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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내가 만나본 분들 (3)

(2013년 8월 14일에 작성한 글)

 

- 아니예요, 아직도 많은 분들이 적법한 체류신분을 가지지 않은 채 살고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만 해도 절반 이상이 불법 체류자들입니다. 신도들을 무조건 많이 모으려고 그런 사람들에게 자기 교회에 나오면 신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무책임한 말을 하는 목사 때문에 혹시나 하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지요.

미국경기가 나빠져서 불법체류 하는 사람들은 이제 별로 없지 않느냐는 내 말에 ㄱ선생이 반박하고 있었다.


- 사실, 역이민 카페에 들어와서 글이라도 볼 수 있는 분들은 형편이 아주 좋은 분들입니다. 60이 넘어 컴퓨터를 사용하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여유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봅니까? 자식들이 대학을 나오고 괜찮은 직장에 다니는 이민자들이 몇 %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듀크처럼 자식들이 다 자라서 쓸만한 직장에 다니고 제 밥벌이 하는 분들은 정말 성공한 겁니다.


많은 이민자들이 자식들을 의사나 변호사로 훌륭하게 키웠는데, 나는 내 잘못으로 아이들을 그르쳤다는 내 말에 대꾸하며 말을 이어갔다.


- 내가 아는 사람은 면허증 갱신 때문에 워싱턴 주까지 가서 받아 왔어요. 운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을 가졌는데, 면허증을 갱신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동안은 브로커를 끼고 쉽게 받았었는데, 워싱턴 주도 이제는 까다로워져서 몇 달 거주해야 한답니다. 할 수 없이 그 와이프가 두 달인가 살다 왔어요. 기껏 면허증 갱신하는데 2만 불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미국에 살고 싶어하는 거지요. 그런 사람들 아직도 많습니다.


왜 내 눈에는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운 부모들만 보이는 것일까? 남과 비교하는 것이야말로 불행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알지만, 머리로만 이해할 뿐 가슴으로 깨닫지 못한 탓일까! 아직도 자꾸 남과 비교하려는 자신을 본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실천하기에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래서 법정의 글을 읽어도 법정과 같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는 불가능 하다.


그렇게까지 해서 미국에 살아야 할까?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 정도 노력과 고생을 한다면 한국에서 떳떳한 신분으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화제를 주택문제로 돌렸다. 뉴저지 팔리세이드 팍을 돌아다니다 보니 온통 듀플렉스 천지였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2005 ~ 2007년 주택거품이 극에 달했던 시절, 집주인들이 돈을 벌어볼 계산으로 듀플렉스를 지었던 것이다.


- 다른 곳은 몰라도 뉴저지, 특히 팔팍에서는 집 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이 듀플렉스 집주인들이 모게지 못내서 만세 부르고 5 ,6 년 째 그냥 사는 집들이 많아요. 은행에서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냥 두고 있는 거예요. 사람 쫓아내면 집이 망가지잖아요. 이런 것들이 어떻게 정리 될런지 모르지만, 아직은 아니예요. 모게지 못 내면서 골프 치러 다니고, 오히려 돈 번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요, ㅎㅎㅎ.


ㄱ선생은 나보다 한 두 살 연배지만, 많은 부분이 서로 통했다. 30년이 훨씬 넘는 미국에서의 인생여정이 나처럼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었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이민 경험들이 서로에게 힐링이 되어 아픔을 쓰다듬는다.


ㅈ선생은 2000년 무렵에 미국에 왔다고 했다. 불법체류로 있는 동안 숱한 고생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몇 년 전에 그린카드를 받았다고 한다. 남에게 속기도 하고 스폰서의 세금을 내주기도 하면서 8~9 만 불을 썼다는 지난 이야기를 남의 일처럼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식당도 경영하면서 풍족한 생활을 했지만, 여기서는 한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노동의 댓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억울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몇 년 전, 배짱 하나로 업스테이트 뉴욕의 코넬대학 근처의 조그만 식당을 인수하여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차 수리도 할겸 나도 만날 겸, 겸사겸사 왔다는 ㅈ선생은 수리비가 적지 않게 나온다는 말에 아예 차를 새로 구입해서 가져갔다. 그래도 그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혼자의 힘으로 가족이 정착한 것을 대견하게 여기는 듯 보였다. 큰 아들은 좋은 직장을 잡아 캘리포니아로 갔고, 작은 아들은 아직 대학에 다니지만 썸머 인턴을 위해 팔팍에 와 있었는데 늠름하고 준수한 청년이었다.


모두들 언젠가는 풍족한 미국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 분들이었다. 미국 시민으로 미국을 자신의 나라로 여기고 살 자식들을 이곳에 두고, 또는 이곳에서 남기를 원하는 형제자매들을 뒤로하고 그 분들이 생각하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 나면,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해 마음 속의 고국으로 돌아갈 분들이었다.


<후기>

립 서비스인 줄은 알지만, 제가 만나 본 많은 분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이 카페를 찾는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카페에 들어와 읽을 글이 없으면 허전하다는 말씀도 했습니다. ^^

보다 깊이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의무감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지난 2년 반 동안의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보람도 느꼈습니다.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이 작은 마당이 이민이라는 쉽지 않은 인생여정을 경험한 분들에게 휴식과 힐링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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