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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아들의 방문

(2011년 9월 22일)

 

아들 놈이 한국에 왔다. 중학교 이후로 처음이니까 13년 만에 성인이 되어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찾은 것이다.

 

제주에서 김포로 가서 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녀석을 맞이하러 갔다. 나는 도착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했고, 비행기는 한 시간 가량 연착했으니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공항의 중앙무대에서 무료로 벌이는 퍼포먼스도 보고 공항의 구석구석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작년 11월 미국을 떠나기 전에 뉴저지에 들려 보고 왔으니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항상 보고싶고 그립다. 그 그리운 모습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출구에 나타났다.

 

다음 날,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유해가 있는 납골당으로 가서 간단히 예를 올렸다. 할아버지는 돌이 지난 후 한 달만에 돌아가셨으니 기억할 리 없고, 할머니는 미국에도 왔다 가셨으니 기억을 하고, 산소를 찾겠다고 한다. 청아공원이라는 납골 묘지는 며칠 전 사망한 최동원이라는 유명인사가 들어와서 곳곳에 그의 사진이 붙어있다.


돌아오다가 종로에 내려 광화문 광장과 종로, 청계천을 보여주고 시청까지 걸어가는데 날이 무척 더웠다. 녀석에게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너무 사람이 많고 무례해요. 부딪히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마구 밀치고 들어오니까 화가 나요. 버스를 타는데도 뒤에 있는 사람이 마구 앞으로 들어와요. 사람 많은 데는 가기 싫어요.


정발산역에서 납골당에 가는 리무진을 타는데, 내 뒤에 있던 녀석이 내가 자리를 잡고 앉은 후에도 들어오지 않더니 맨 나중에야 올라온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아이를 밀치고 먼저 탔던 것이다.


여동생 집에서 이틀을 자고 같이 제주로 왔다. 여동생은 오랫만에 보는 조카가 이뻐 죽겠다는 듯이, 백화점에서 양복도 한 벌 사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정성을 쏟는다. 저녁을 먹는 샤브샤브 음식점에서 지 고모가 묻는 말에 녀석이 대답한다.


- 먼저 있던 회사에서는 지금도 오라고 해요. 한국에 간다고 했더니 갔다와서 연락하래요. 연봉도 7만불로 올려주고 승진도 시켜준대요. 그런데 전 싫어요. 한국회사에서 QA(Quality Assurance)는 총알받이 하는 곳이에요. 일이 터지기만 하면 무조건 QA 탓이라고 해요. 퇴근시간도 제 멋대로예요. 일주일에 한 번 물리치료 받으러 가야 하는데 그것도 눈치보면서 퇴근해야 돼요. 한국 대기업은 정말 싫어요.


- 한국 대학생들이 미국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반대로 미국 대학생들도 한국회사에서 인턴하고 싶어하구요. 무보수(No Payment)라도 하려고 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회사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회산데, 한국말과 영어를 완벽하게 해야 되거든요. 아무 때나 내가 연락해서 인터뷰를 하면 돼요. 아마 문제없을 거에요.


- 학교 졸업하고 처음으로 시간이 나서 왔어요. 인터뷰도 하고 한 달 동안 여행을 하려고 해요. 미국에서 저에게 신세진 한국 유학생들이 많아요. 걔들이 원수(?)를 갚겠대요. 부산에도 가보고, 대전, 전주에도 갈 거예요. 또 한국에서는 침이 유명하니까 아빠에게 가서 침도 맞을 거예요.


작년 5월 1일 뉴저지에서 운전하다 사고가 났다. 30대 후반의 아이 엄마가 모는 SUV가 녀석의 혼다 시빅을 들이 받은 것이다. SUV가 STOP사인에서 선다는 것이 액셀레이터를 밟았는지, 뒷부분을 받힌 시빅은 폐차처리되었고 녀석은 1년이 넘게 병원을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고 침도 맞았지만, 아직도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같이 제주에 내려와 5박 6일을 같이 지내다가 오늘 녀석은 친구들을 만나겠다며 서울로 갔다. 한라산 등반은 날이 좋지 않아 다음으로 미루고, 서귀포와 제주 이곳 저곳에 관광을 다니기도 하고, 지인들의 저녁초대에 참석하기도 했다. 월요일 부터 어제까지 한의원에 다니면서 침과 뜸, 부황으로 치료를 받았다. 싼 치료비와 기다림이 없는 신속한 서비스에 녀석은 감탄한다. 두 시간 가까운 치료에 5천 몇 백원 정도다.


녀석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처음으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같이 있을 때 녀석은 항상 바빴다. 새벽에 들어오기도 하고, 낮에는 늦게까지 잠을 자기도 했으니까.


한국을 떠나기 전에 다시 제주에 와서 일주일 같이 지내겠다고 한다. 녀석이 나를 조금씩 이해하는가 보다. 조금씩 내게 다가오는 녀석이 느껴진다.


<후기>

지난 일주일간 아들과 같이 지내느라고 카페활동은 접고 지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들려 새로 올라온 글들만 대충 훑어보기만 했습니다. 녀석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니,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시가 난다'고 하시던 돌아가신 모친을 생각나게 합니다. 집안이 썰렁하니까요.


26살이 되었으니 어른이 되었지만, 제게는 항상 아이같기만 합니다. 제가 주는 소주잔을 비우는 것이 두꺼비 파리 채듯 합니다. 제가 그 나이에 그랬듯 매사에 자신이 넘치고 정의감에 불타더군요.


옛날 무협지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고 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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