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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겨울의 한라산

(2011년 12월 28일)

 

금년 겨울은 지난해처럼 춥지는 않은 것 같다.

제주에 이사해서 맞은 첫겨울은 너무 추웠던 기억이 강렬하다. 난방 시스템에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낯설은 곳에서 마음이 추웠던 탓인지 참 춥게 느껴졌다.


- 원래, 제주 겨울이 노상 이렇게 춥습니까?


- 내가 제주에서 태어나 70년을 살았는데, 금년 겨울같은 추위는 처음 봅니다. 원래 서귀포에는 눈이 거의 오지도 않고 오더라도 땅에 떨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녹아버리는 곳인데, 금년에는 서귀포에도 눈이 쌓였다니 무슨 말을 해요?


작년 겨울, 반상회에서 만난 이웃에게 물었더니 그 분이 전한 말이다.


지난 9월부터 매달 적어도 한번씩은 한라산을 오르리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그래서 9월에는 영실에서 윗새오름까지 올랐다가 어리목으로 내려왔는데, 맑게 갠 날 멀리까지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었다. 10월에는 대학친구 부부와 성판악에서 백록담을 거쳐 관음사로 내려왔다. 비오는 날이라 힘든 산행이었지만 친구 부부는 무척 만족하는 눈치였다. 정말 좋았다고 연신 감탄사를 남발했다.


11월에는 전날의 일기예보만 믿고 관음사코스에 도전했다. 그러나 관음사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내친 김에 백록담까지 올랐으나 정말 쉽지 않은 산행을 했다. 그런 날에도 백록담에는 수많은 사람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어서 한국사람들의 산에 대한 사랑에 놀랐다. 하긴 이곳에 온 분들은 몇 달 전에 예약을 했을 터니 비가 조금 온다고 관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거다. 어쨋거나 성판악으로 내려오는 하산길은 다리에 힘이 빠져 그런지 미끄러워 주저 앉기도 하면서 돌 투성이의 길을 밟고 지루하게 내려왔다.


작년에 제주에 이주했을 때, '사라오름' 이야기가 제주 로컬 뉴스에 자주 오르내렸다. 4억이 넘는 예산을 들여 등산로를 열고 일반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다고 들었는데, 그 사라오름은 성판악으로 백록담을 오르다가 5.8 킬로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곳이었다. 지난번에는 그냥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사라오름을 목표로 잡았다.


지난 24일에도 눈이 왔고 크리스마스인 25일에도 눈은 내렸다. 26일 미국 LA에서 오신 분으로 한라산에 갔으면 하는 분을 만났지만, 날이 너무 흐리고 나빠서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어, 점심식사만 같이 한 후 주변만 돌고 저녁에 공항에 모셔다 드렸을 뿐이다. 그러나 1년 동안 제주에 산 경험으로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 같았다. 일기예보는 흐리다고 했지만.


이곳에서 알게 된 분으로 은퇴후 서울에서 내려온 분이 있어 저녁에 연락을 취했더니 동반하시겠다고 한다. 다음날 8시 반부터 시작한 산행은 예상대로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눈으로 다져져서 평평해진 길은 울퉁불퉁했던 원래 돌로 된 길보다 훨씬 걷기도 편했으며 눈덮힌 한라산 속살은 눈길 가는 곳이 모두 그대로 그림엽서요 사진이었다.


<환상적인 설경에 매료되어 정상에서는 30분을 머물렀고, 아직 덜 알려져서 그러지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그 절경을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이곳에 옮깁니다. 잠시나마 즐거운 기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 무거운 눈을 이고 축 쳐진 나뭇가지의 모습이 우리의 힘든 인생을 연상시킵니다.


- 자연도 인간사를 닮은 듯 다소 떨어져서 보면 고뇌는 보이지 않고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져 평평해진 길이 산행을 훨씬 수월하게 합니다. 그래서 한라산은 겨울이 더 쉽다고 합니다.


- 사라오름으로 들어서는 입구. 원래는 계단인데 눈으로 덮혀 비탈길을 만들었습니다.


- 사라오름의 분화구 정경


- 분화구 주변의 모습




- 눈으로 뒤덮힌 나무들의 모습이 신성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 사라오름 정상에서 본 한라산 정상의 모습. 저곳까지 가려면 다시 3.8킬로를 가야 합니다. 한시간 반이 더 걸리지요.


- 사라오름 정상에서 본 남동쪽 방향.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이 '위미'라는 곳입니다.


- 눈 닿는 곳이 다 한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킵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도 다 멋진 사진이 됩니다.





- 스틱의 길이로 봐서 눈이 1미터는 온 듯 합니다.





- 개방되기 전, 사라오름의 모습.


- 자연적인 크리스마스 트리가 인공적인 트리보다 더 멋집니다.



- 중간에 있는 휴게소.


- 이렇게 멋있는 길을 같이 걸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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