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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빌과 워렌, 학교에 가다

(2011년 8월 23일)

 

워렌 버핏, 빌 게이츠 학교에 가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에서는 2005년에 방송되었겠지만 그때는 보지 못하고, 최근 한국의 케이블 TV에서 방송한 것을 보게 되었는데, 미국사회의 건강한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프로그램은 서두에 두 사람을 이렇게 소개한다.


워렌은 보험, 음료수, 구두, 주택공사자재와 같은 기본적인 상품에 투자하는 전통적인 투자 기법(Old fashioned way)으로 410억 달러를 벌었고,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 소프트라는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여 500억 달러를 벌었으며 두 사람은 정반대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워렌은 네브라스카 대학에서 1950년에 학사학위를 받았는데, 젊은 사람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학생들과의 대화시간을 계획하고, 그 자리에 친구이자 워렌의 회사 이사이기도 한 빌 게이츠를 초청하여 경영학부 학생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질의응답 세미나의 제목은 세계 최고의 부자 두 사람에게 어떤 질문을 하겠습니까?’ 이다.


교직원, 학부형과 취재기자 들의 질문은 일절 받지 않고, 질문의 내용도 사전에 배포되지 않았다고 한다.

질문의 내용은 다양하게 이어졌다.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 의사결정은 어떻게 하는지, 일상생활과 자녀교육에 이르기 까지, 여러가지 질문들에 유머와 함께 진솔한 답변이 이어졌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누구로부터 조언을 구하느냐는 질문에 워렌은 거울을 본다는 농담으로 좌중을 웃음으로 몰아넣기도 했고, 자신의 자식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부자인지 알지 못하고 자랐다는 말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이 태어난 집에서 계속 살았고, 특별한 대우 없이 공립학교에 다니는 등 남들과 똑 같은 방식으로 자랐기 때문에 자신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 수가 없다는 답변도 했다.


,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국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단순히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다면, 그건 내가 생각하는 미국인다운 정신이 아니다.” 빌 게이츠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워렌 버핏의 말이었다.

유럽에서 도입하는 고정세율에 대한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난 몇 년간 큰 부자들만 이익을 보며 살았다. 미국의 세율은 지금도 너무 일률적이다. 현재12% Payroll Tax는 빌 게이츠나 내게는 껌 값에 불과하다. 물론 8, 9만불을 받는 일반 직원들에게는 부담이 클 수도 있지만. 25년 전에는 지금보다 수입은 훨씬 적었지만, 세율은 지금의 두 배였다. 나와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물론 지금도 많이 내긴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세율이 너무 낮은 편이다. 부자들에게 너무 유리하다.”


빌 게이츠가 덧붙인다.

   “전적으로 워렌의 말에 동의한다. 국가재정의 균형을 위해서도 보다 진보적인 세금체제가 필요하다. 부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많은 재산들이 소득세 부과를 피해가고 있다. 우리들이 이런 말을 하면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재의 세금제도는 보다 진보적인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워렌 버핏이 말을 추가한다.

   “나는 25년 전부터 세금 한 푼 안 내고 평생을 버티는 방법을 알고 있다. 버크셔 헤이웨이의 주식(세계 최고가 주식. 주당 80만불 가량)을 사들이고, 그것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아 생활하다가 죽으면, 그 주식으로 대출을 갚으면 된다. 불과 몇 퍼센트의 은행이자만 내면 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불공평한 것이다. (I think frankly it’s very unfair)”

 

50분에 불과한 이 프로를 보면서 건강한 미국사회의 힘이 느껴졌다.

또 한국의 돈 많은 사람들과 비교되면서 비슷한 사람조차 찾기 힘든 한국의 현실이 부끄러웠다. 한 푼이라도 더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온갖 편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이건희씨와 정몽구씨의 전혀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번 돈도 아니고, 부모 잘 만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은 사람들이다.


시종일관 유머와 웃음으로 좌중을 이끌며 행복한 모습의 워렌과 빌의 모습은 항상 근엄하고 웃음기라고는 약으로 쓸래도 찾을 수 없는 모습으로 언론에 나타나곤 하는 한국의 최고 부자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주, KBS ‘추적 60에서 GS건설과 STX건설의 아파트 분양사기에 관한 보도가 있었다. 직원들을 동원한 허위 청약으로 분양률을 높여 그걸 사실로 믿고 청약한 선량한 서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내용이었다. 그 재벌들은 한결같이 불법은 아니니, 법적으로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자기들은 법을 지켰으니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건 말건 자기들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도치 형님(한국 30, 미국 27, 제주 8)에게 들은 이야기도 생각났다.

 

- 내 매형이 미시간에서 병원장으로 은퇴하고 70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의사로 일하고 있어. 그분이 한국의 S식품 재벌 직계거든. 그 아들이니까 나한텐 조칸데, 대학 때 한국에 처음 나갔다 오더니 다시는 한국에 안 간다는 거야. 재벌 가문에서 친 조카가 미국에서 왔으니 공항에서부터 운전수에 비서까지 수행토록 한 거야. 미국에서 나서 자란 아이가 그런 거에 익숙하겠어? 자기한테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거지. 백화점에 데려가서 원하는 것 다 사라고 하는데 그 아이에게는 이상하기만 한 거야. 항상 붙어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한 거지. 한 번 다녀 오더니 다시는 한국에 안 간데.

 

이 방송에서 대화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며 끝내고자 한다.


질문: 두 분의 재산은 910억 달러로 세계 최빈국 70개국 국민 총생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두 분의 재산이 세계경제 균형에 기여를 한다고 생각하나?


답변: (워렌 버핏) 우리의 금고에는 주식증권이라는 종이쪽지가 보관되어 있다, 언젠가는 돈으로 바뀌어 제품이나 서비스를 살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회가 우리에게 맡겨놓은 일종의 보관증이다. 그 쪽지는 언젠가 돈으로 바뀌어 사회에 가장 큰 이익이 되는 방식, 가장 큰 효과가 되는 방식으로 쓰이게 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돈은 환원된다. 우리는 전세계 사람들이 더 나은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빌과 멜린다(게이츠 부인)는 그런 측면에서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다. 항상 어떻게 하면 인류가 더 나은 생활을 하는데 돈을 쓸지 진정으로 고민하고 있다.


(빌 게이츠) 세상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5천만불을 버는 사람이 대저택을 짓고 자신을 위해서만 소비한다면 그런 자원을 자신의 방향으로만 돌리는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과 실력이 따라줘서 사회적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보다 많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부를 사용할 때, 위로부터 부를 재활용하는 것이다. 재산가 명단 상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사회에 환원해야 할 의무도 커지는 것이다. 돈만 내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고민도 거쳐야 한다.

 

질문: 두 분이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는? 특히 사업 외적인 면에서.


답변: (빌 게이츠) 가정이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잘 키워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다.


(워렌 버핏) 성공했다는 사람들 중에, 내 나이 정도 까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드물다. 그건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진정 성공한 사람들은 나이를 먹은 뒤에도 사람들이 주변에 남아줘야 한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사업동료들을 포함해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자기이름으로 된 대학까지 세운 사람을 많이 알지만, 또 저녁만찬도 개최하고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여도, 그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안다. ‘포브스 400대 부자에 들 정도로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라고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평범한 직업을 갖고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 보았지만, 그런 사람들도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후기>

미국에서 보다 한국에 있으면서 더 미국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곳에 처음 갔을 때는 로컬신문이나 뉴스위크를 구독하기도 하고, 잘 알아듣지 못하는 뉴스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도 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거기에 쏟는 노력이 버거웠던 게지요.


미국에 살면서 미국에 대한 뉴스보다는 인터넷으로 한국의 신문을 더 기웃거렸었습니다. 기껏 보는 뉴스가 저녁 8시부터 두 시간 보여주는 한국 TV방송이 다였습니다.

몸만 미국에 있을뿐 마음은 한국에 있었던 거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미국인이 되라고 했으니 한심한 부모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미국을 더 배우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