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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스트레스

(2013년 7월 7일에 작성한 글)

 

- 당신들이 일을 잘해서 월급을 주는 줄 알아? 천만에 말씀이다 이거야. 당신들 보다 더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어, 당신들에게 봉급을 주는 이유는 스트레스 값이야! 알아! 바로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이란 말야.


모두들 그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의 모습이었다. 당시 ㅈ실장은 사장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실세 중의 실세였다. 혹자는 그가 사장이고 사장이 비서실장이라고 농담삼아 이야기해도 통할 정도였다. 본사의 말단 과장 놈이 그런 엄청난 분(?)과 식사하는 영광스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바둑 때문이었다.


1980년대 일간스포츠에서 주관하는 '직장인 바둑대회'에 출전할 선수를 뽑는 바둑대회가 열렸고 승부에 운이 따라주어 다섯 명의 선발선수에 뽑혔다. 회사 기우회 고문으로 있던 ㅈ실장이 최종 선발전 후 저녁의 회식에 참석한 것이었다. 소위 끝발(?)있는 기획부서의 부장들도 여럿 있었지만, 워낙 높은 분이 참석한 터라 분위기가 서먹서먹하던 가운데 어떤 용감한 직원이 무슨 말 끝에 본사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말을 했고, 그 말에 대한 높으신 어른의 답변이었다.


- 스트레스를 고맙게 생각하라 말이야. 스트레스가 싫으면 사업소로 가면 돼, 본사에서 근무하지 말고. 자네들 말고도 본사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많아. 왜 그런거야? 승진하고 싶은 것 아냐? 다시 말하지만, 스트레스를 고맙게 생각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스트레스를 고맙게 생각하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소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그때 들었던 말을 후에 여러번 써먹었다. 아이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스나 오버타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말 할 때면 그때의 이야기해 주었다.


"직장생활이 편하기는 하지. 휴일마다 쉴 수 있고, 또 휴가도 있으니까. 시간만 되면 은행구좌로 착착 돈이 들어오고, 거기에 맞춰서 살면 되니까. 그 대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싫은 사람과도 매일 얼굴 마주 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기는 해. 세상에는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별로 없어. 세상사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어."


"불교에서는 인간세상을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라고 하듯이 삶 자체가 스트레스야. 따라서 사는 동안은 스트레스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현명하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거지. 중요한 건 너희들이 결혼하게 되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까지 가져오면 안 된다는 거야! 취미생활로 스트레스를 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동안 몰두하게 되고, 몰두하면 스트레스는 사라져. 요는 스트레스를 불평만 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어떻게 잘 푸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데, 쉬운 일은 아니지."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어. 예를 들어 바다에서 잡은 활어를 그냥 물탱크에 넣어서 가면 대부분 죽는데, 천적을 같이 집어넣어 적당한 스트레스를 주면 도착지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거야. 즉 적당한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긴장하게 만들어주고, 그것이 활력을 주어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거야.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


보통 자식들이 부모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자신과 말도 섞기 싫어하든 아들이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다. 자기 눈에 바보처럼 보이기만 하던 부모의 인생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부모의 보호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세상에 나가 인생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해되지 않았던 부모의 인생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 ㄱ 선생님, 아마 아드님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자기가 벌어 살게 되는 날이 오면 선생님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부자지간에 지나간 이야기를 옛말 삼아 할 날도 올 겁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엊저녁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 근처 식당에서 ㄱ선생과 마주 앉아 서로의 지난 이야기 도중, 미국식으로 키운 ㄱ선생의 아들 이야기를 들으며 그 분에게 드린 말이다.


<후기>

위에서 말한 ㅈ실장은 정권이 바뀌자 횡령 및 수뢰로 조사를 받게 되자 미국으로 도망을 간 것이 뉴스에 보도가 되더니, 몇 년 전 귀국해서 검찰에 자수한 것으로 신문에 조그맣게 실리기도 했었습니다. 소위 S대 법대 출신이니 친구들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들어왔겠지요.


오늘 7월 7일은 아들의 스물 일곱 번 째 맞는 생일입니다.


아이들과 해캔섹에 있는 다이너에 가서 브런치를 들면서 옛날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식당에서 점심시간에 달걀을 어떻게 쿡하느냐고 물었을 때 당황했던 이야기며,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이야기 등을 나누었는데, 한가지 특이한 것은 좋았던 이야기들은 대부분 잊고 있었고, 안 좋았던 이야기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아이들도 제가 살면서 겪었던 그 과정을 유사하게 걸어간다는 점입니다. 살면서 비슷한 실수나 잘못도 할 거고, 같은 정도의 희노애락도 겪게 되겠지요. 저처럼 영어에 불편도 없을 거고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겠지만, 인생에서 느끼는 고통의 무게나 크기는 아마 비슷할 겁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사바세계는 같은 고해일 테니까요. ^^


- 오늘 아침에 찍은 아들 생일 기념사진입니다. 저보고 사진 찍기를 너무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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