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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역이민(역거주)에 꼭 필요한 정보모음

역이민 하지 마세요!

레이오프 당한 후, 2년에 가까운 서바이벌 노력이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온지도 어느덧 3년이 넘었다. 위축되고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고국이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30년 넘게 직장생활만 했으니, 50대 중반의 나이에 재취업도 힘들었고, 경험도 없는 비즈니스를 하기에도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비즈니스를 새로 시작해서 어려워 하는 친구에게 얼마간 도움(투자)을 주고, 집사람과 같이 그곳에서 일(단순노동)을 해서 생활비나 벌어보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간 LA 이었지만, 결국 노후생활을 위한 자금만 축낸 셈이 되고 말았다. 사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비록 늦은 나이긴 하지만, 생존을 위해 기술이라도 배워 테크니션으로서 살아보려고 시도했으나, 속고 속이는 아수라판(?)에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어서 택한 역이민이었다.


역이민을 한 이유는 순전히 내 '무능력'이 주된 이유이었다. 항상 어려움을 느끼는 '언어', 웬만한 비즈니스는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진 것이 많아 놀고 지낼 수도 없는 '재산',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도, 재취업하기에도 어정쩡한 50대 중반의 '나이', 책상에 앉아서 입과 펜으로 하는 일만 했지, 육체노동은 한 적이 없는 무기력한 '경력', 온갖 역경을 헤치고 성공을 거머쥔 사람이 주로 가지고 있는 불굴의 정신이나 용기도 없는 '정신력' 그리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픈 '뻔뻔함'조차도 없었다.


은퇴한 후 제주에서 생활하는 동서 형님이 여흥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가, 월 백만원이면 제주에서 충분히 살 수 있다며 들려준 제주생활은 - 잘 믿기지는 않았지만 - 컴컴한 가운데서 찾은 한가닥 빛(?)과도 같은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두 식구가 입에 풀칠만 하고 살더라도 $2,500은 드는데, 천 불 정도라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그냥 적당히 놀고 먹어도 가능할 것 같았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외국인이라 일 년에 한 번씩 국외로 나갔다 들어와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해외교포에게 주어지는 '거소증'이라는 것이 있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양반 동네인 미국 동부에서 살 때는 몰랐는데, 상놈 - 오해하지 마시기를. 미국 동부에 사는 미국인들은 서부사람들을 돈만 많은 상놈(?)으로 보는 경향이 있슴 - 들이 많이 사는 서부의 빈민으로 살다 보니, 'Better Life를 찾아서'라는 이민의 의미가 무색할만큼 (내가 보는 기준에서) 어렵게 사는 분들과,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3개월의 정착기간(?)을 보낸 후, 2011년 3월 초에 시작한 것이 이 '역이민 카페'이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이나,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만 정보가 없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권한다거나, 한국생활을 미화시키거나 하려고 시작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아직도 여러 면에서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나 뉴질랜드가 선진국이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개인적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 새로 이민 가려는 분들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이미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고 계시는 분들에게 하는 말이다.


이상은 미주 중앙일보 블로그에서부터 저를 쫓아온 분이나, 초창기부터 이 카페를 드나들었던 분들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지만, 최근에 가입하셔서 모르는 분을 위한 재방송이다.


재방송을 하는 이유는, 첫째 최근에 갑자기 새로 가입하는 분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일주일간 40분에 이어, 오늘도 여덟 분이나 가입자가 있었다. 하루에 한두 명, 많을 때 서너 명이 보통이다. 신문에 이 카페가 매스컴을 탔거나, 어떤 독지가 분이 신문이나 찌라시에 광고를 냈을 때와 같은 수준이다.


둘째는 미주 중앙일보 블로그에서 내 역이민 이야기로 꽤 유명세(?)를 탔을 때, 그리고 이 카페 초창기 때, 한국은 좋고 미국은 나쁘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는 비난글에 시달려야 했는데 혹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까 염려 때문이다. (http://blog.koreadaily.com/media.asp?action=POST&med_usrid=choi610423&pos_no=449845 참조, 원글을 쓴 사람은 지웠는데 원글을 퍼나른 사람은 아직도 지우지 않아서 지금도 구글에서 검색이 되고 있다.)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나로서는 또 다시 이런 비난에 시달리기 싫다.


한국,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복잡하고 시끄럽게 사는 곳이다.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데 비행기로 대여섯 시간이 걸리는 곳이 아니다. 제일 먼 곳도 이륙에서 착륙까지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지하철이나 사람이 많은 도심 한복판은 깨끗하지만, 뒷골목이나 시골의 한적한 곳은 더럽고 지저분하다. 오늘도 한 시간 넘게 집 주변을 걸었지만, 계곡이나 숲속에 TV, 냉장고 심지어는 타이어나 범퍼 같은 자동차 부품까지 버려져 있다. 생수 통, 스타벅스 커피 컵, 쥬스 깡통, 담배 갑, 과자봉지, 각종 농사용 비닐 등 보이는 건 온통 쓰레기다.


13억 인구의 중국에서 사용하는 석탄의 미세먼지가 겨울이면 서북풍에 실려 날라와 공해도 심하다. 물가도 비싸고, 교통질서도 엉망이고, 불친절하거나 예의가 없는 사람도 많다. 인적이 없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이라도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간이 안 된다. 안타깝지만 그게 한국이다. 부끄럽지만 그게 고국의 현실이다.


나같은 무능력한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곳일 뿐이다. 못난 자식도 부모는 거두는 법이고, 못난 부모라도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부끄러운 것이 많은 고국이지만, 나같은 무능한 사람에게도 많은 혜택을 주는 따뜻한 곳이기도 하다. 생활비도 적게 들고, 의료보험 혜택도 주고, 언어에 불편이 없으니 매사가 재미있다. 종북이니 수구꼴통이니 치졸한 방법으로 싸우는 정치판까지도 나는 재미있다. 미국에 비해서는 많이 뒤떨어지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웬만하면 그리고 능력이 있으시면 역이민 하시지 말라고. 


<후기>

언어, 재산, 나이, 기술이나 경력, 불굴의 정신자세 같은 능력이 있는 분들에게는 그 나라가 훨씬 좋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노아톰'님이 이곳에서 누누히 말하다시피,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다' 는데 동의하시는 분이라면 능력(?)이 되더라도 돌아오실 수 있을 거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고국이 0.1 밀리만큼이라도 좋아지는데 기여하고 싶은 분이라면 말이지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나이가 들어 돌아오는데 무슨 거창한 계획(?)이 필요할까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오직 작고 사소한 계획이나 소박한 마음일 겁니다.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정신적 편안함을 추구한다든지, 텃밭을 가꿔서 내가 먹을 푸성귀는 내가 기르겠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최근에 오신 분들을 위해 노파심에서 쓴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