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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도서관의 추억 (2012년 1월 21일) 60년대 말 중학생 시절, 요즘같은 겨울이면, 춥기만 한 단칸방을 벗어나서 공부한다는 구실로 새벽에 기차를 타고 남산 도서관에 갔던 기억이 있다. 집에서 한참을 걸어나와 화전역(지금의 경의선 화정 전철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남산 중턱까지 걸어갔었다. 일찍 도착하지 않으면 좌석이 다 차서 들어갈 수 없으니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야 했다. 그나마 부모님이 돈을 주지 않으면 갈 수가 없었다. 총 50원 정도가 들었던 것 같다. 왕복 기차비가 15원씩 30원(돈이 모자랄 때는 도둑 기차도 많이 탔었다), 입장료 10원(확실하지 않다. 무료는 아니었던 듯) 그리고 점심 때 국물이 10원이었다. 멸치국물에 튀김 부스러기같은 것이 둥둥 떠 있던 따끈한 국물에 차디찬 도시락을 말아.. 더보기
겨울의 한라산 (2011년 12월 28일) 금년 겨울은 지난해처럼 춥지는 않은 것 같다. 제주에 이사해서 맞은 첫겨울은 너무 추웠던 기억이 강렬하다. 난방 시스템에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낯설은 곳에서 마음이 추웠던 탓인지 참 춥게 느껴졌다. - 원래, 제주 겨울이 노상 이렇게 춥습니까? - 내가 제주에서 태어나 70년을 살았는데, 금년 겨울같은 추위는 처음 봅니다. 원래 서귀포에는 눈이 거의 오지도 않고 오더라도 땅에 떨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녹아버리는 곳인데, 금년에는 서귀포에도 눈이 쌓였다니 무슨 말을 해요? 작년 겨울, 반상회에서 만난 이웃에게 물었더니 그 분이 전한 말이다. 지난 9월부터 매달 적어도 한번씩은 한라산을 오르리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그래서 9월에는 영실에서 윗새오름까지 올랐다가 어리목으로 내려왔는데.. 더보기
역이민 한국생활 1년 (2011년 12월 22일) 결코 원하지 않았었던 역이민이었지만, 제주에 둥지를 틀고 살기 시작한 지도 1년을 넘겼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본다. 생활비 및 소비생활 분석 - 건강보험: \86,000 - 전화, 인터넷, TV: \50,000 - 휴대폰 2개: \52,000 - 가스비: \50,000 - 전기: \45,000 - 화재보험: \30,000 - 현금인출: \150,000 - 카드사용: \500,000 월 고정지출이 평균 \963,000 이었던 것으로 대략적으로 집계되었는데, 각 항목 별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한국의 건강보험은 직장과 지역으로 나뉘는데, 직장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지역의료보험에 해당한다. 지역의보 가입자의 프리미엄은 재산에 의해 산출된다. 매년 11월에 변동된 재산에 의거 다시.. 더보기
음식유감(飮食有感) (2011년 12월 2일) 먹고 싶어도 지금은 먹어볼 수 없는 추억의 음식들이 있다. 1.4 후퇴 때 월남하신 부친 때문에 어릴 적에는 이북 음식을 즐겨 먹었다. 평상시에 자주 먹는 음식으로는 비지찌게가 있다. 노란 색의 콩을 끓는 물에 데친 뒤 멧돌로 갈은 것을, 돼지뼈다귀를 고아낸 국물에 시래기와 같이 넣고 가마솥에서 끓여내면 몇 날 며칠을 그것만 먹었다. 구수한 콩냄새로 채워진 대접에 비지를 채워 비빈 것 보다는 훨씬 묽게 밥을 넣고 양념간장으로 간을 맞춰 먹었다. 그것이 가난한 집의 엄마가 가족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영양식이었다. 한 번 우려낸 돼지 뼈다귀는 잘 보관했다가 그 후에도 몇 번은 더 가마솥에서 고아지고 그 국물에 다시 비지찌게가 만들어졌고, 식구들은 배를 두드려가며 비지가 가득한 그.. 더보기
재밌는 사람들, 재밌는 한국 (2011년 11월 23일) 인터넷을 발달로 TV도 다운로드해서 보지 실시간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불필요하게 기다리는 일도 없고, 쓸데 없는 객들이 나와 주절대는 것은 보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은 노래를 하는 시간보다 별 볼 일 없는 매니저라는 코메디언들이 본 프로와는 상관없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시사 프로그램을 볼 때도 관심없는 부분은 건너 뛸 수가 있다. 그런데 실시간으로 보는 프로그램이 몇 개 있다. 화요일에 하는 '러브 인 아시아'라는 프로그램이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우리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더듬거리는 언어를 보면서 내가 미국에서 살 때 미국인에게 비친 모습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 더보기
이제는 접어버린 나의 꿈 (2011년 11월 10일)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미국에 정착하여 살면서 갖게 된 꿈이 있었다. 65세가 은퇴연령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회사에서 븥잡더라도 60세에 그만 두겠다는 거창한 계획(?)과 함께, RV를 사서 와이프와 둘이 미국 50개 주를 다 돌아볼 생각이었다. 한 달씩 잡아도 5년이 걸리고, 두 달씩 잡으면 10년이 걸릴 대장정(?) 아닌가? 맑은 물 흐르는 콜로라도의 계곡에서는 두어 달로는 부족할 거고, 겨울에는 플로리다의 서안의 야자수 그늘에서 책이나 보며 수영이나 즐기고, 엘로우 스톤에서는 온 여름을 지내는 것도 꿈꾸었는데, 그 이유도 있었다. 한국에서 사업부장이라고 껍쩍거릴 때 내게 납품하는 회사에 대표로 있던 한 사장이란 분이 있었다. 그 분에게 형님이 계셨는데 오래 전에 미국에 .. 더보기
일자리 찾기 경험 (2011년 11월 3일) 사실 그동안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받으려고 구속되는 것도 싫기도 했고, 당분간 자유를 누리고 싶기도 했다. 또 제주에 정착하는 시간도 필요했고, 미국을 떠났지만 뒤처리가 필요한 자잘한 일들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일자리 찾기를 전혀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노동부에서 운영하는 고용지원센터에 취업자로 등록을 하고 이력서를 제출했었지만, 전혀 연락이 없었다. 집사람이 벼룩시장의 구인광고를 보고 몇 군데 전화를 해보았지만, 대부분 45세 이하에만 기회라도 주어졌다. 몇 군데 구인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보내보기도 했지만 한강에 돌을 던진 것 처럼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운전기사를 모집한다는 광고에 연령제한이 없었다. .. 더보기
도치형님 傳 (2011년 10월 30일) 도치형님을 만난 것은 금년 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미주 중앙일보 블로그에 쓴 글을 보시고 댓글에 전화번호를 남기시어 찾아갔었는데,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30킬로가 넘는 먼 길(?)을 운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분의 블로그 아이디는 '도치'지만, '한국30년, 미국27년, 제주8년'이라는 다소 긴 별명은 어디에서 얼마나 사셨는지 금방 짐작케 한다. 나보다 10년 훨씬 넘게 미국에서 사신 분이 제주에 돌아와 8년 동안이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날 만나서 했던 이야기들을 다 옮길 수는 없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대화다운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아 마음이 후련해졌다. 더군다나 나와 같은 뉴저지에서 사셨던 분이라 말이 잘 통하기도 했다. 도치.. 더보기
세상사람이 다 스승이다. (2011년 8월 5일)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굳이 논어를 들지 않더라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 배울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서는 순진무구함을 배우고, 성공한 사람들에게서는 그들의 노력을 배우고, 실패한 사람들에게서는 그들의 실수를 배워 교훈을 삼는다. 스스로에게서도 배운다.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그 이유를 철저히 분석하여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고, 잘한 경험들은 내일을 사는 지표로 삼는다. 그래서 경험한 길을 가는 것은 쉽다. 주저하거나, 망설일 필요도 없고 가야할 길을 잃어버릴 위험도 없.. 더보기
제주의 여름 (2011년 7월 29일) 오랜만에 한국에서 보내는 여름이다. 육지에서는 물난리가 나서 난리라는데, 이곳은 파아란 하늘과 흰 구름 아래 매미소리만 가득하다. 어제는 제주가 35도에 육박했다고 한다. 화씨로는 95도 가량이 된다. 내가 사는 곳은 해발 200미터쯤 되는 곳이라 해변보다는 시원하다. 엊그제는 신제주에 사는 친구(이 카페때문에 알게 된 돌싱)가 와서는 자기가 사는 곳보다 훨씬 시원하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을 보니 그래도 좀 나은 것 같기는 하다. 뉴저지에서도 백도를 넘는 기후를 많이 겪어보았지만 그때는 그래도 견딜만 했었던 것 같다. 하긴, 하루종일 시원한 사무실에서 지내다가 저녁에야 집에 돌아오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도 온도만 맞추어 놓으면 에어컨도 자동으로 돌아가고, 또 한국처럼 습하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