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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내가 만나본 분들 (2)

(2013년 7월 26일에 작성한 글)

 

2.

ㅅ선생의 집은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이 사는 교외지역에 있었다. 깨끗하고 깔끔한 서버번의 다운타운을 벗어나 숲속으로 난 왕복 2차선의 아름답고 좁은 도로를 지나 들어선 동네는 띄엄띄엄 집이 떨어져 있어 한 눈에도 평화스럽고 조용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내 아이들이 사는 팔팍과는 전혀 달라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내가 처음에 정착했던 뉴저지 모리스 카운티 덴빌이라는 타운도 전형적인 서버번이긴 했지만, 이만큼 한적한 모습은 아니었다. 미국에 산다면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전형적인 콜로니얼 스타일의 집 내부를 구경한 것은 아니나, 3 카 게러지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너댓 개의 침실에 화장실도 세 개 이상 있겠다 싶었다.


- 난, 무조건 한국을 떠나고 싶었어요. 이란이든 이라크든 어디든 한국만은 떠나고 싶었지. 우연히 친구네 공장에 갔는데 그 집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이민갔던 옛 직원이 인사겸 찾아왔던 것을 만났던 것이 미국으로 오는 계기가 되었어요.


-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와서 하루에 서너 시간이나 잤을까! 집에서 일감을 받아다가 봉제 일이나 세탁소 일이나 가리지 않고 하루에 스무 시간씩은 일한 것 같아요.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말고는 일만 했어요. 나중에는 코피가 납디다. 돈을 꽤 벌긴 했지만, 어느날 갑자기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그래서 가게를 하나 샀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수선집'인데, 장사가 꽤 괜찮게 되는 집이었어요. 10년쯤 전에 32만불을 주었습니다. 비싸지요. 그런데 다 주었어요. 까짓거 몇 만불 비싸면 몇 달 더 일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유태인이 많고 잘 사는 동네라 장사는 그럭저럭 되는 가게니까. 지금도 한 달에 그럭저럭 만 불 정도는 벌려요.


- 하하하, 난 영어에 스트레스 전혀 받지 않아요. 어렵게 커서 문교부 혜택을 많이 받지 않았어요. 영어도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이나 스트레스를 받지 나 처럼 아예 깡통이면 스트레스 받을 일 없어요. 내가 답답할 것 뭐 있어, 영어 못하는 날 상대하는 지들이 답답하지! 지들이 답답하니까 알아서 다 하게 돼있어요. 대신 우리 집사람이 영어를 좀 합니다. 나와는 일곱살 차인데, 나 때문에 미국에 와서 고생 많이 했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가게에 나가 아홉시에 문 열고, 여섯시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 밥 해먹고 잠 자고, 매일 그 생활이니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앞으로는 그 사람 하자는 대로 하고 살거에요. 이제 그 사람도 사는 재미를 좀 느끼고 살아야지.


- 큰 딸은 공부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지가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자신과 엇비슷한 사람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작은 딸도 대학 졸업해서 직장에 다니며 남자를 사귀고 있으니 얼마 있으면 결혼하겠지요. 그러면 이곳에 더 이상 살 필요가 없어요. 비즈니스는 팔기 어려우니 비즈니스부터 내놓고 팔게 되면 집을 내놓고 한국으로 갈 생각입니다. 그럭저럭 2~3년은 걸리겠지요. 연고는 없지만 강릉으로 가려고 해요. 충청도 고향에 물려받은 땅도 있긴 하지만 오래 떠나 있어서 마음에 안 들고, 제주는 섬이라 답답할 것 같아 생각이 없어요.


- 캐쉬는 가진 게 별로 없어요. 대신 비즈니스도 집도 모게지는 다 페이오프 했지요. 이것들 정리하고 나면 돈은 꽤 될 거예요. 집도 80만 불 주고 산 것이니까. 오천 불이 생기면 오천 불 갚고, 만 불이 생기면 만 불 갚고, 돈이 생기는 대로 갚아나갔더니 어느날 다 갚아지더군요. 앞으로 한국에 나가면 집사람이 하자는 대로, 원하는 대로 하고 살 겁니다.


하룻밤 ㅅ선생 댁에 묵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주로 듣는 편이었지만, 나와는 많이 틀린 삶의 여정을 걸어오신 선생의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저녁으로 LA 갈비를 먹으며 선생이 준비해 둔 소주 세 병을 다 비웠다. 잠자리도 아주 편안해서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에서보다 더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후기>

기억에 의존해서 글을 써 보았습니다. 혹, 본말이 전도된 내용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해 주시면 부분을 고치던가 전체를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재외동포가 720만 이라고 하는데, 그 많은 분들의 삶이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타의에 의해 고국을 떠난 재중, 재일 동포와는 다르게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교민들은 대부분 스스로 원해서 떠난 분들로, 그 분들 하나 하나의 삶이 다른 분들에게 레슨이 될 수도 있고 힐링까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 ㅅ선생의 집은 한국에서라면 저택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 입니다. 그러나 제가 '집 이야기'에 썼듯이, 큰 집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과 수고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부러움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선생이 소일거리로 넒은 백야드 한 귀퉁이에 만들어 놓은 텃밭. 노루나 토끼 같은 약탈자(?)에게 도둑 맞는 것이 더 많다고 하소연 하십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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