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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역이민(역거주)에 꼭 필요한 정보모음

역이민에 적합한 사람들 - 둘

(2013년 3월 29일에 쓴 글)

 

- 우리 나중에 아이들 다 키워놓고 나이 들면 한국에 나가 살아야 하는 거 아니니?

 

○ 야, 이 자식아! 거기 뭐 있다고 가서 살 생각을 하냐? 숨겨놓은 작은 마누라가 있길 하냐, 꿀 발라놓은 떡 감춰둔 게 있길 하냐? 인간들 바글바글하고 네편 내편 갈라 편싸움이나 하기 좋아하는 곳을 뭐 좋다고 가냐? 친구들이야 가끔 가서 보면 되고, 시니어가 되면 그린피도 반값인데, 여기서 골프나 치고 살면 되지, 한국에 가서 살 필요 있냐? 야, 난 거긴 가서 살기 싫다!

 

귀국해 살면서, 오래 전 콜로라도에 사는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리곤 한다. 81년에 미국으로 간 친구는 나보다 이민 15년 선배인데, 이민 초보자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사인데, 회사가 잘 나갈 때는 마냥 그럴 줄 알고 천방지축 떠들어댔으니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로 쪽(?)팔린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죽마고우로 굴곡진 인생을 사느라 이제사 중학생인 아들을 두었지만, 녀석은 존경스럽기조차 하다. 며칠 전 통화를 했더니, 최근에 다시 레이오프 되어 또 다시 잡을 찾고 있다고 한다. 동네 라이브러리에 다니며 공부하고, 이력서를 내고 인터뷰하러 다니고 있다는 거다. 나 같으면 그런 능력도 열정도 놓아버린지 오래다. 그러니 60도 되기 전에, 꼬랑지 내리고 이렇게 돌아와 사는 수 밖에.

 

이렇듯, 절대 돌아올 일 없을 거라고 큰소리 땅땅 치던 사람도 돌아와서 살고 있으니, 역이민에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고, 나이 들면 고국에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뿐이다. 결국 사람의 생각이나 주관이란 것은 그런 생각을 갖게 한 환경이 있을 뿐이지, 그 사람의 생각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유사한 환경 속에 살았다면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인간이다. 스스로가 특별히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노안이 오고 머리칼 색이 변한 인생 내리막 길에서 깨친 개똥철학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좌빨이니 종북이니 편가르기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든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가르마를 탈 수 있고,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바꿀 수도 있다.(제 글 '가르마 바꾸기' 참조) 어떤 것이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올바른 길인지, 이해타산과 당리당략을 내려놓고 진정성을 갖고 논할 일이다. 누구든 갑남을녀 필부라면 환경과 처지가 바뀜에 따라 생각도 바뀌는 법이지 않는가! 과학의 발달과 첨단기술의 보급으로 주위환경은 급변하고 있는데, 생각은 바꾸려 하지 않고 낡은 사고에 집착하는 분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가 딴 데로 샜다.

 

즉, 이민과 마찬가지로 역이민에도 똑같다. 역이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 적합한 생각과 처지에 있는 분들이 있을 뿐이다. 이민과 다른 것은, 이민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떠나는 것이 유리하지만, 역이민은 자의든 타의든 은퇴해서 경제생활을 하지 않고, 여유롭게 고국에서 지내고자 하는 분들로 60세가 넘은 분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따라서 경제적 여건이 중요하다. 웰페어로 생활하시는 분들은 아무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더라도 안타깝지만 역이민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앞 글에서 언급했던 것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 보겠다.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 최소비용을 따져본다. 월 $1,500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환율변동이나 건강 등 고려대상은 많지만, 현재의 환율과 일반적인 건강을 가정한다. 부부가 건강하고 개인연금이든 SSA든 월 $1,500이 된다면 최소 십만 불 정도의 캐쉬가 필요하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이라도 거주할 집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집을 구입하든, 전세나 월세를 살든 리빙 익스펜스는 따로 계산할 필요가 있다.

 

$1,500불이 안 된다면 $500불당 십만 불의 캐쉬가 추가된다. 즉 천 불 정도라면 another 십만 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개략적인 것이지 디테일한 것은 아니고, 큰 그림 차원에서 로드맵이다. 막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참고하시면 된다. 이것도 넉넉한 것은 물론 아니고, 그럭저럭 보기 싫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이다. 이보다 많을수록 풍요롭고, 이보다 적으면 그만큼 궁핍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을 해야 한다. 학원차를 운전하든, 주유소에서 펌핑을 하든, 아니면 밀감농장에서 밀감을 따든 대부분 저임금 단순노동이다.(제 글들이나, '서울처녀 제주 착륙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래 'Svenswife'라는 분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소일거리들'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는데, 이에 대한 토를 달아보겠다. (좋은 생각이신데 절대 '초' 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자 할 뿐입니다.) 물론 한국사회의 1%밖에 안 되는 제주에서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왜곡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 숙제 및 공부 도우미, 학습지 만들기: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취업을 못한 20대 아이들 일이다. 이런 일도 나이를 따진다. 40이 넘었다면 물 건너 갔다고 보면 된다. '푸르미 공부방'이란 곳에서 꼬맹이들 가르치는 선생을 구한다는 말에 전화를 했더니, 대뜸 40살이 넘으면 곤란하다고 했다. 나, 대학 때 고3 수험생들 수학 가르쳤던 사람인데도. 한국에서는 돈 주는 사람이 왕이다. 돈 받는 사람을 막 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 싸가지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학원차 운전할 때 경험했다.

 

- 생일파티 음식 만들기, 김치 등 반찬 만들기: 좋은 아이템이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제약이 따른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 다문화 가정 도우미: 희생과 봉사정신이 없으면 하기 힘들다. 다문화 가정이 '러브인 아시아'에 나오는 착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알콜중독에 난폭하고 막 되먹은 인간 같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의 순박한 처녀들을 데려다 막 부려먹고 혹사시키는 되먹지 않은 사내들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모르고 당하는 괴로움 보다는 각오했던 괴로움 보다 덜한 즐거움이 낫다.

 

<후기>

어제는 주노아톰, 알렉시님 부부와 함께 사려니 길을 걸었습니다. 약속시간에 맞춰 나가느라고, 급히 올린 글이라 부족한 것 같아 보충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한달 반이 넘는 제주 체류를 끝내고 오늘 서울로 올라갔다가 캐나다로 돌아가는 Alexy 님이 편안한 여행길이 되기 바라며, 제주에 체류하는 동안 감기몸살로 고생하는 바람에 생각만큼 같이 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처음 계획했던 것을 이루셨기를 바랍니다.

 

저는 요즘 '협동조합'이란 것에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협동조합'이란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대기업의 횡포나 권력기관의 불공정에 맞서는 서민들의 조직입니다. '역이민 협동조합'을 결성해서 조합비를 거둬 역이민에 뜻을 가진 분들을 위한 구체적 행동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지요. 변호사는 'ilovenj'님이 하시면 될 것 같고, ㅎㅎㅎ.

김칫국물부터 마시는 격인가요?

 

좀 더 공부해 보고, 구체화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

강빛마을을 소개해서 아이디어를 주신 'Alexy'님 부부에게 변변찮은 글이나마 이 글을 송별의 의미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