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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후회하는 인생

(2012년 2월 24일)

 

늦은 봄날, 2층 덱으로 나옵니다.

쿼터 에이커가 훨씬 넘는 넓은 백야드의 잔디를 2시간이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방금 깍은 뒤, 샤워를 하고 나온 겁니다. 덱에 있는 흔들의자에 몸을 묻고 차게 히야시된 캔 맥주를 들고 흐믓한 마음으로 방금 깍은 잔디를 쳐다 봅니다. 

(이때는 잔디를 깍은 후, 쳐다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뿌듯했었는지.)


- 그래, 미국에 오길 참 잘했어. 아,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이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 키우고,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 없으니 이만하면 됐지, 뭘 부러울 게 있어?


10여 년 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넉넉한 토요일 오후, 행복감에 도취되어 몸을 떨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영주권도 쉽게 받았고, 몇 년 전 집을 산 것도 잘한 결정이어서 그때까지 집을 사지 않았던 이웃들의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회사도 탄탄하게 굴러가고 있었고, 아이들도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워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왜, 바보처럼 저러구 지내지?' 하고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았지요.


그런 세월이 한 3년인가 4년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점점 어려움이 생기고 직장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 갈등의 세월이 왔습니다. 결정적 한 방은 2008년의 경제위기였습니다. 보통 때라면 보너스 받을 생각에 부풀었던 연말에 보너스는 커녕 누구를 잘라야 하는지가 고민거리였었는데, 그 대상에 나 자신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두어 달이 지난 뒤였으니까요.


2010년 말에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제가 알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도 있었고, 옛날 직장의 동료와 부하직원들도 있었습니다. 본사 국장이나 지점장들, 또는 이런 저런 회사의 전무나 부장들, 교수도 있고 의사도 있습니다. 대부분 강남이나 신도시의 아파트에서 삽니다.


또 생각합니다.

 

- 나도 그때 참고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면 아직은 현역으로 저 자리에 있겠지. 그리고 미국에서 P 부사장에게 당했던 그 수치스러운 치욕도 겪지 않았을 테고, 그토록 어려웠던 각고의 시간도 없었을 테지.


그게 인생입니다. 죽을 때까지 후회하며,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후회할 짓을 하며 사는 것이 '갑남을녀'가 하는 일상사입니다. 피해갈 수 없는 보통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상인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찌기 간파하고 예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부처님은 '마음을 비우라'고 한 것 아닐까요?


내게 주어진 환경을 고치고 바꾸기 위해 투쟁하고 힘겨운 싸움을 했던 것은 다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래서 이민이라는 힘든 과정을 겁없이 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여건에 맞추어 살면 그뿐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면서 거기에 맞추어 살 뿐입니다.

이민이든 역이민이든 다 과정일 뿐입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캐나다든 적응하여 마음 편할 수 있으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후회도 과정이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하고 나면 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그러면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굳이 애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후기>

너무나 공감이 가는 글을 보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행복했던 시간들, 그리고 고통의 세월들이 스칩니다.


어리석었던 결정들이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아닌가요?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가요?

아마 그게 맞겠지요.


그냥 쓰게 웃을 뿐입니다.

ㅎㅎㅎ

그게 인생이니까요.

결국은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