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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제주의 불편한 진실

(2012년 3월 21일)

 

아침에 운동을 하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서른 살이 넘어서면서부터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난 것이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알러지 비영으로 코가 막혀 잠을 못 자기도 하고, 피곤하면 편도선이 붓고, 두드러기가 생기는 등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이상증세가 수시로 생겼는데 운동으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주로 뛰었다. 운동화만 신으면 되니까 일단 간편했고, 어디서나 할 수 있었으며 아무 때나 혼자라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뉴저지에 살 때는 6시에 일어나 주로 2 마일 정도를 뛰었는데, 이틀 연속 거르지 않고 일주일에 5일 이상 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었다. 가끔이지만 시간이 많은 주말에는 4마일을 뛰기도 했고 혼자 산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때 아침마다 뛰었던 호수나 동네 주변의 깔끔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제주에 와서는 주로 걸었다. 시간이 많을 뿐더러, 올레길이 좋다는 말을 듣고 올레길과 오름을 많이 걸어 다녔지만 매일 아침에 뛰는 것이 역시 운동으로는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1년을 넘게 뛰지 않다가 최근에 다시 뛰려니 무릎에 통증이 와서 걷다가 뛰다가 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다. 무릎에 통증이 없어지고, 옛날처럼 속도를 유지하려면 꽤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집 주변이 너무 쓰레기가 많고 지저분해서 뛰고 나서도 기분이 상쾌하지가 않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나 공원은 화장실도 잘 되어있고 깨끗한 모습이지만, 내가 사는 곳 같이 시내에서 2~3Km 정도만 뒤로 들어가면 온통 쓰레기 천지다. 차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에, 과자봉지나 일회용 컵, 캔이나 병은 물론 오래된 냉장고나 TV 같은 가전제품부터 폐 타이어까지 버려져 있다. 소주나 맥주 병은 차가 지나가면서 밟아 유리조각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기도 하고, 폐비닐이 높은 나무가지나 전기줄에 걸려있어 흉물스럽기도 하다. 어떤 놈(이런 호칭이 더 어울릴 듯)이 지나가다 승용차의 쓰레기를 버린 듯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인 것을 후미진 길에서 본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다운타운이 지저분하고 서버번은 깨끗한데, 한국은 오히려 반대다. 도심은 깨끗하고 번듯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냄새도 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이곳에서는 개를 묶어놓지 않아도 벌금이 없다. 가끔 운전하다가 치어죽은 개나 고양이도 보기도 하고, 한길까지 어슬렁거리는 개를 쉽게 만난다. 지난 주에는 길 가운데를 걸어가는 개 때문에 섰다가, 뒤에 바짝 붙어오던 차에 받힐 뻔하기도 했다. 아침에 운동할 때는 이런 개들이 짖으며 쫓아오기까지 한다.


"세계가 찾는 제주, 세계로 가는 제주"

제주공항 근처나 제주의 시내버스에서 흔히 보는 제주 자치도의 구호지만, 참 염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섬'이니 '평화의 섬'이니 구호만 요란하지, 하는 짓은 그런 구호와는 요원할 뿐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잘 수 밖에 없던 작년 여름에는 닭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에 새벽마다 잠을 설쳐야 했다. 게다가 인근 절에서는 정확히 새벽 3시 50분 마다  새벽 염불을 스피커까지 틀어놓고 한다. 이웃 주민이 아무 소리 하지 않는데, 굴러온 돌(?)인 내가 떠들 수가 없어 눈치만 보고 있다가 반상회에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 저희도 시끄러워 죽겠어요. 금년에는 여름도 다 갔으니 (창문을 닫고 자면 괜찮으니까) 그냥 넘어가고 내년에도 그러면 단체로 가서 항의하도록 하지요.


한국인의 미덕은 정과 참을성이라고 한다더니 정말 인내심과 아량이 대단하다. 사생활이나 권리가 침해받고 있는데도 참고 지낼 뿐, 화를 낼 줄 모른다.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더 좋은 일인가?


미국에서라면?

동네에서 소음을 일으켜 이웃이 신고하면 타운에서 바로 티켓이 날라오고 벌금을 내야 한다. 두 번째 티켓에는 벌금이 몇 배가 된다. 모르는 개가 주위에 어슬렁거리면 바로 신고한다. 개가 짖어 이웃에서 시끄럽다고 신고하면 벌금도 벌금이지만 개를 학교에 보내 교육도 시켜야 한다. 나도 개를 키우다 개가 줄을 풀고 나가는 바람에 타운에 몇 십불을 내고 찾아온 적이 있다. 운전 중에 리터링을 하다 걸리면 뉴저지에서는 벌금이 200불이다. 물론 담배를 휙 던지기도 하는 몰상식한 사람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을 지키고 인구밀도가 적어 그런지 대체로 깨끗하다.


길만 막히지 않는다면 서울에서 강릉까지 3시간 반이면 된다. 제주에서는 동쪽 끝 성산포에서 서쪽 끝 모슬포까지 1시간이면 된다. 운좋게 트래픽을 한번도 만나지 않고도 하루에 16시간씩 900마일(1,500Km)을 3일 동안 달려야 할 정도로 뉴저지에서 LA는 멀었다. 깨끗한 산하를 유지하려면 좁은 땅 한국에서는 꽁초는커녕 재도 함부로 털면 안되는데, 그게 아니다. 너무 심하다는 생각뿐이다.


이곳에서는 경찰차들이 보통 때도 경찰등(지붕위의 빨갛고 파란 등)을 켜고 다닌다. 처음에는 그런 차들이 나를 잡으러 오는 줄 알고 차를 길 가에 세우려 했던 적도 있었다. 어린이집 차를 운전할 때, 집에서 7시 반에 나갔다. 2월이었으니 컴컴할 시간인데, 가끔 경찰차를 만날 때가 있다. 미국에서는 경찰차가 뒤에서 오면 경찰등을 켜고있지 않더라도 불안해서 차선을 바꿔 먼저 보내게 된다. 그런데 등까지 켜고 오니 나는 당연히 비키지만, 다른 차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쌩쌩 달리며 경찰차를 추월한다. 도무지 경찰을 무서워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하물며 교통경찰이 근무하고 있는 앞에서도 신호위반을 한다. 경찰은 손가락질로 경고만 줄뿐, 단속하지 않는 것도 보았다. 정말 착한 경찰이다. 오래되어 희미해진 기억이 떠오른다. 교통경찰에게 걸리면 면허증을 건넬 때 만원짜리를 접어서 같이 주고 용서(?)를 받던 것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란다. 파파라치의 활동으로 그런 비리는 없어졌다는 거다.


지난 해 신호등에 달린 단속 카메라에 걸린 적이 있었다. 왕복 6차선 도로의 내리막 길이었는데, 급정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노란불에 그냥 지나갔는데 그만 찍히고 말았다. 벌금은 7만원이었다. 미국에 비하면 참으로 착하디 착한 금액이다.


주정차 금지 표지판 아래 버젓이 정차하고 있는 차, 1차선으로 가다가 갑자기 우회전하는 차, 비까지 오는 컴컴한 저녁에도 헤드라이트는커녕 미등도 켜지 않고 다니는 차, 술에 취해 도로 한복판을 비틀비틀 걸어가는 사람, 빨간 신호등도 무시하고 지나가는 트럭, 인도쪽에 바짝 붙이지 않고 어중간하게 주차해 놓은 차를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법이 무섭고 벌금이 겁나는 나라에서 살다가 법이 별로 무섭지 않은 나라에서 참을성과 정만으로 모든 불편한 것을 감내하기에는 쉽지 않다.


채 15년도 안 된 나도 아직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이리 많은데, 하물며 3~40년 되신 분들이 돌아온다면 갈등이 작지는 않을 것 같다.


<후기>

한국의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주에 살면서 느꼈던 '불편한 진실'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도 틀리고 성격에 따라 호불호도 달라지겠지요.

실제로 반상회 때, 어떤 분은 잠자기에 바빠서 새벽 염불소리도 닭 우는 소리도 전혀 모른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이곳에서는 큰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것으로 봅니다.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요.


어떤 분들이 - 주로 최근에 가입하신 분들이 '역이민' 주제와 관련있는 글만 올렸으면 하는 불만을 제기하십니다. 그러나 역이민에 관련된 정보는 이미 충분히 있으니 지난 글들을 천천히 보시기 바랍니다. 또 광의의 해석으로 보면 한국과 미국에서 일어나는 사회 정치 경제현상이 다 관련소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향으로 이민을 떠났고, 또 다시 돌아오는 이유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제에 집중해야 하겠지만, 너무 협의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새로운 글을 올리기가 쉽지 않고, 읽을 거리가 없으니 자연 찾는 분도 없을 것은 물론이고 카페의 활성화도 기대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는 글들이 있더라도 카페 활성화를 위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인의 미덕인 정과 인내심으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에서의 삶이 그곳보다 훨씬 못할 테니까요, 하하하. 웃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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