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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Better Life를 찾아서Ⅱ

(2012년 3월 9일)

 

- 한국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이나 일 못하는 사람이나 봉급이 똑 같잖아. 8시간만 일하고 땡하고 가는 사람이나 12시간씩 일하면서 회사에 크게 기여하는 사람이나 차이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공평한 것이 아니지. 봉급은 입사년도에 따라 호봉으로 결정될 뿐이고 능력은 무시되는 게 얼마나 불평등한 거야.

 

직장에서 알게 되어 친하게 된 K군이 한 말이다.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할 때 겪었던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그 회사에서는 그랬다. 즉, 그가 한국을 떠난 이유다. 그는 나보다 한 해 늦게 미국연수를 다녀온 후, 1년을 준비해서 1986년 8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NJIT(NJ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원 과정에 입학했으나, 주립대학에서는 조기 졸업이 힘들어 Hoboken에 있는 Stevens 공대로 옮겨서 1년 3개월 만에 컴퓨터 사이언스 석사 과정을 마쳤다.

 

- 나는 먹고 마시는 것이나 여자와 잠자리하는 것보다 프로그래밍하고 디버깅(프로그램에서 발생하는 에러를 수정하는 일) 하는 게 더 재밌어. 컴퓨터는 논리잖아. 내가 만든 대로 동작하고 결과를 보여주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거든.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사는 그에게, 그게 그렇게 재밌느냐? 고 묻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는 집에 돌아오면 소파에 앉자마자 외투도 벗기 전에,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서 전원부터 켜는 사람이었다. 그의 컴퓨터는 산지 6개월이 되지 않아 걸레처럼 너덜거리기까지 했다. 하도 자판을 두드려 대니 자판 위의 글자는 지워져 보이지 않게 된 지 이미 오래다.

 

노력하는 그에게 당연한 결과지만, 그는 크게 성공했다.

학교 졸업 후, 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거쳐 1992년에 창업한 그의 회사는 초창기의 어려움을 극복한 후, 1997년에 백만 불, 1998년에 3백만 불, 1999년에는 천만 불의 매출을 달성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사업은 인건비와 사무실 비용 외에는 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 사업이다.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회사가 어려워지자 그는 2010년 회사를 팔았고, 수천 만 불을 챙길 수 있었으니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친구다. 2004년 50살이 다 되어 시작한 골프도 - 운동에 소질이 전혀 없어도 - 그 특유의 열정과 집중력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싱글의 경지에 들어섰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자 골프광이기도 한 그는 이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캐나다 서북부 원주민을 대상으로 선교를 겸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토록 좋아하는 골프도 마음만 먹으면 매일 즐길 수도 있을 거다.

 

그 회사의 직원으로 옆에서 장시간 그를 지켜보며 느낀 것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명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회사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도, 무슨 단체에서 주는 '경영자 상'을 받는 것에 흥분하고, 자신의 모교에서 주는 '자랑스러운 동문인상'을 받으러 한국까지 다녀오는 것을 보며, '아, 저 친구가 이제는 명예를 생각하는구나!' 라는 느낌을 가졌었다. 항상 겸손하고 일 밖에 모르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남을 설득하려 들고, 상 받는 일을 영광으로 여기며 집착하고 있었다.

 

그 때 받은 '경영자 상'이 회사를 팔고 만 지금도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바로 윗동서의 누님인 K 여사는 내겐 사돈이지만, 부에나 팍에 살기 전에는 만난 적이 없었다. 30여 년 전에 처음 이민 와서는 미국 사회를 알기 위해, 한 달 만에 운동화 한 켤레가 다 닳아빠질 정도로 걸어서 돌아다녔다고 한다. 비즈니스를 셋업해서 얼마간 운영하다 되파는 일로 돈을 벌었다고 들었다. 지금도 빈 가게를 보면 어떤 비즈니스가 이곳에 될지 생각한다고 한다.

 

LA 주변에 부동산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어, 세만 받아도 만 불이 넘는다고 하니 어떤 의미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분이다. 아직 미혼인 아들과 단둘이 사는 플러튼의 넓은 집은 강아지만 4~5 마리를 키운다. 젊어서 고생을 해서 그런지, 얻은 병으로 장기의 일부를 들어낸 탓에 소변이 조절이 되지 않아 기저귀를 사용한다. 낮에는 괜찮지만 밤에는 흘러내려 고인 소변이 식는 바람에 자다가 추워서 떨기도 한다.

 

렌트를 제때 안 내는 테넌트들을 수금하러 찾아다니며, 맛있는 음식 사먹으러 다니는 것이 소일거리다. 유일한 취미는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가끔 따기도 하지만 주로 몇 천불씩 (때로는 몇 만불씩) 잃고 오는 것이고, 남아있는 일은 더 늦기 전에 가진 재산을 다 정리해서 유일한 혈육인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항공사에 다니는 아들은 엄마가 갑자기 사망하면 재산을 알 수 없으니 빨리 정리해 달라고 재촉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수 백 편의 영화를 카피해서 TV로 볼 수 있게 해 준 내게 무척 고마워 하셨다.

 

우연히 만난 LA 지역의 대학 동문회 모임은 정말 돈독했다. 1기 선배부터 40 몇 기 후배까지, 매월 골프모임, 등산모임, 친목모임이 있었고, 봄에는 야유회, 연말에는 망년회를 하고 있었다. 그 분들을 알게 된 기간이 짧아 많은 모임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에어컨 일을 하는 후배를 따라 다니면서 일을 배울 때 들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 B 선배님은 몰몬교도이신데, 태어나서 술 담배를 한 번도 입에 대신 적도 없데요. UPS(택배회사가 아닌 전원장치 회사)에서 65세에 정년을 하셨는데, 회사에서 다시 나와 달라고 했답니다. QA(품질관리) 쪽에서 일하셨는데, 워낙 기술이 뛰어나신 분이 관두니까 그 공백이 컸나 봅니다. 지금 연세가 70인데도 현역으로 일하시고, 동문회 등산모임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어요. 웬만하면 사모님과 꼭 두 분이 같이 참석합니다.

 

2010년 7월 처음 참석한 등산모임은 Azusa 쪽의 무슨 산이었는데, 산을 넘어 계곡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이른 아침의 선선한 때 시작한 산행은 처음에는 힘든 줄 몰랐었으나, 점심을 먹고 1시쯤 되돌아오는 길은, 캘리포니아의 한여름 내려쬐는 뙤약볕에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물론 점심 때 마신 소주의 영향도 컸겠지만, 걷는 데는 웬만큼 자신이 있는 내게도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 이 사람들아, 다시는 Azusa 쪽에 오지 마. 내 이럴 줄 알았어. 마누라 데려오지 않은 게 다행이지. 이거 사람 죽이는 거지, 등산을 했으면 하산만 하던가, 그늘 하나 없는 곳을 오르락내리락 하려니 얼마나 힘들어! 아이고 힘들다.

 

미리 내려와서 화장실 옆 그늘에 - 그만큼 그늘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 쓰러져 쉬고 있던 내게, 13년이나 위인 선배님의 불평은 불평이 아닌 경악처럼 들렸다. 내가 저 나이가 되었을 때, 과연 저렇게 지낼 수 있을까?

 

<후기>

사람들은 각자 다른 수많은 사연들을 지니고 삽니다만,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대체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Better Life'라는 것이지요. 즉, 미국 헌법에서 인간의 권리라고 선언한 '행복추구(Pursuit of Happiness)'입니다.

그 '행복'을 위해서 또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이민을 택한 사람들에 우리는 속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인 여유를 행복추구와 더 나은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깁니다. 즉 돈이 목적이 되는 것이지요. 하긴, 돈 버는 재미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없을 겁니다. 미국에서 그런 재미로 사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오로지 돈 버는 재미 하나로 사시다가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세상을 떠나신 분도 있었습니다.

 

어떤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또 다른 것을 찾습니다. 명예에 집착하고 권력에 욕심을 내면서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또는 더 많은 부를 원하기도 합니다. 정주영씨가 대통령에 도전하고, 그 자식들이 소위 '왕자의 난'을 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삼성의 이건희씨가 형과 누나들로부터 고소를 당합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들은 'Better Life'를 위해서 돈보다도 건강이 최고라고 주장합니다. 당연합니다.

다시 말하면,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도 사람마다 틀리고 나이가 들면 달라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健康), 처(妻,와이프), 재(財,약간의 재산), 사(事,소일거리), 우(友,친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주 중앙일보 불로그에 제 별명이 '건처재사우'입니다만, 이 모든 것을 적절히 다 갖추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다른 것은 다 갖추고도 병마와 싸우며 고통 속에서 지내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배우자와 갈등으로 재미없는 나날을 보내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힘들게 사시는 분도 있으며, 또 소일거리가 없어 답답해 하며, 친구가 없어 외롭게 지내시는 분들도 있지요.

 

우리가 이민을 떠날 때, 찾았고 믿고 있었던 'Better Life'는 지금도 그때와 같은 모습일까요?

하하하, 제가 너무 횡설수설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