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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내가 만나본 분들 (1)

(2013년 7월 23일에 작성한 글)

 

1.

-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예요. 물론 일상적인 생활에는 문제가 없지요, 그래도 3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았고, USPS(우체국)에서 13년째 일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는 큽니다. 실내 스피커로 어나운스하는 내용은 웅웅거려서 알아듣기 힘들어요, 전화로 업무를 할 때는 아직도 여전히 긴장하게 되구요.


한국으로의 역거주를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ㅇ선생이 대답하고 있었다. 우리는 '파리바케트'라는 한국빵집에서 커피와 팥빙수를 시켜놓고 3시간이 넘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처럼 평범한 인상의 ㅇ선생은 평생 바르게만 살아온 듯한 모습이었다. 하나 뿐인 아들도 다 컸고, 나이로 보나 경제적인 상황으로 보나 내가 판단하기에는 편안한 여생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분이었다.


- 문제는 와이프에요. 네일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에 가려고 하질 않아요. 계속 설득하고 이야기 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 우체국도 옛날 같지 않아요. 예산 때문에 계속 정원을 줄이고 있지 않습니까? 위로부터 압박이 심해서 스트레스도 적지 않아요. 이제 그만 하고 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부부의 합의는 중요합니다. 제 경우는 집사람이 한국을 그리워 하고 돌아가려고 했지, 저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평생을 월급장이로 살아온 탓에 생존방법을 몰랐던 상태에서 레이오프를 당한 후, 생존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상처를 받았던 지라, 생활비가 적게 드는 한국에 가서 몇 년 살고 오자 라는 심플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살아보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 그동안 나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았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옷도 몸에 맞아야 편안한 것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싫어서 떠난 고국이고, 아직도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많은 나라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낯이 익고 편안했던 겁니다. 결국 내가 살 곳은 이곳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사모님께서 한국을 다녀오신지 20년이나 되었다니, 일단 같이 한 번 다녀오시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하지만, 급변하는 한국은 10년이면 강산이 적어도 세 번은 바뀌는 나랍니다. 아마 가보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물론 적응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편리한 곳이 또 한국입니다. 돈 벌고 살아야 한다면 한국이 좋다고 할 수 없겠지만, 있는 돈 적당히 쓰고 살기에는 한국이 편합니다, 최소한 우리 이민 1세들에게는.


혹자는 이렇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무엇이 편한지,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없느냐고? 그래서 생각해보다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에 살면서 생긴 버릇이 이민국이나 은행을 간다든가, 누구를 만나 영어를 써야 할 때는 가면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갈지 상상을 하며 머릿속으로 영작을 하곤 했다.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말을 들어 당황했던 경험이 많았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왔는데도, 그 버릇이 여전해서 '외국인 등록 사무소'를 갈 때나, 의료보험공단 같은 관공서에 갈 때 운전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무슨 이야기가 오고갈지 상상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세탁소나 네일가게 같은 스몰 비즈니스로도 적지 않은 돈을 벌었던 그런 호시절이 다시 올까요?


- 옛날 같은 시절이 다시 올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은 대규모로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홈데포나 루이스가 들어서면 반경 몇 마일 내 하드웨워 샵은 다 문을 닫고, 한아름이 들어서면 웬만한 한인 스토어는 다 죽고 맙니다. 샤프라이트 같은 곳에서도 세탁물을 받고 쓰시를 만들어 파는데요, 뭘. 거기다가 세탁소나 네일가게가 얼마나 경쟁이 심합니까? 다른 방법이 없어 하는 수 없어 문을 열고 있는 곳도 많습니다.


영어에 자신이 있는 몇몇 능력 있는 분들을 제외하면 이민자 대부분은 낯선 땅에서 긴장하며 살기 마련이다. 언어의 약점 때문에 할 말 다 못하고 손해보며 살았던 일도 부지기수다. 이민자로서 그런 일을 당하고 나서 억울해 했던 기억이 없는 분이 몇 명이나 될까? 옛날에는 달랐다. 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비즈니스가 괜찮았다.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해서 모든 것을 커버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겪고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이도 들어 힘들고 외롭기도 하지만, 돈 벌기는커녕 현상유지도 힘들어졌다.


뉴저지 중부의 좋은 동네에 살고 계시는 그 분과 세시에 만나 악수를 나누고 헤어진 것은 여섯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나중에 한국을 방문해서 제주에 들리시게 되면 꼭 연락을 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후기>

처음 미국에 올 때는 3달 넘게 체류하니까, 템포러리 허드레 일이라도 할까 생각했었는데 사람들 만나고 아이들이 부탁하는 뒤치닥거리 하느라고 그럴 시간이 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해서 사실 이 카페를 통해 몇 군데 부탁을 해놓았었는데, 그분들이 막상 일을 하라고 했어도 곤란할 뻔했습니다. 항상 생각과 현실은 다른 데 말입니다. ㅎㅎㅎ


그래서 이번 기회에 사람들이나 실컷 만나고 가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8월 2일 뉴저지를 출발해서 텍사스 달라스와 LA, 그리고 친구가 사는 덴버를 거쳐 8월 중순에 돌아오려고 합니다. 지난 번에 제가 쓴 글(저를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을 읽고 연락을 주신 분들을 만나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거면서 폐만 끼치러 돌아다니는 것 같아 두렵기는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이 카페를 통해서 공감을 나눈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혹 달라스나 LA, 덴버에 거주하시는 분들 중에서 같이 자리하고 싶은 분들은 댓글을 달거나 쪽지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아무 거나 잘 먹고, 마루바닥에서도 잘 자니까 조금이라도 그런 곳에 마음 쓰시지 말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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