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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집과 이웃 (1) (2012년 7월 26일) 재작년 말, 제주에 내려와서 집을 찾으러 다녔을 때는 참 당혹스러웠다. 듣던 말과는 틀리게, 전세는 없었고, 집값도 예상과는 달리 많이 비쌌다. 제주에는 '신구간'이라고 불리는 이사철이 따로 있다고는 하지만 -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 전세든 판매든 일단 시장에 나온 집이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까지 와서 월세를 얻을 수는 없었고, 또 이삿짐 때문에 원룸에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보았을 때도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으나, 나온 집이 없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더러, 일단 가격대가 괜찮았다는 것이 가장 큰 선택의 이유였다. 거기다가 우리가 집을 보고 망설이는 사이에, 우리보다 30분 늦게 보러 온 사람들이 우리가 사지 않으면 .. 더보기
한국의 무더위 (2012년 7월 23일) 단순히 온도계의 눈금만 비교한다면 한국의 여름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살았던 뉴저지나 캘리포니아의 한여름은 화씨 100도(섭씨 38도) 안팍을 오르내리지만, 한국은 90도(섭씨 32도)를 오르내린다. 문제는 습도다. 보통 80% 안팍의 습도는 끈적끈적한 느낌의 무더위로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어제가 그랬다. 일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인 어제가 그랬다. 장마가 물러가고 모처럼 쾌청한 하늘을 볼 수 있었던 주말이었지만, 오일장에 가는 길에는 별로 차가 없었다. 보통 때라면 입구에서 주차시킬 때까지 5분에서 10분은 족히 걸리겠지만, 어제는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진입로와 주차장이 한가했다. 장마 끝에 처음 장이 서는 거라, 주차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각.. 더보기
태풍이 지나간 제주 (2012년 7월 19일) 소형급 태풍이라 그런지, 태풍이 지나간다는 어제도 오후까지만 해도 그리 심하게 바람이 불지는 않았다. 비가 세차게 오긴 했지만, 5분내지 10분간 퍼붓다가 금방 빗줄기가 약해지기도 하고, 간혹 햇빛도 보였다. 오후 다섯시가 지나면서, 바람도 세지고 빗줄기도 굵어졌으나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고 골목에 세워진 차들은 현격히 줄어 운전하기에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가게에 손님들이 들어올 턱이 없으니 일찍 문닫은 때문일 거라고 추측만 했다. 학원원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날씨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으니 7시에 끝나는 아이들을 6시 반에 끝나는 아이들과 같이 내보내면 어떠냐고 제안을 해 보았다. 태풍이 제주의 서쪽 해상을 통과한다는 시간이 저녁 9시 무렵이었다.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 더보기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 (2012년 7월 8일) 어제는 바보처럼, 정말 바보처럼 양잿물을 마신 꼴이 되고 말았다. 동양 최대의 수족관이라는 요란한 광고와 함께 총공사비 1,225억을 들였다는 아쿠아리움이 성산포 근처에 개장을 한다는 것이다. 13일 정식 개장에 앞서 제주도민에게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해서 아침 일찌기 집을 나섰다. 근처에 다다르니 차가 꼼짝을 안 한다. 제주도에 있는 차들이 거의 다 모인 듯, 좌회전 신호 한 번에 두어대가 지나갈 뿐이다. 나는 GPS를 믿고 농사용 소로로 접어들어 질러가는 바람에 합법적인 새치기(?)를 한 셈이지만, 대로에 다시 들어서자 차들이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1 마일 정도를 앞두고 적당한 공간에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미 아이들을 데리고 걷.. 더보기
최선생 이야기 (2012년 6월 11일) 얼마전에 사려니 숲길을 같이 걸은 최선생 이야기다. 딸만 둘인 그분은 은퇴 후 살 곳을 찾아 여러 곳을 답사했다. 백두대간을 종주한 적도 있을 만큼 산을 좋아하는 그 분은 강원도를 최적지로 삼았다고 했다. 그러나 부인이 설암(혀에 생기는 암)에 걸려 병원을 자주 찾아야 하는 관계로 오지는 포기했다. 사위가 공군장교라 서울을 오갈 때, 군용 비행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제주를 은퇴지로 삼았다. 앞서 소개한 제살모 카페(제주에 살기위한 모임)에 가입하여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성격이 무척 꼼꼼한 그 분은 제주에 오기 1~2년 전부터 두어 달에 한 번씩 제주를 방문해서 1~2 주를 체류하곤 했다. 주로 절물 자연 휴양림 숙박시설을 이용했다. 그러다가 작년 10월 말에 부인과 함.. 더보기
내 직업은 '기사삼촌' (2012년 5월 30일) 무조건 들이 대세요. - 형제님, 틈만 있으면 무조건 대가리부터 들이 밀어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나갈 수가 없어요. 내게 자신이 하던 일을 넘겨준 자매님이, 학원차량을 연수(?)시켜 주면서 한 말이다. 40대 중반의 그 자매님은 젊었을 때, 남편과 식당을 운영했다고 한다. 당시 힘든 일을 하다 얻은 허리 디스크로 오래 앉아 있는 일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오전에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간식을 만드는 일을 하고 오후에 학원차를 운전했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서 학원차량 운전을 그만 둔다는 거다. 제주 출신이 아닌 내가 제주지리에 익숙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고, 골목골목을 누벼야 하는 일인 만큼 4일에 가까운 연수를 했다. 제주사람이라면 보통 이틀이면 된다고 한다. 하루는 조.. 더보기
제주 고사리 (2012년 4월 30일) 제주의 특산물들 중에 고사리가 있다. 감귤과 섬의 특성상 해산물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제주의 마늘, 홍당무, 무와 함께 고사리가 제주의 특산물로 손꼽힌다. 제주 초보였던 작년에는 고사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지만, 사람들을 따라 고사리를 채취하러 나섰었다. 빈 들판에 나가면 잡초들 사이로 새싹을 틔우는 고사리를 볼 수가 있다. 너무 커져 잎이 벌어진 것은 써서 먹지 못하고, 너무 작은 것은 먹을 것이 없으니 적당한 크기의 것을 찾아 줄기를 꺾어서 채취해야 한다. 고사리는 뜯는다고 하지 않고 꺾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다보니 저절로 알 것 같다. 4월 한 달이 고사리 채취에 적기다. 고사리 철이 되면 성당이나 교회가 텅 빈다고 한다.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 더보기
제주의 불편한 진실 (2012년 3월 21일) 아침에 운동을 하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서른 살이 넘어서면서부터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난 것이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알러지 비영으로 코가 막혀 잠을 못 자기도 하고, 피곤하면 편도선이 붓고, 두드러기가 생기는 등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이상증세가 수시로 생겼는데 운동으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주로 뛰었다. 운동화만 신으면 되니까 일단 간편했고, 어디서나 할 수 있었으며 아무 때나 혼자라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뉴저지에 살 때는 6시에 일어나 주로 2 마일 정도를 뛰었는데, 이틀 연속 거르지 않고 일주일에 5일 이상 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었다. 가끔이지만 시간이 많은 주말에는 4마일을 뛰기도 했고 혼자 산행을 다니기.. 더보기
續 도치형님 傳 (2012년 3월 10일) (작년 10월 30일 '한국살기'란에 쓴 '도치형님 傳'에 이은 글로서 제주의 의료현실을 알려드리기 위한 글입니다. 나무를 보고 숲을 판단하는 것일수도 있으나, 참고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 올립니다.) 도치형님이 지난 1월 말 무렵, 예정보다 훨씬 일찍 돌아왔다. 95세 된 어르신이 노환으로 누우셨지만, 의식이 왔다 갔다 하면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 넉넉하게 3~4월까지는 미국에 체류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갑자기 돌아오신다는 이메일을 다시 받았는데 그 이유가 심란했다. 자다가 좌측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심근경색으로 심장수술의 경험이 있는 분으로서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으니 걱정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미국의 의료비다. 서.. 더보기
비오는 날의 사색 (2012년 2월 10일) 3개월쯤 전에 낚시를 하다가 갯바위에서 넘어져 팔을 다친 친구가 있었다. 다행이 팔이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인대가 반 이상 끊기는 부상을 당했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딱 맞는 일이 벌어졌다. 부상당한 팔을 찍느라고 정면에서, 옆에서, 위에서 등등 여러방향에서 X-Ray를 찍었는데 가슴 갈빗대 밑에 숨겨져 있던 혹이 발견된 것이다. 정말 인생사 새옹지마다. 양성이든 악성이든 폐까지 전이되기 전에, 신속하게 제거해야 할 종양이었다. 그 친구가 내일 수요일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그 전에 자기가 하던 일을 내게 부탁했고, 그걸 인계받느라 지난 목요일 오후부터 너댓살 꼬맹이들을 실어나르는 일을 하고 있다. 다시말해 '스페어(Spare)' 운전수가 된 것이다. 제주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