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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지리산둘레길 - 여섯

뭔 지랄로 걸어 다닌댜! 그런 시간 있으면 일이나 혀!


‘낙향’님에게 너무 신세를 지는 것 같았다. Y선생과 헤어져 나는 온 길을 되돌아갔고, 잠시 후 ‘낙향’님과 조우했다. 전후사정을 알지 못하는 ‘낙향’님은 Y선생 쪽으로 차를 몰았다가 결국 되돌렸다. Y선생에게 들은대로 조영남의 히트곡으로 유명해진 ‘화개장터’로 차를 몰았다. 가는 동안 나는 코스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를 생각해 두었다.


도로변의 가로수는 대부분 벚나무들이었다.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벚나무들은 이번 주말이면 만개할 것 같았다. 제주의 ‘왕벚꽃 축제’나 ‘여의도 벚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벚나무 군락지임에 분명했다. 섬진강변을 따라 수십 킬로에 걸쳐 심어진 가로수가 바로 벚나무다. 이 벚나무들이 다 만개한다면 대단한 구경거리가 될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화개장터에 도착하여 어렵게 주차한 후 장터를 둘러보았다. 제일 먼저 들어간 곳에서는 중고 등산용 스틱을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무조건 골라서 3천원이었다. 아마도 등산객들이 잃어버리거나 음식점에 왔다고 깜빡 잊고 두고 간 것들이라고 짐작되었다. 제법 쓸 만한 것을 골랐으나 ‘낙향’님은 일절 내가 돈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5천 원짜리 노인용 지팡이는 써보지도 못한 채 쓰레기가 되었다. 나는 한 짝이 더 편했다.


장터는 사람들로 붐볐다. 장터치고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도 있었다. 주전부리로 메밀떡을 사서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추억의 맛을 상기시켜 보려 시도했다. 점심으로는 잡어탕으로 소주를 한 병 곁들였다. 바로 옆에서 흐르는 섬진강에서 잡은 여러 종류의 민물고기들로 만든 매운탕이었다. 미국에서 한의사이었던 ‘낙향’님으로부터 건강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런 말을 주절거렸다.


- 법정스님의 책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꽃은 가까이서 봐야 하지만, 어떤 꽃은 멀리서 조망할 때 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도 그렇습니다. 나무를 너무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면 썩은 나무, 벌레 먹은 나무, 쓰러진 나무만 보입니다. 건강한 숲 전체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숲은 멀리서 관조해야 어떤 모습의 숲인지 정확히 인식할 수 있지요. 사회도 그런 것 아닐까요? 한국사회를 너무 가까이서 보면 더러운 것, 썩은 것, 나쁜 것들만 보입니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달라집니다. 건강한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Stay away’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외람되지만, ‘낙향’님의 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두 시가 가까워오자 ‘낙향’님이 갑자기 서둘렀다. 부인께 가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리산둘레길’ 마지막 두 코스 전에 내려달라고 했다. 거기서부터 이틀간 두 코스를 걸어 남원에 도착하면, 첫날 지나쳤던 1, 2 코스를 걸으려는 생각이었다. 내린 곳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새카맣게 보이는 산등성이를 가리키며 그리로 넘어가면 된다고 했다. 시간은 두시 20분이었고 내가 내린 곳은 전남 구례군 광의면 면사무소 부근이었다. 배낭끈을 조여 매고 그 산등성이를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구수하게 또 어떨 때는 악취가 되어 코를 자극하는 거름냄새를 맡으며 들판을 꽤 걸어서 오르막에 다다랐다. 언덕 위에는 마을이 있었고 마을 어귀 축사 비슷한 곳에 어떤 노인이 보이기에 길을 물었다. 세모꼴의 눈에 세모꼴의 얼굴이 약간 얽어서 다소 우스꽝스럽게 생긴 노인이 길을 물어보는 내게 호통을 쳤다.


- 뭔 짓여? 거길 왜 힘들게 걸어서 간댜! 그럴 시간 있으면 일이나 햐! 가고 싶으면 저 산골짜기 보이지? 무조건 그쪽으로 쭉 올라가. 그걸 넘고 또 그런 골짜기 몇 개 넘어가면 남원잉께!


아스팔트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고 나서야 둘레길 표시를 만날 수 있었다. 이삼 십 가구로 보이는 마을 이름들도 재미있었다. 난동 마을, 당동 마을. 점심 때 소주를 마셔서 그런지 가파른 길에서는 다소 힘이 붙였지만 견딜 만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김광석과 김현식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청명한 하늘만 있을 뿐, 사람이라고는 그 어디에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갑자기 흥이 돋았다. 소주 탓이었을까? 아니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귀한 ‘자유함’을 느꼈을까? 목청을 있는 대로 꺼내 소리를 질렀다. 김광석이 되었다가 김현식을 멋들어지게 흉내 내기도 했다. 갑자기 김광석도 꺼지고 김현식도 사라졌다. 그곳에는 나만 있었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픈 감정으로 변해 눈물이 흘렀다.


“야, 이 나쁜 자식들아! 이 좋은 세상을 두고 죽기는 왜 죽어? 악착같이 살아서 나처럼 이토록 좋은 세상을 보고 즐겨야지! 니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다! 그래, 언젠가 이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없게 될 때 니들을 만나게 갈 거다.”


산등성이를 넘어 내려가는 몇 시간 동안, 나는 김광석이 되었다가 다시 김현식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김현식과 김광석은 내가 되었다.


지그재그로 재까지 가는 길이 힘들었지, 거기서부터 내려가는 길은 비교적 쉬웠다. 몇 시간을 걸어도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 어귀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몇 분의 아주머니가 담소하고 있었다. 시간도 6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민박할 곳을 물어보니 저쪽으로 가보라고 한다. 민박집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었으나 없는 번호라거나 응답이 없었다. 아직 이른 시즌이라 그런 것일까. 도대체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다시 되돌아 나와 둘레길로 향했다. 멀리 모텔이 보였다. 둘레길과 방향은 달랐으나 인터넷이 될 것 같았다. 모처럼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었다. 왼발 엄지발가락 밑에 생긴 물집이 커졌고, 뒤꿈치 위에도 작은 물집이 생겼다. 월요일의 5일째 걷기는 이렇게 종료되었다.


▼ 이곳에서 스틱을 샀다. 골동품이나 악세서리를 파는 가게인데 한쪽에 중고 등산용 스틱을 수북하게 쌓아놓았다.


▼ 화개장터의 모습.


▼ 큰 굴과 민물고기, 민물 게 등이 보인다.


▼ 산골동네 답게 온갖 약초들이 보인다.


▼ 장터 중앙에 있는 팔각정에 올라 장터를 조망했다.


▼ 이곳에서 옛날 엄마가 해주던 메밀떡을 사먹었다.


▼ 한국인이라면 언제 어디서도 이 정도는 놀 수 있어야 한다. 관광객이 각설이와 함께 춤추고 있다.


▼ '낙향'님과 헤어져 '지리산둘레길' 표시가 있는 이곳까지 오기가 힘들었다. 이 지역은 전남 구례군이다.


▼ 지리산 주변은 특히나 감나무가 많았다.


▼ 또한 산수유가 많이 보였다. 구례군의 산수유 축제가 지난 주말에 있었다.


▼ 저 밑에 보이는 마을에서부터 올라왔다.


▼ 이곳은 구리재다. 옛날에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불이 이곳에서 불로장생의 약을 찾았다고 전해진다.


▼ 비교적 손쉬운 내리막길이 숲속으로 이어졌다.


▼ 활짝 핀 산수유. 내게는 낯선 나무지만 이곳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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