장에게 말한 것이 기억났다. 원칙이 없이 매니저들의 페버리티즘에 의해 나눠주는 보너스를 직원들은 별로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받았고, 무언가 잘못되는 것 같아 사장에게 충고를 한 적이 있었다.


○ 보너스를 주면 누구나 좋아하지. 나도 좋아, 돈 생기는데 좋지 않을 사람 있어?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질 때도 대비해야 하는 것 아냐? 잘 나갈 때 힘을 비축해서 어려울 때 대비해야 하는 거 아냐? 어려울 때 믿을 건 결국 돈 밖에 없을텐데.


- 법인 소득세는 40%가 넘어. 너무 억울하잖아. 직원들에게 돌려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


그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고집대로 좋은 일을 했으면 후회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 불법으로 착복하는 경영자도 많은데, 회사의 이익을 종업원들의 노고에 보답하는데 썼고, 직원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는데, 그는 쓸데없는 말로 자신이 쌓은 복을 스스로 허물고 있었다.


물론 그는 회사를 팔아 큰 돈을 벌었다. 한참 잘 나갈 때는 1억불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았던 회사를 경제위기 이후 회사가 어려워지자 그 반값에 팔았고, 회사를 위해 자기 일처럼 수고했던 많은 직원들이 강제로 떠나야했다. 만약 보너스를 덜 주고 힘을 비축했더라면, 그래서 경제위기를 잘 넘겼더라면 지금쯤 2억불 가치가 있는 회사로 성장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IMF 때 살아남은 기업들은 더 크게 성장했으니까.


딸아이로부터 한 수 배웠다. 복을 차버리는 사람이 있고 복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복을 타고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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