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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詐欺) 한국 - 트루맛 쇼

지금은 잘 보지 않지만 미국에 있을 때 즐겨보던 TV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VJ 특공대'이었다. 실직을 하고 나서 무얼 할까 하고 궁리하던 중 그 프로그램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없을까하는 아주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 프로를 보면 먹는 것에 대한 방송이 첫 부분을 차지한다.

먹음직스러운 음식들과 그것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국에 사는 덕에 그림의 떡을 보듯 부러운 생각도 들었고, 또 언젠가 한국에 가면 맛집을 찾아다니며 실컷 먹어보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식도락가나 미식가와는 거리가 먼 나도 그런 생각이 들게 할 만큼 훌륭한(?) 프로였고, 실제로 LA에서 돈을 잃고 난 후, 낙담에 빠졌을 때는 그 프로에서 본 호떡 장사를 해볼까하는 생각까지도 가졌었다. 어떻게든 생활을 하고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남대문 시장 귀퉁이에서 있는 거리의 호떡 리어카에 호떡을 사기위해 길게 줄서 있는 사람을 보고, 또 그 주인이 만원짜리 돈다발을 매출이라고 흔들어대는 것을 보고, 한국에 전화를 걸어 동생에게 한번 찾아가서 먹어보라고 종용하기도 했고, 한국을 방문하는 와이프에게 그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시키기도 했었다.


짐 캐리가 주연으로 명연기를 보여주었던 영화 '트루먼 쇼'를 패러디한 다큐 '트루맛 쇼'를 보고, 사기와 거짓의 나라 한국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와 동시에 미국에서 잠시나마 꾸었던 꿈(?)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무슨 상을 받았다는 이 영화는 MBC PD 출신으로 외주제작사를 운영하는 김재환씨가 경제적 위협을 무릅쓰고 사비를 털어 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순전히 이 영화의 제작을 위해 실제 '맛 - Taste'라는 음식점을 일산에 차리고 곳곳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후, 실제로 이 음식점을 방송국의 맛집 프로그램에 내보내는데 그 과정을 리얼리티 쇼로 보여준다.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되는데, 적게는 5백만원에서 많게는 천오백, 이천만원까지도 든다고 하는데 조작의 정도에 따라 가격은 결정된다. 30년 전통을 가진 집이라든가, 3대 4대에 걸쳐 하는 집이라든가 하는 특색이 있다거나, 혹은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특이한 메뉴를 가지고 있다면 돈이 없이도 출연이 되고 돈이 들어도 많이 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 시작했다거나, 평범한 메뉴를 가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작된 메뉴와 미리 작성된 시나리오대로 연출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SBS 생활경제 (월 ~ 금, 아침 11시부터 방송), SBS 모닝와이드 (월 ~금, 아침 6시 부터), SBS 생방송 투데이(월 ~ 금, 저녁 5:35부터)의 8분 코너에 방송이 나가는데 천만 원이 든다고 한다.

스타 맛집 출연료는 기본이 9백만 원이고 출연하는 스타에 따라 가감이 된다.


'불만제로'라는 프로그램에서 비위생적인 설렁탕 집으로 고발당한 식당이 있다. 인공조미료와 수입 고기를 사용하면서도 국내산만 쓰고, MSG는 절대 안쓴다고 광고를 하는 집이었다. 그러나 몇 달 후 버젓이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가 된다. 국내산 고기만 사용하고 조미료는 사용하지 않는 집으로.


SBS의 '돈이 보인다'라는 프로그램은 흡혈귀같은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한다. 프랜차이즈 식당을 소개하면서 엄청나게 맛있는 집처럼 방송하며, 주인이 돈다발을 흔들어대는 모습을 방송한다고 한다. 월급장이로 명퇴하고 나서, 어떻게든 생활비를 벌어보려고 애쓰는 은퇴자들이 그 방송을 보고 혹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광고도 아니고 취재로 나간 방송을 보고 호기심이 동하지 않는 은퇴자가 있을까?


그렇게 엮인 사람이 1~2년 후에 프랜차이즈 회사만 좋은 일 시키고 문들 닫을 때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방송사는 미래를 어떻게 알고 방송하느냐고 변명하면 그 뿐이다. 이렇게 문을 닫는 가게가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자연산만 사용한다, 인공 조미료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전부 국내산이다, 연예인 누가 다녀갔다,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에 다녔다는 식당주인의 말을 아무런 검증없이 내보내고도 방송국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


맛 식당은 방송 출연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으로 3백만 원을 건넨다. 방송사(실제로는 외주제작사)가 그럴 듯하게 일반 메뉴(돈가스)를 가지고 새로운 작명(죽말 돈가스)을 한다. 너무 매워서 '죽던지 말던지' 책임지지 않는 돈가스라는 뜻이다. 식당 이름도 바꾸라고 권한다. 그래서 식당은 '맛'이 아니라 '핫(Hot)'이라고 이름을 바꾼다.


사전에 손님들을 친척이나 지인들로 식당 안을 가득 채워두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청양고추를 넣어 먹지도 못할 음식을 맛있는 것처럼 먹어주고 나중에 말이 새어나가지 않을 사람으로.

손님들은 사전에 배포되고 연습한 대로 대사를 읊는다.

그리고 그런 방송을 정말이라고 믿고 나같은 사람들은 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부러워했다.


완벽한 사기다.


외주제작사는 방송사에 주는 제작비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고 한다. 즉, 협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한다. 게다가 시청률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외주제작사는 생존이 위태로워진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사기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 협찬금은 방송사가 다 가져가기도 하고, 서로 나누기도 한다니까 그들로서는 공공연한 사기인 셈이고, 모르고 기만당하는 시청자만 바보가 되는 거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의 도입부분에 소개되는 경기도 포천의 '원조 파주골 손두부 식당'은 SBS에서부터 시작해서 34번이나 돈 한푼 주지않고 소개되었다고 한다. 방송에 나간 후 세줄로 손님이 들어오고, 음식은 손님들이 스스로 갖다가 먹어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매일 매일 돈을 나무상자에 쓸어담았고, 그 결과 시골의 이름없는 구멍가게 식당이 지금의 으리으리한 대형식당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방송의 순작용의 결과다.


그러나 그런 식당이 몇 개나 있을까?

일 년에 만 개가 넘는 맛집들을 소개한다고 하니, 점점 맛과는 아무 관계없는 연출 실력으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만들어 보인 것이다. 그리고 맛없는 음식을 맛있게 보이게 했으니까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다. 거기다 창작료도 받아야 한다. 레드와인소스 소갈비, 캐비어 삼겹살, 데판 오뎅탕, 죽말 돈가스 같은 이름을 창작했으니까.


아래와 같은 화면으로 이 영화는 끝난다.



<후기>

개인적으로 정직한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거짓으로부터 생기는 것 아닌가요?

미국이라는 사회에 반한 것도 정직이었습니다.

30여년 전, 제가 처음 본 미국사회는 웬만하면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주었고, 

그래서 그런 사회를 동경했었습니다.


거짓과 사기가 판을 치는 대한민국은 과연 고쳐질 수 있을까요?

방송이 사기를 친다면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대통령이 대놓고 표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 나라이니 처벌을 할 수도 없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수단이 사기가 되었든, 거짓이 되었든 상관하지 않는 나라입니다만,

이 영화를 만든 사람처럼,

이런 사회를 고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