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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역이민 한국생활 1년

(2011년 12월 22일)

 

결코 원하지 않았었던 역이민이었지만, 제주에 둥지를 틀고 살기 시작한 지도 1년을 넘겼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본다.

 

 생활비 및 소비생활 분석

- 건강보험: \86,000

- 전화, 인터넷, TV: \50,000

- 휴대폰 2개: \52,000

- 가스비: \50,000

- 전기: \45,000

- 화재보험: \30,000

- 현금인출: \150,000

- 카드사용: \500,000

 

월 고정지출이 평균 \963,000 이었던 것으로 대략적으로 집계되었는데, 각 항목 별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한국의 건강보험은 직장과 지역으로 나뉘는데, 직장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지역의료보험에 해당한다. 지역의보 가입자의 프리미엄은 재산에 의해 산출된다. 매년 11월에 변동된 재산에 의거 다시 결정된다고 한다. 부동산 가액과 승용차 종류가 프리미엄 산출에 반영된다. 내 경우는 6만원 정도를 내다가 지난 달부터 변경된 고지서를 받고 있다. 지난 3월에 올린 글 (한국살기 - 여덟번째, 생활비를 따져본다)과 차이가 나는 이유다. 혹시 정확한 액수를 알고 싶은 분들은 http://www.nhic.or.kr/wbh/wbha/wbha_0200/wbha_0205/wbha_0205.html을 참고하면 된다.

 

인터넷, TV, 인터넷 전화(Triple Play), 휴대폰과 전기는 지난 번에 올린 글과 별 차이가 없다. 단, 휴대폰은 아들 녀석이 방문했을 때 한 달 동안 내 휴대폰을 갖고 다녔기 때문에 통화료가 좀 많이 나왔다.

 

화재보험은 처음에는 없었다가 나중에 들었는데, 만기가 되면 원금은 돌려받는다고 하니까 순수한 지출은 아닌 셈이다. 가스비와 난방비는 월 평균 5만원이 지출되었다. 처음에는 10만원을 예상했으나 1년 평균하면 그렇게까지 들지는 않았다. 대신 집사람은 12월부터는 내복을 입고 지내는 등 최대한 절약을 한다. 그렇다고 샤워같은 온수 쓰는 일까지 절약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정확한 액수다. 열달 혹은 일년 동안 지출한 금액을 평균해서 산출했다. 다음에 설명하는 지출은 정확한 숫자라기보다는 대체적인 금액이다. 현금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서 현금을 인출한 경우가 월 평균 십 오만원 정도다. 오일장이나 재래시장은 카드를 받지 않기 때문에 현금이 필요하다. 부조금을 낸다든가 성당에 헌금을 낼 때도 현금이 필요하기에 찾는 금액이다.

 

이마트를 이용한다든가, 외식을 할 때나 자동차에 가스를 넣을 때는 대부분 크레딧 카드를 이용한다.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대신 이용한 적도 있어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러프하게 50만원을 계산했다. 이 금액에는 서울을 오갈 때 사용한 비행기 티켓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일년 동안 내가 3번, 집사람이 한 번 다녀왔다. 아, 친구들 경조사 부조금에 사용한 비용도 있다.

 

이것 외에도 지난 일년간 One Time으로 낸 지출이 있다.

 

- 자동차 보험료: \600,000

- 자동차 세: \115,000

- 재산세: \120,000 (경차에 매겨지는 세금과 비슷한 금액인 것은 모순 같다.)

- 한약 및 병원비: \800,000 (집사람의 권유로 생긴 불필요한 지출이 일부 있슴)

- 제습기 등 온라인 쇼핑: \600,000

 

이런 것들까지 고려하면 연 생활비는 천 3백에서 천 4백 정도 들어간 셈이다. 가급적 절약하려고 애는 썼지만, 그렇게 구차하게 살았다는 느낌은 없다. 차가 999cc 짜리 경차이기 때문에 차에 지출한 비용은 상대적으로 적었을 거다. 지난 9월, 이 카페를 통해 연락해온 어떤 분을 만나러 갔었는데, 내 차를 본 그 분이 '참 겸손하게 사시는군요'라고 말했다. 그 분의 차는 아우디였는데 다시는 내게 연락이 없었고 나도 다시 만날 일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 같으나, 내게는 실용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두 식구가 시장에 갈 때나 놀러갈 때 타고 다니는데 큰 차는 낭비다.

 

소일거리

 

나는 원래 혼자서도 잘 논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흥미있는 책만 있어도 잠자는 것을 쉽게 잊는다. 내 취미 중의 하나가 바둑이다. 한국을 떠나면서 비록 십 수년간 잊고 살았지만, 대학에 다닐 때는 적수를 찾기가 힘들기도 했다. 70년대 기원에 가면 몇 천원 정도는 쉽게 땄던 실력이었다.

 

그 잊고 있었던 취미가 되살아났다. TV에 바둑 채널이 있는 거다. 이창호나 이세돌의 신출귀몰하고 무궁무진하게 전개되는 수를 보는 것도 행복하다. 집에서 무료한 시간이 생긴다면 채널만 돌리면 된다. 만약 3~4년 전이라면 그런 걸 보면서 시간 보낸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 왔으니까.

 

무언가 하고 있지 않으면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TV 앞에 앉아 무가치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자신에게 Guilty feeling이 들곤 했을뿐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도 용납하지 못했었다. 나는 일종의 사이코였고, 항상 그 달에 지출할 돈에 매인 노예였다. 매달 급여가 들어올 땐 몰랐지만, 레이오프되고 나니 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은 편한 마음으로 TV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개그콘서트'도 보고, '나는 가수다' 같은 오락 프로도 편한 마음으로 본다. 아니 재미있다. 요즘은 관심사도 많다. 베이비 부머들의 삶, 이민을 택한 사람들으로서 당시의 당위성, 행복이란 것,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고, 그런 것에 관한 글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 마음에 맞는 글을 만나면 하루가 짧다. 시간이 나면 보려고 컴퓨터에 다운 받은 프로가 하드디스크에 가득하다. 시간이 없어서 다 보지 못한다.

 

집사람과 손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하루에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서너 시간도 걷는다. 일주일에 4~50 킬로는 걷는다.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인생을 생각하고, 그 분들이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잘못한 일들을 반성하고, 나로 인해 상처받은 분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시간도 갖는다.

 

물론, 답답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60이 되려면 아직도 몇 년이 남았지만, 하는 일이 없다. ㅎㅎㅎ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역이민 카페를 관리하기는 한다. 아니 난생 처음 '2011 블로거'로 선정되어 50불짜리 상품권도 받아보았다. 그러나 주위에 나처럼 젊은 은퇴자는 거의 없다. 창피하기도 하다. 부지런히 구인란도 살피고 인터넷도 뒤지지만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서울같은 대도시라면 몰라도 한국의 변방 제주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어제 대학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옛날 기술고시에 패스해서 지금은 지식경제부지만 옛날에는 정보통신부라고 불리던 부처의 국장급인 친구다. KOICA(the KOrea Internation Cooperation Agency, 국제협력단)에서 아프리카 우간다에 파견할 사람을 구하는데 내가 적격이라는 거다. 1년간 파견인데 연봉 7천만원에 체제비와 항공료가 별도라고 한다. 관심은 많았지만 국적문제에서 걸렸다. 한국의 원조자금을 쓰는 일에 미국 국적자를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제주 올레길 24개 코스 중에 13개 코스를 걸었고, 한라산을 세 번 올랐다. 오름이라고 불리는 곳에도 다녔다. 성당에 다니면서 미국에 두고 온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성가대에서 노래도 부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세월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청원한다.

 

환경과 기후

 

한국은 작은 땅에 비해 인구는 많다.

제주는 동서로 50마일(78Km), 남북으로 30마일(48Km)로 작은 땅이지만, 인구는 한국의 1% 정도인 50만 정도이니 인구밀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어디든 한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으니 미국이라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작은 땅에 비해 동과 서, 남과 북의 기후가 딴 판이다. 가운데 한라산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과 겨울에 부는 북서풍은 한라산의 북서쪽에 습기를 떨구고 남동쪽으로 넘어가고, 봄 여름에 부는 남동풍은 그 반대의 기능을 한다. 제주에 비가 온다고 관광을 포기하면 안 된다. 화순과 모슬포가 있는 서귀포의 서쪽은 해가 쨍쨍하다.

 

집사람은 제주의 습기를 아주 싫어한다. 틈만 나면 제습기를 튼다. 그러나 알러지 비염이 있는 나는 습기가 나쁘지 않다. 겨울에도 0도 이하로는 잘 내려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난방없이 견디기는 춥다. 그러나 편안한 마음으로 난방을 하기에는 가스비가 너무 비싸다.

 

트래픽이 걸리는 일은 거의 없다. 그만큼 도로여건이 좋다. 그러나 운전은 조심해야 한다. 운전에 관한 한 너무 무지한 운전자들이 많다. 도로가 널널하지만 지금도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관광지로서 쾌적함을 갖추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50대 이상 나이가 든 분들은 외지인들에 배타적일 수도 있지만, 40대 이하 젊은 사람들은 그리 배탁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크게 불편한 점은 아직까지 느끼지 못한다. 다만 제주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는 특유의 사투리때문에 불편하다.

 

나만의 느낌인지 모르나 제주는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강하지만 관광지나 공원은 아주 깨끗해서 화장실만 해도 거의 호텔 수준이다. 그러나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곳은 쓰레기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더럽다. 자연경관 운운하는 자체가 창피할 정도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이니 당연히 공기와 바다는 깨끗한 편이다. 여름에 해수욕장을 가면 사람도 별로 많지 않고 즐길만하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나 대서양의 그 풍성한 바다는 전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올레길을 걷다보면 한국인으로서만이 느낄 수 있는 한국의 속살을 보며 애잔한 감성도 가질 수 있는 것은 이민생활에서는 없는 정서다.

 

<후기>

역이민 일년을 지내면서 무언가 남기고 싶은 마음에 나쁜 머리를 쥐어짜 보았습니다. 생각나지 않아서 옮기지 못한 것들도 많겠지만 우선 떠오르는 것과, 모든 분들이 관심을 갖는 경제적인 측면을 경험에 입각해서 적어보았습니다.

나름대로 오해가 없도록 은행기록과 크레딧 카트 사용기록을 검토했으나, 본의 아니게 기억력 부족과 착오로 잘못된 정보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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