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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Better Life를 찾아서Ⅲ

(2012년 3월 15일)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주인공(카를로스)은 아들(Luis)과 면회한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 왜 내가 너를 가졌는지 물었지? 내가 사는 마을에서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 처럼 나도 그렇게 하고 살았어. 그러다가 노비아(아이의 엄마인듯)를 만났고 결혼을 했단다. 그리고 북쪽(아마 미국을 뜻하는 듯)으로 갔다.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 몰랐으니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곳(미국)에 왔고 너를 가졌지. 왜냐고? 네 엄마와 나는 무척 서로 사랑했단다. 


- 그런데 사람은 변하는 거더라. 그리고 이곳은 모든 게 다르더군. 네 엄마도 변했지. 네 엄마는 내가 줄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원했어. 그렇게 네 엄마는 떠나갔어. 그리고 나는 너와 함께 외롭게 남게 된 거다. 돈도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어린 너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모르는 채로. 분노로 가득 찼었지만, 내가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네가 있기 때문이었다. 너를 돌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네가 커가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었으니까. 


- 너만은 네가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랬어.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지. 네가 누군가가 된다면 그게 바로 너를 가진 이유다, 내게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이렇게 되서 미안하다. 네게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는데. 네게 잘못해서 미안하다.


(원 대화를 보기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You asked me why I had you? You know, back in the village, you just did what any man would do. You found a novia. got married, and then you headed north. And that's what I did, because I didn't know any different. So we came here. And then, we had you. Why? Because your mother and I loved each other very much. But then, people change. And things were different here. Your mother changed. She wanted more than I could give her. So, she went away. And I was left alone with you. I didn't know how I was going to manage with a small boy, with no money and no regular job. I had a lot of anger inside me. But the thing...... The one thing that helped me get over all that was you. To be able to take care of you, and watch you grow. Because I love you. You are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is world to me, mijo. I wanted you to be able to be anything you wanted to be. That would make me feel worthy. If you became somebody, that's why I had you. For me. For a reason to live. I'm sorry about this. I wish you didn't have to see me like this. I'm sorry about failing you.)


'A Better Life'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어 다운로드해서 보았다. (혹 보실 분은 'torrentrg.net 의 영화에서 제목을 검색해서 다운 받으시면 됩니다.)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미국으로 건너온 멕시코 불법 이민자 '카를로스'의 이야기다. 배경은 LA로 한글로 된 간판도 보이고, 공항 주변의 낯익은 모습도 간혹 보인다.


LA 주변에서 흔히 보는 불법 체류 멕시칸의 스토리는 이렇다.

카를로스는 트럭을 갖고 가드닝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면서, 14살 짜리 아들과 방이 하나뿐인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루이스는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잘못되고 있고 아버지를 한심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 아들에게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한다. 트럭 주인은 트럭과 함께 가드닝 비즈니스를 카를로스에게 팔려고 하지만 카를로스는 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면허증도 합법적인 서류도 없다. 이민 변호사에게 속아 돈도 서류도 다 날린 경험만 있을 뿐이다.


여동생 아니타의 도움으로 트럭을 사서 트럭과 비즈니스 오너가 되고, 일자리를 찾아 모여있는 멕시칸들 중에서 산티아고를 픽업하여 일터로 향하지만, 그에게 트럭과 모든 연장들을 도둑 맞는다. 일을 하러 팜트리에 올라간 사이에 산티아고는 트럭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아들과 함께 어렵게 찾은 산티아고는 이미 트럭을 암시장에 팔아 돈을 자기 고향에 송금한 뒤였다. 자신의 트럭이 있는 곳을 몰래 찾아 들어간 카를로스는 아들과 함께 트럭을 찾아 나오지만, 환희에 차서 돌아오는 길에 경찰의 단속에 걸리고 불법체류자로 멕시코로 송환되게 된다.


송환되는 날, 면회를 간 아들 루이스와 잠간 동안 허락된 면회시간에 카를로스가 아들과 나누는 대화는 계속된다.


아니에요, 아빠는 내게 잘못한 적이 없어요. (No. You never failed me.)


- 관리의 재촉으로 일어나 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잘해준 적이 없다. (I was never there.)


- 눈물을 흘리며; 아빠는 언제나 제게 잘 하셨어요. (You were always there. Always.)


- 루이스, 아니타 고모에게 가있겠다고 약속해 줄래? 그리고 고등학교에 가면 잘할 거라고 약속해 줄래? You promise that, okay?


- 아빠, 돌아오겠다고 약속 해!


영화 속에서 카를로스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시민으로 묘사되고 그런 아빠를 한심하고 못나게 생각하는 아들과 갈등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성실하게 바보처럼 살아가는 아빠가 한심한 아들과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시민으로 떳떳한 사람이 되어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아빠의 갈등이다.


또한, 카를로스가 일하는 부자들의 아름다운 정원, 캘리포니아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의 남루한 모습을 오버랩하여 대조시키는 영상처리가 미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루이스는 새로운 학교에서 밝은 모습으로 축구를 하고, 카를로스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단의 사람들과 석양 속에서 국경을 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강제송환되기 위해 버스에 오르면서 먼 발치 철조망 밖에 있는 아들과 여동생을 보고있는 카를로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난 사람들은 그 보나 나은 삶을 그곳에서 찾았을까? 라는 질문을 영화는 던진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왔건만, 이혼을 하고 혼자 키우기 위해 자신의 생명이자 희망인 아들과는 같이 보낼 시간도 없이 주 7일, 일만 하고 사는 영화 속의 카를로스는 현실에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삶'이란 무언지 생각해 본다.

보다 나은 삶이란 업그레이드(Upgrade) 되는 삶일 것이다. 더 못한 삶을 찾아 이민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삶이 업그레이되는 삶일까? 보다 자유로운 나라에서 더 많은 자유를 구가하며 사는 것일까? 공해없는 보다 쾌적한 곳에서 사는 것일까? 법과 질서가 잘 구비된 나라에서 내 권리를 남에게 침해받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것일까?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자 최강의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는 것일까?


이런 가정을 해본다.

미국을 100이라고 했을 때, 지금의 한국은 몇일까?

60년대의 한국은 10이나 20, 70년대는 30에서 40, 80년대는 50에서 60, 90년대는 70, 2천년대는 80 정도 된다는 가정이다. 그렇다면 60년대의 이민은 더 나아질 삶의 여지가 8~90에 달했지만, 지금은 그 여지가 점점 작아진 것 아닐까?


중국이나 인도 또는 남미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민으로 삶이 '더 나아질만한' 갭(Gap)이 크지만, 한국인에게는 그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이, 3~40 년 전에는 한 해 수십만 가구가 떠났던 이민자가 최근에는 몇 천 가구에 불과할 정도로 줄어든 이유일 것이다.


차이가 큰 만큼 얻어지는 성과도 큰 베트남, 필리핀, 인도, 중국인들은 그로서리에서 음식점에서 개스 스테이션에서 주 7일,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기꺼이 일한다. 과거의 한국 이민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 이번에 갔더니 친구들이 별로 만나지 않더라구. 예전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번씩은 서로 집에서 바베큐도 하고 아니면 음식점에서 모여 어울렸던 동창들이 거의 만나지 않더라구.


얼마 전에 미국을 다녀온 도치 형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 보니까, 사람들이 예전처럼 여유가 없는 거야. 이제는 비즈니스들도 별로고, 은퇴한 친구들도 그렇고 서로 돈이 없으니까 백불 이백불도 아까운 거야. 생활비가 빠듯하니까 그것마저도 힘들어서 만나는 것을 서로 피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돈은 있었지만 시간들이 없었는데, 지금은 시간들만 있어! 옛날에는 돈이 있어도 쓸 시간이 없어서 오히려 돈을 더 모을 수 있었는데 말이야.



<후기>

파랑새를 쫓아 자기가 살던 정든 땅을 떠나 언덕 너머 낯선 땅으로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파랑새를 찾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구요.


1975년 파라과이로 농업이민을 갔던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습니다. 화곡동 국군통합병원 근처에서 살았었는데 밭농사를 크게 했었습니다. 지금은 유흥업소가 잔뜩 들어선 번화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다 밭이었습니다.

가끔 그 친구가 생각나는 것은, 만약 그 친구가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 부동산 재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돈이 파랑새는 아니겠지만, 손에 쥐고 있던 파랑새는 날려보내고 엉뚱한 곳에 가서 찾았지 않았냐는 거지요.


그러나, 아이들이 미국시민으로 살게 된 것은 잘한 일 같습니다. 그곳에서 자라 그곳이 더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아무래도 각박한 한국보다는 인생의 질이 낫다고 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살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들었습니다만, 제게는 한국이 더 친숙하고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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