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경쟁하는 자살 공화국

(2011년 11월 17일)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지난 날

 

60년대는 무척 가난했다.

요즘같은 계절이면 연탄걱정, 김장걱정으로 한숨을 쉬시던 부모님 모습이 떠오른다.

연탄을 몇 백 장 들여 놓아야 겨울을 날 수 있었고, 배추와 무를 몇 백 개씩 김장을 해야 봄까지 먹고 살 수 있었다.

비좁은 단칸 방에 아버지, 엄마, 동생들, 그리고 나 다섯 식구가 생활했어도, 아버지 코고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 못이루는 일도 없었고, 입김이 허옇게 뿜어져 나와도 추워서 잠 못 자는 일도 없었다.

 

꽁치 반토막만 있어도 그 날 저녁은 더없이 행복했고, 김치찌게에 돼지고기라도 몇 첨 들어가면 그것은 밥도둑이었다. 아버지가 약주를 드시고 사온 센베이 과자 한 봉지에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가 되었고 자식이 되었었다. 스트레스가 뭔 줄 몰랐고, 불면증이나 우울증 같은 병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어둑해질 때까지 구슬치기 딱지치기로 골목에서 놀다가, 밥짓는 냄새나 생선굽는 냄새에 집으로 뚸어들어가며 소리쳤다. 엄마, 나 배고파. 수돗가에서 찬 물로 세수하고 발 닦고, 들어가서 먹는 저녁이 얼마나 맛있었던가! 그 골목의 냄새, 엄마의 냄새, 누룽지 냄새, 숭늉 냄새..... 행복했던 추억의 냄새들은 코가 아닌 눈물샘을 자극한다.

 

냉장고도, 전화도 없었고, TV도 없었다. 전기 밥통이나, 세탁기, 컴퓨터는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유일한 오락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엄마와 같이 듣는 '강화도령'이라는 라디오 연속극이었다. 30대 후반이었던 엄마는 라디오에서 하는 연속극 듣는 것으로도 행복해 했다.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아버지의 월급은 10불(당시 화폐로 몇 천 원)이나 되었을까? 쌀 한 가마 들여 놓으면 얼마 남지 않았던 그 돈으로 엄마는 살림을 꾸렸고 우리를 먹였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렇게 잘 산다는 다른 나라에서 들려오는 뉴스들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혼율이 높다든가, 잘 사는 나라에서 젊은이들이 자살을 한다는 이야기들은 어린 마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 양산되는 루저

 

2004년 KAIST 총장으로 부임한 서남표 박사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석학이다. 50년대에 MIT를 졸업했고, 카네기 멜론에서 기계학 박사를 취득한 분이다.

 

이 분은 총장으로 취임한 후 학생들에게 상대평가를 함으로써 경쟁을 강요했다. 성적 미달자는 0.01 점당 6만원을 더 내는 제도를 만들었다. 8학기 만에 졸업을 하지 못하면 8백만원의 등록금을 추가로 내야 했는데도 재수강 과목수를 대폭 축소하여 학생들에게 압박감을 주었다. 고등학교 때는 우수했던 학생들이 대학에서 루저가 되어, 심리적 압박감을 견뎌내지 못하고 4명이 잇달아 자살했다. 그 아이들이 죽기를 결심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힘이 들었을까?

 

IMF 이후 한국의 경쟁력은 크게 상승했다. 일상의 구석구석을 파고든 경쟁논리 때문이다. 무한경쟁 속으로 내몰린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경쟁에서 쳐진 루저들에게는 설 땅이 없다. 주위로 부터 받는 차가운 시선은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 인내하기에는 너무 힘들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보자.

전 직원의 36%인 2,646명을 해고하려하자 그들은 77일간 격렬하게 저항했었다.

가까스로 타협을 이루었지만, 460여명을 1년 대로 복직시키겠다던 사측에서 제시했던 약속은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았고, 2년도 더 지난 지금 그들은 아직도 무직이 35%, 일용직이 44%, 비정규직이 18%이며, 17명이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이 평균 월수입은 해고 전 320만원이었으나 지금은 82만원이라고 한다.

 

그러니 루저가 될 수는 없다. 어떤 방법을 쓰던 이겨야 한다.

쉰 살이 넘은 김진숙씨가 여자의 몸으로 고공 크레인 위에서 309일이나 농성한 이유다. 단순한 파업이니 노동운동의 사안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다.

 

자살하고 이혼하는 한국

 

발표기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자살률과 이혼률, 저출산률에서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를 자랑(?)하고 있다. 하루에 42.6 명이 자살(2010년)하고, 11쌍 중 1쌍이 이혼(2009년)하고, 여성당 1.15 명(2009년)의 아이를 낳는다고 통계치는 전한다. 특히 자살률은 10 년 연속 1위고, 전세계에서는 리투아니아에 이어 2위라고 한다.

 

오늘도 대구의 원룸에서 3명의 젊음이 연탄을 피워놓고 자살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지난 주에는 김추련씨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났다. 처가와는 사돈관계다. 젊은 사람이고 나이 든 사람이나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3년 전에는 조카벌 되는 아이가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을 했다. 수능시험 전국순위 5,124등을 하여 부모를 기쁘게 했던 아이였다. 서울의 괜찮은 대학 법대에 4년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으나, 졸업 후 취직을 하지 못했다. 한 때 부모의 자랑스런 딸이었고 좌절을 몰랐던 아이가 몇 번의 패배를 당하자 자살을 택해 남아있는 부모의 삶을 지옥 속으로 쳐넣었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어린 아이들도 경쟁에 내몰린다. 전국 모의고사를 실시하여 성적순으로 줄을 세운다. 2008년 10월에는 광주에서 10살 짜리 아이가 성적이 떨어지자 며칠을 울다가 목을 매 자살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스스로 생명을 포기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싸늘하다. 제 목숨 스스로 끊은 루저들에게 동정할 필요가 없다는 투다.

 

부모가 자식의 이혼을 부추긴다고 한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는 것이 그 이유다. 컴퓨터와 통신의 발달은 퇴폐와 불륜을 조장하고 고도화시켰다. 금전만능주의는 가정 구성원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아이를 낳지 않게 한다.

 

국민소득 2만 불을 넘어 3만 불대로 진입하는 대한민국에 불행한 사람들은 점점 늘어간다.

 

빈부의 양극화, 소통부재의 한국

 

2009년 기업투자 활성화 명목으로 대기업 출자 총액제한을 폐지했다. 규제가 철폐되면 투자하여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전경련의 주장을 정부가 받아들였다. 그들은 약속대로 투자를 늘렸지만, 그들의 진출업종은 대부분 문구도매, 음식점, 신발유통, 순대, 두부, 떡복이 같은 서민이 자리잡고 있던 종목이었다. 대기업들이 자기의 고유업종에 투자를 늘린 것은 24%에 지나지 않았다.

 

설 곳을 잃어가는 전통시장, 골목상권과 중소기업들은 경쟁에서 쓰러져 루저가 된다. 개나 고양이가 살아가는 울타리에 사자나 호랑이를 집어넣고 경쟁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개와 고양이가 한 목소리가 되어 살려달라고 외치면 종북이니 좌빨이니 몰아세운다. 자본주의와 시장자유주의의 논리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로 매도한다.

 

기득권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민족의 비극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벌써 60년 넘게 써먹은 방법이지만 아직도 통한다. 최근에 그 효과가 줄어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진정성을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종북이니 좌빨이니 매도하는 것은 애초부터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거다. 소통을 위한 시도도 없다. 그냥 상대방을 헐뜯고 흠집내면 그만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소통이 없으니 양보와 타협은 있을 수 없다. 곧장 극한 대립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부를 위해 행복을 양보하면서 지금까지 살았다면, 이제는 사회의 행복을 위해 부를 희생하는 것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부가 행복은 아니니까. 그리고 행복이 돈보다 더 중요하니까.

 

<세계 자살률 통계, 굵은 줄은 OECD 회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