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아이들과 자동차

(2013년 7월 7일에 작성한 글)

 

1.
2주 전 토요일, 딸 아이와 자동차를 보러 파라무스 17번 도로변에 있는 'Park Ave'라는 딜러에 갔다. 아이가 관심을 갖는 차는 ACURA TSX 라는 모델로 조만간에 단종될 구형이라고 한다. 신형은 ILX라는 모델인데, 시운전을 해보더니 지금 갖고 있는 어코드 보다 작아서 싫단다. 두 가지 모델을 시운전해 보고 가격만 물어본 채 그냥 돌아왔다. 스티커 프라이스는 풀 옵션이 TSX가 $34,000, ILX가 $31,000 정도인데, Tech Package 라는 옵션은 약 $3,000 가량이라고 했다.


2.

1주일 동안, 아이는 이곳 저곳의 딜러에서 견적을 이메일로 받았고, 그걸 근거로 차값을 협상할 작정으로 지난 주 토요일 다시 나섰다.


- 아빠, 사실 나는 잘 깎지 못한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내가 원하는 가격을 말하기가 힘들어지거든. 내 친구 그레이스 엄마는 3~4년 전 렉서스 살 때, 만 불이나 깎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깎을 수가 있지? 아빠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내가 잘못 하는 것 같으면 딜러가 알아듣지 못하게 한국말로 코치 좀 해줘! 알았지!


아이가 받은 최저가는 풀 옵션을 가진 TSX 모델이 $28,500 이었다. 1 주일 전에 만난 딜러의 사무실에 앉아서 $28,000을 제시했다. 리테일 가격이 $34,000 인 자동차를 $28,500 불 견적을 제시하며 $28,000에 달라고 하자 '마노'라는 이름을 가진 딜러가 정색을 하며, 'You need to go there!' 하며 차 팔기를 포기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견적을 보낸 딜러에 가 보기로 했다. 몽클레어 ACURA는 파라무스 보다는 한가해 보였다. 이메일을 보이자 그들은 옵션이 없는 기본사양 견적을 잘못해서 보낸 것이라고 둘러댔다. 스토어 매니저를 불러내 너희들 잘못으로 올 필요 없는 먼 곳까지 찾아왔으니 베스트 가격을 내놓으라고 하자, 잠시 기다리게 하더니 오늘 차를 가져갈 경우 자기들이 줄 수 있는 최저가격이라며 $31,500을 제시했다.


우리는 $31,000로 해주면 오늘 가져가겠다며 카운터 오퍼를 했다. 그들이 또 다시 우리를 기다리게 하는 사이 나는 아이와 점심 내기를 했다. 카운터 오퍼를 억셉트 하면 내가 이기고, 아니면 아이가 이기는 건데 결국 지고 말았다. 그들이 제시하는 최후가격은 $31,300 이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테크 패키지라는 게 별 거 아니잖아? 네비게이션, 오디오에 많은 음악 저장할 수 있는 하드 디스크 그리고 백업 카메라인데, 그게 3천 불 가치가 되나? 네비게이션이야 가장 좋은 것도 3~4백 불이면 살 수 있고, 오디오에 하드 디스크 달아서 무엇 하게? 요즘은 32 기가 짜리 USB도 3~4십 불이면 사는데. 그리고 뉴저지에 살면서 백업 카메라가 뭔 소용있니? 주차공간이 좁은 한국 같으면 몰라도! 한국에서 내가 써보니까, 백업 카메라 보다 백업 센서가 훨씬 편하더라! 백업 센서는 필요하면 2~3백 불이면 어느 한국업소에서도 달 수 있어!


걔들은 하루종일 차 사는 사람 상대하는 게 직업이야, 우리는 평생 차를 몇 대나 사보겠어? 그들을 페이스 투 페이스로 상대해서 이길 수 없어. 차라리 여기서 전화로 딜하는 게 훨씬 나을 수 있어. 옵션이 3천 불이라고 하니까, 풀 옵션 가격 3만에서 3천을 빼서 2만 7천에서 2만 8천을 기본사양의 목표가격을 정하고 협상하기로 하자. 먼저 파크 에브뉴의 마노에게 전화해서 2만 8천에 준다고 하면 바로 가서 산다고 해.


아이는 한 시간 넘게 전화하고 대답을 기다리고 하면서 결국 $27,700불에 ACURA TSX 기본사양을 몽클레어에서 살 수 있었다. 아이는 통장에서 3만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허전하다며, 만 불만 다운페이하고 나머지는 0.9%로 36개월 모기지를 했다. 아이의 크레딧 점수는 814점 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차를 가지고 나올 때는 6시를 훨씬 지나 있었다.


3.

10년쯤 어느날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현관 앞에 새 토러스가 서 있었다. 아들의 학교친구가 놀러온 것이었다. 아이의 설명에 의하면 유태인은 아이를 낳으면 아이 이름으로 펀드를 넣는데, 그 아이가 커서 고등학교 졸업 때가 되면 새 차를 사고 대학 등록금 대기에 충분한 돈이 나온다는 거다. 유태인인 친구가 그렇게 새 차를 샀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미국에서 12학년이 되면 사내아이들은 쪽팔려서 스클버스 타기를 꺼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아들은 이민자인 부모의 주머니 사정을 미리 짐작해서인지 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녀석이 졸업할 때 쯤, 이베이에서 옥션으로 2년 가량된 중고 소나타를 8천불 정도에 사주었다. 그 때 5백불 캐쉬를 주면서 개스값과 메인티넌스는 네가 알아서 하는데, 정 돈이 없으면 말하라고 일렀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 녀석은 내게 차 핑계로 돈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그 차는 7만 마일 정도 되었을 때, 턴 파이크에서 타이밍 벨트가 끊어져 퍼지는 바람에 큰 일 날 뻔했는데, 타이밍 벨트가 끊어지면서 엔진 헤드가 같이 망가지는 바람에 아이는 크게 고생했다. 현대 차 정비소에서 한 번 속고, 현대에서는 워렌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최소한 미국에 사는 세 명이 평생 현대차는 거들떠보지 않게 되었고, 그 주변사람들에게조차 한국차를 산다면 적극적으로 말리는 계기가 되었다.


4.

딸 아이와 같은 회사로 같은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 대해 열심히 가르쳤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나서 아이에게 차를 사도록 했다. 아이는 혼다 시빅을 원했고, 아이가 가진 돈으로는 만 불이 모자랐는데 당시에는 경기가 좋을 때라 모기지가 6%나 되었다. 모자라는 돈은 내가 내주었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는 탓에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덕에 가장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낡은 차를 갖고 다니는 동생이 직장생활을 시작하자 아이는 차를 동생에게 싸게 팔고(?), 자신은 어코드로 갈아탔다. 동생이 타던 차는 상대편 잘못으로 사고가 나는 바람에 폐차되어 다시 차를 사게 되었다. 이번에도 아이는 자신의 차를 동생에게 주고 사이즈가 큰 어코드로 갈아탔다.


이번에 아이는 결혼하는 언니에게 그 차를 7천불에 싸게 팔고 네 번째 차인 아쿠라로 갈아탔다. 그렇게 하라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그것이 부모는 물론 아무런 친척도 없이 미국 땅에서 세 아이가 지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사는 방식이었다.


왜? 내가 새 차 타는 게 배 아퍼? 그럼 네가 새 차 사면 되잖아! 그럼 나도 돈 안 쓰고 좋아. 난 너 때문에 새 차 산 거야!


<후기>

미국에서 어떻게 살라고 가르치기는 했습니다. 401K는 최대한으로 넣고, 차는 퍼질 때 까지 타고, 가급적 현금으로 페이해서 월 페이먼트는 최소로 줄여라 는 것이 그것이었지요. 아이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착하고 건실하게 살고 있다고 하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재미없는 글이지만 모처럼 글을 써보았습니다. 독립기념일인 목요일부터 이어지는 연휴 동안, 공원으로 백화점으로 은행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바닷가에 친구들과 간 녀석도 있고, 친구 만나러 나간 녀석도 있고 신부 드레스 손보러 간 녀석도 있어서 모처럼 혼자 조용하게 시간을 보낸 탓입니다. 그래서 간만에 카페지기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 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만나본 분들 (1)  (0) 2013.11.17
스트레스  (0) 2013.11.17
복(福)  (0) 2013.11.17
어떤 이민자의 아이들  (0) 2013.11.17
딸과의 데이트  (0) 201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