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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지리산둘레길 - 여덟 천왕봉에 오르다 8일째 아침이다. 민박보다는 모텔이 편하다. 인터넷, TV, 욕실, 면도기부터 생수나 커피까지 비치되어 불편이 별로 없다. 민박은 화장실이 떨어져 있거나, 인터넷이 안 되거나 항상 불편한 게 있었다. 면도까지 말끔히 하고 여장을 챙겼다. 잠도 그런대로 잘 잤다. 문제는 여행경로였다. 여행 첫날에 걷기 시작한 곳이 바로 ‘인월’이었다. 앞으로도 걸었고 뒤로도 걸었다. ‘낙향’님이 점심 때 온다고 했으니, Y선생과 헤어졌던 장소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서 끊어진 길을 계속 걸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점심때까지 3코스 시작점에서 일주일 전 걸었던 곳까지와, 어제 길표시를 놓치는 바람에 엉뚱한 길로 들어섰으니 그 끊어진 길까지 걸으며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9시 가까이 되서 느지막하게 모텔을 나섰다.. 더보기
지리산둘레길 - 일곱 지리산둘레길 1, 2코스를 한 번에 걷다 엿새 째 아침이다. 저녁에는 지치고 아프고 땀에 잔뜩 절어 피곤하지만, 아침이 되면 말끔히 회복되어서 다시 나서는 길이 상쾌하다. 오늘 걷는 코스는 전남 구례 산동에서 전북 남원 주천으로 이어지는 ‘지리산둘레길’ 마지막 15킬로 구간이다. 산동에 못 미치는 곳에서 숙박했으니까 17킬로 정도를 걸어야 한다. 더 갈 수 있어도 주천까지만 가기로 했다. 빨래도 밀렸고 일찍 쉬고 싶었다. 길표시가 나타나지 않아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등 헤매다가 겨우 코스에 들어설 수 있었다. 산동면이라는 동네로 들어섰다. 돼지머리 국밥이라는 간판이 정겹게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6천 원짜리 국밥을 시켜놓고 주변을 돌아보니 예쁘게 생긴 병에 붉은 색이 도는 말간 액체가 담겼다. ‘산수.. 더보기
지리산둘레길 - 여섯 뭔 지랄로 걸어 다닌댜! 그런 시간 있으면 일이나 혀! ‘낙향’님에게 너무 신세를 지는 것 같았다. Y선생과 헤어져 나는 온 길을 되돌아갔고, 잠시 후 ‘낙향’님과 조우했다. 전후사정을 알지 못하는 ‘낙향’님은 Y선생 쪽으로 차를 몰았다가 결국 되돌렸다. Y선생에게 들은대로 조영남의 히트곡으로 유명해진 ‘화개장터’로 차를 몰았다. 가는 동안 나는 코스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를 생각해 두었다. 도로변의 가로수는 대부분 벚나무들이었다.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벚나무들은 이번 주말이면 만개할 것 같았다. 제주의 ‘왕벚꽃 축제’나 ‘여의도 벚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벚나무 군락지임에 분명했다. 섬진강변을 따라 수십 킬로에 걸쳐 심어진 가로수가 바로 벚나무다. 이 벚나무들이 다 만개한다면 대단한 .. 더보기
지리산둘레길 - 다섯 길에서 만난 사람, 길에서 헤어지다 올레길을 다니면서는 숙박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제주에서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차로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지리산둘레길’을 걸으면서 오랜만에 숙박을 찾게 되었다. 민박이나 펜션의 의미와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미국에서 여행할 때는 주로 모텔을 찾았고 출장 가서는 호텔에서 숙박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번에 ‘지리산둘레길’ 주변의 숙소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았다. - 민박: 현지인들이 집을 개조하거나 증축하여 올레꾼(제주 올레를 걷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나 둘레꾼들에게 숙박을 제공함.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보통 식사를 포함하며 일인이면 3만원, 2인이면 4만원을 받는다. 물론 비수기 때의 가격이며, 한여름의 성수기에는 장소에 따라 부르는 게 값이다. .. 더보기
지리산둘레길 - 넷 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오늘은 일요일이자 부활절이었다. 몇 년 전부터 신앙생활을 냉담하고 있으니 이렇게 편할 수(?) 없다. 예전 같으면 부활절 특송 연습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지는 않지만 가족이나 친구 단위로 등산하는 그룹들이 모처럼 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들까지 6명과, 40대로 보이는 4명의 중년들이었다. 둘레길로 들어선 웅석봉 헬기장에서부터는 평탄한 내리막이었다. 즐거운 마음과 행복한 생각으로 '룰루랄라' 흥얼거리며 7코스의 종점인 '운리'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겨우 차가 한 대 지날 수 있는 길에 차량이 한 대 서있었고, 그 곁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분이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분과 서로 쳐다보며 눈길이 닿은 순간이었다. 마치 부처님의 얼굴.. 더보기
지리산둘레길 - 셋 한창 청년이네! 그렇게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새벽 1시에 밖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6시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일어나 출발준비를 했다. 화장실에 갈 때의 한밤중 날씨는 오한이 느껴질 정도로 추웠으나 아침의 날씨는 예상보다 포근했다. 할머니가 차려주는 아침을 맛있게 먹으며 아들 자랑을 들었다. 56살의 셋째 아들이 판사라며 어릴 때부터 착하기 그지없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엊저녁 전화로 흥정할 때는 방값 3만원에 아침 식사비를 포함하기로 했는데, 할머니는 그게 영 서운하다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식사비를 Y선생이 냈다. 8시 30분 여장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설악산 오색약수 코스가 연상될 만큼 가파른 길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힘만 드는 오르막이 낫다. 어제 고생해.. 더보기
지리산둘레길 - 둘 젊은이들은 느지막이 떠난다고 했다. 그들은 아침을 컵라면으로 때울 요량인지 커다란 라면 두 개를 사놓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어차피 자기들 자는데 돈을 낸 것이니 필요없다고 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만원짜리를 놓고 나왔다. 숙소는 식당과 가게를 겸하고 있었기에, 아주 쉽게 생각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사람을 불렀다. 대답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는 내실로 보이는 곳까지 들어가 방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래도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 가다보면 다른 가게가 있을 걸로 생각하고 둘레길 표시를 따라 홀로 길을 나섰다. 아침은 굶는다고 해도 마실 물은 필요했다. 하룻밤을 자고 났더니 다리는 말짱히 회복되어 있었고 시간은 8시 45분이었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 것인가. 가게는 더 이상.. 더보기
지리산둘레길 - 하나 아침 7시가 되는 것을 보고 부천의 동생 집을 나섰다. 걸어서 30분 걸릴 것으로 예상한 부천 소풍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7시 20분경으로 시간이 한참 남았다. 남원행 직행버스는 예정된 7시 50분에서 1분도 틀리지 않게 출발했다. 처음부터 ‘지리산둘레길’을 걷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대전에 들려 아는 사람을 만나고 전주나 군산을 거쳐 목포에서 섬 두어 개를 둘러보겠다고 막연하게 작정한 것은 한국에 태어난 사람이 전라도 지방을 여행한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이 이유이었다. 인터넷으로 코스를 대충이라도 정하려고 조카 컴퓨터 책상에 앉았고, 책상 위에 있는 탁상달력을 우연히 보았다. ‘한국의 걷기 좋은 곳’이라는 타이틀의 달력 첫 장이 ‘지리산둘레길’이었다. 60년 넘게 열심히 산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 더보기
안경 안경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이 50년 가까이 되었다. 중학 입시생이었던 국민학교 6학년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판자집에서 살 만큼 가난했어도 자식을 명문 중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모친은, 없는 살림에 과외공부까지 시키며 열두 살짜리 꼬마를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공부하게 만들었다. 안경을 쓴 아이들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라 칠판 글씨가 안 보여도 이유를 알지 못하고, 옆에 앉은 짝의 공책을 보며 칠판을 대신했다. 그렇게 공부하고도 입시에 떨어지고 난 후, 친척집에서 TV를 보는 내 모습을 본 선친의 사촌동생 되는 분의 지적으로 안경을 써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후부터 안경은 인생의 일부분이 되었다. 정확한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최근에 읽었던 기사에 의하면, 아이들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