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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음식유감(飮食有感)

(2011년 12월 2일)

 

먹고 싶어도 지금은 먹어볼 수 없는 추억의 음식들이 있다.

 

1.4 후퇴 때 월남하신 부친 때문에 어릴 적에는 이북 음식을 즐겨 먹었다.

평상시에 자주 먹는 음식으로는 비지찌게가 있다. 노란 색의 콩을 끓는 물에 데친 뒤 멧돌로 갈은 것을, 돼지뼈다귀를 고아낸 국물에 시래기와 같이 넣고 가마솥에서 끓여내면 몇 날 며칠을 그것만 먹었다.

 

구수한 콩냄새로 채워진 대접에 비지를 채워 비빈 것 보다는 훨씬 묽게 밥을 넣고 양념간장으로 간을 맞춰 먹었다. 그것이 가난한 집의 엄마가 가족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영양식이었다. 한 번 우려낸 돼지 뼈다귀는 잘 보관했다가 그 후에도 몇 번은 더 가마솥에서 고아지고 그 국물에 다시 비지찌게가 만들어졌고, 식구들은 배를 두드려가며 비지가 가득한 그릇을 비웠다.

 

한인마켓 반찬파트에 있는 프라스틱 통에 담긴 비지찌게를 볼 때 마다 옛날의 추억이 생각나서 쇼핑카트에 담기도 했었지만, 어릴 적 먹던 그 맛은 아니었다. 시래기 대신 김치가 들어가서 그런지 색도 벌겋고, 구수한 맛도 훨씬 덜 느껴지는 것은 음식 탓이 아니라 인스턴트 식품에 오염(?)되고 변해버린 입맛 탓인지는 모르겠다.

 

명절음식으로는 이북식 만두와 녹두지짐(우리는 그냥 '지지미'라고 불렀다)이 있었다.

추석이나 설날에는 2~3일 전부터 만두를 만들고, 녹두를 맷돌에 갈아 지지미를 부쳤다.

만두는 둥그런 상에 둘러앉아 힘을 쓰는 남자들은 만두피를 만들고 여자들은 만두속을 넣고 만두를 빚었다. 만두속은 숙주나물, 두부, 신 김치와 돼지고기 다진 것을 삼베천으로 싸서 힘껏 짜내 만들었다.

 

녹두 지짐은 마루에 연탄불을 들여놓고 엄마가 밤새 부쳤다. 맷돌에 갈아진 녹두가 커다란 다라이에 가득 담겨있었지만 조금씩 줄어드는 대신 편편한 소쿠리에 담긴 노릿노릿한 지지미는 그 높이를 더해갔다. 후라이팬에는 돼지기름 덩어리가 녹아드는 지글거리는 소리가 늦은 밤까지 이어졌고 집안에는 온통 기름냄새가 배었다. 녹두지짐에도 신 김치와 돼지고기가 고명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 음식들이 얼마나 맛있었던가!

시골에서 외삼촌이나 친척 아저씨가 방문하면 막걸리 주전자나 소주 병과 함께 녹두지짐이 상에 올랐고, 저녁에는 만두국에 든 만두 갯수를 세며 동생들과 싸우며 먹었다. 그 음식들이 사라질 때까지 명절기분은 계속 되었었다.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이라 나중에는 시큼한 맛도 났지만, 그렇다고 먹는 데 방해가 될 수는 없었다.

 

얼마나 비지찌게와 녹두지짐을 좋아했던지, 나 어릴 때 엄마는 결혼할 때 맷돌을 선물로 주겠다는 농담도 곧잘 하시며 웃곤 했다.

 

그 맛있었던 음식이 아직도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어 음식점에 들렸을 때도 같은 메뉴가 있다면 우선적으로 찾았지만, 어디서도 그 맛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엄마의 손맛에 길들여진 입맛 탓이겠지만, 아버지 일터 친구들이 엄마가 만든 지지미를 맛보러 들락거렸던 것을 보면 특별한 맛이 있긴 있었나 보다. 한번은 다니던 교회에서 바자회를 했는데, 엄마가 준비한 녹두지지미가 가장 먼저 동이 났다고 자랑하시던 기억도 있다.

 

이제는 기억 저 아래 편에 자리한 그 맛의 기억들을 되살릴 기회는 영영 없을 것 같다.

 

이민자로서 몸은 외국에 있어도 입맛까지 미국음식에 쉽게 길들여지지는 않았다. 특별히 맛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도 아니고, 입이 까다롭지 않아 그런지 아무 것이나 다 맛이 있어도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음식을 찾았다.

 

바쁜 이민생활에 아침을 거르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아침도 꾸준히 찾아 먹었다. 간편함 때문에 베이글을 먹어보기도 했으나, 찌게든지 국이든지 반찬 한 가지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는 내 식성은 아침 밥도 베이글 만큼 얼마든지 간편할 수 있었다.

 

한 달에 두어 번은 40마일을 운전해서 '한아름'에 갔다. 90년대 한아름은 정말 쌌다. 백 불 어치만 사면 쇼핑카트를 가득 채울 수 있었고, 계산대에서는 쌀이며 고추장을 사은품으로 주었다. 그렇게 갔다 오면 부엌과 게라지에 있는 두 개의 냉장고는 1~2 주는 충분히 먹을 음식으로 가득 찼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다르다. 200불 어치를 산다 해도 쇼핑카트를 채울 수 없을 뿐 더러 사은품도 없어졌다.

 

1983년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맥도날드나 버거킹에서 햄버거만 먹었었다. 한창 젊을 때라 더블 버거나 트리플 버거에 프렌치 프라이, 소다를 먹으면 2 불 3~40 센트이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짜장면이 4~5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4배가 넘는 가격이었지만, 내겐 가장 입에 맞는 미국음식이었는데 싸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노린내 나는 드레싱이나 치즈를 먹지 못했지만, 이민생활 10년이 넘어가자 그 구수한 맛을 알게 되었다. 파스타에 토마토 소스를 듬뿍 쳐서 먹을 줄도 알게 되었지만, 지금도 가장 생각나는 것은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Rib Eye'를 오븐에 구워먹는 거다. 파운드에 $16.99 (서부에서는 $9.99로 이것도 싸다) 하는 스테이크는 두꺼워 자주 뒤집어야 하지만, 잘 구워져 육즙이 지글거리는 그 맛은 일품이다. 거기에 위스키를 곁들이면 '금상'이요, 마음이 맞는 벗이 함께 하면 '첨화'다.

 

한국에 살면서 그런 스테이크를 맛보긴 힘들 것 같다. 엊그제 서울에 갔을 때 대학선배이자 예전 직장에서는 동료이기도 했던 김선배를 찾았다. 지점장으로 정년을 준비하고 있는 그가 준비한 음식이 스테이크다. 어린 아이 손바닥 만한 크기에 조그만 수첩보다도 얇은 고기 조각은 스테이크라고 부르기에 민망했다.

 

- 야, 이 마블링 봐라! 죽인다. 어서 먹어라, 너 온다고 마누라가 특별히 준비했다.

 

형수의 정성이 고마웠지만, 그 스테이크 보다는 손으로 죽죽 찢어놓은, 엊그제 직접 담갔다는 김장김치가 더 맛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했던 사람과의 대화와 오가는 술잔에 깃든 추억이 코스트코의 리브아이 스테이크 보다 더 향기롭고 맛있었다.

 

한국에 살게 되면서 가장 좋은 것이 먹거리다. 돌아다니다 보면 온통 먹을 것이다. 호떡, 오뎅, 꼬치, 떡복이, 튀김 같은 길거리 음식에도 욕심이 생긴다.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볼 때, 툭하면 나오는 포장마차 장면에 군침을 흘리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마음 뿐이다. 호떡 하나면 충분하다.

 

그나 저나 엄마가 내게 준다던 그 맷돌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후기>

역이민자에게 먹거리 경험이 빠질 수는 없는 것 같아 기억을 되살려 보았습니다.

이곳에서는 냉장고 하나로도 충분하고, 그나마도 거의 비어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다 떠나고 단 두 식구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사면 되니까 냉장고를 채워두고 1~2 주일씩 살 일이 없는 거지요.

 

미국에서는 점심시간에 순두부나, 육계장 같은 한국음식을 찾아 15마일을 운전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동화 속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눈만 들면 보이는 게 음식점입니다.

 

약속시간이 남아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일요일 오후 명동거리와 종로통을 걸어보았습니다.

명동교자 칼국수 집은 늦은 오후에도 불구하고 2~30 미터 줄을 서 있었습니다. 물론 길거리에도 처음 보는 꼬치를 파는 포장마차도 무척 많았습니다. 젊은 사람들로 길거리는 미어지고, 손에 길다란 막대기를 들고 뜯어먹는 모습들이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더군요.

 

먹는 것도 젊을 때 이야긴 것 같습니다.

이제는 불어나는 뱃살도 걱정해야 되지만, 보기에만 그럴 듯 하지 먹어보면 그냥 그저 그렇습니다.

지난 날 먹었던 추억의 맛은 기억 속에만 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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