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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이제는 접어버린 나의 꿈

(2011년 11월 10일)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미국에 정착하여 살면서 갖게 된 꿈이 있었다.

65세가 은퇴연령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회사에서 븥잡더라도 60세에 그만 두겠다는 거창한 계획(?)과 함께, RV를 사서 와이프와 둘이 미국 50개 주를 다 돌아볼 생각이었다. 한 달씩 잡아도 5년이 걸리고, 두 달씩 잡으면 10년이 걸릴 대장정(?) 아닌가?

 

맑은 물 흐르는 콜로라도의 계곡에서는 두어 달로는 부족할 거고, 겨울에는 플로리다의 서안의 야자수 그늘에서 책이나 보며 수영이나 즐기고, 엘로우 스톤에서는 온 여름을 지내는 것도 꿈꾸었는데, 그 이유도 있었다.

 

한국에서 사업부장이라고 껍쩍거릴 때 내게 납품하는 회사에 대표로 있던 한 사장이란 분이 있었다. 그 분에게 형님이 계셨는데 오래 전에 미국에 이민 가시어 돈이 많은 분이었다. 당시 60대 후반이었던 그 한 사장의 형님 부부가 모처럼 한국에 왔다. 한 사장이 형님 부부를 모시고 설악산이며 동해안이며 한국의 경치 좋은 곳들을 관광시켜 드렸다.

 

- 에고, 힘들다. 다 귀찮다. 그만 돌아가자. 집에 가서 쉬는 게 제일이다. 경치고 뭐고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서 더는 못 돌아다니겠다.

 

한 사장과의 식사 자리에서 들은 말이었다.

 

돈도 젊어서 돈이지 나이가 들면 다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한 사장은 했다. 다리에 힘 빠지면 돌아 다닐 수가 없으니 돈이 무슨 소용이냐는 뜻으로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나는 또 이해했었다. 그저 늙어서는 돈도 적당히 있어야지 너무 많으면 자식들이 싸우기나 하고 문제만 된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래, 그 말이 맞다. 돈도 적당히 있어야 돈이지, 너무 많으면 돈도 아니다. 건강할 때, 다리에 아직 힘이 있을 때 실컷 돌아다니고 내가 하고픈 일 하다가 힘 떨어지면 거실에서 TV나 보든가 아니면 손주들 봐주면서 인생 마감하는 게 평범한 인간이 살아가는 최선 아닌가? 하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어떻게 하면 실현시킬 수 있을까? 궁리했었다.

 

고해라고 불리는 인생에서 어려움이 있어 포기하기도 했었지만, 내 꿈은 충분히 실현 가능해 보였다. 60살 까지만 일하면 401K 은퇴연금은 얼마가 될 거고, IRA는 또 얼마가 될 거고, 저축도 있으니 몸만 건강하다면 충분히 가능해 보일 때, 경제위기(Economic Crisis)라는 것이 찾아 왔고, 그 순간 꿈은 박살 났다. 401K는 반토막 이하로 폭락했고, 나는 회사에서 레이오프 되었다.

 

십만 불 짜리 RV는 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추락하고 말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창졸간이었다. 2008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불과 3~4 개월만에 모든 것이 일어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정말 순식간에 당했다. 그런데 진짜 웃기는 일은 그 직전까지는 너무나 행복했었다는 거다. 회사는 엄청 잘 나가서 매 년말이 되면 보너스를 얼마나 받을지가 관심사였고, 연말 파티는 항상 잔치 분위기 속에서 성대하게 치렀다. 2008년 5월에는 한국에서 형제들이 와서 2주일 동안 같이 서부 여행도 다니며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

 

온통 핑크 빛이었던 세상이 회색 빛을 지나 암흑으로 바뀌는데 3달이면 충분했다. 그 과정에서 붉은 빛이나 파란 빛도 없었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변하는 세상에 따라가지 못한 건 내 자신이었다. 회사에서 감원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회사 창설 멤버나 다름없는 내가 대상이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내 밑에 누구를 자를 것인가만 고민했으니까.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도 없고 정말 면목없는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담담하게 검찰청사 앞에서 2009년 4월 30일 한 말입니다.)

 

그래도 바보같이 그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매달렸다. 어떡하든 내가 계획하고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지키고 싶었다. 구차하게 뉴저지에서 빌빌거리지 말고 아예 캘리포니아로 가서 구차한 일을 하더라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하자고 생각했다. '동부에서 충분히 살아보았으니 이제 서부에서도 살아보지 뭐.'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부로 떠난 것이 2009년 7월 1일이었다.

 

3박 4일을 운전해서 도착한 캘리포니아에서 더 처절하게 깨졌다. 미국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 중 하나이었다. 믿었던 사람에게는 돈만 날리고, 에어컨 테크니션으로 살아보고자 했으나, 속고 속이는 그런 세계에 결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내 꿈을 접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살아 갈 길이 보였다.

 

그 길이 한국행이었다.

 

<후기>

세상에는 온통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이야기만 합니다.

남들 보다 각고의 노력을 해서 그 꿈을 이룬 사람들 만이 '인간승리'라고 존경을 받고 떠받들어집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루저'라고 스스럼없이 불리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 '루저'입니다.

저 같은 루저가 없다면 꿈은 꿈이 아닙니다. 저 같은 루저가 있기에 꿈은 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같은 루저도 이 세상에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 루저의 변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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