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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10년 전 9월 11일

(2011년 9월 11일)

 

내가 다니던 회사는 뉴저지 모리스 타운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모리스 타운은 뉴저지 중북부 모리스 카운티의 캐피탈로, 타운의 중심지에는 원형의 작은 공원이 있고 그 주변에는 고색창연한 오래 된 석조 건물인 성당과 교회, 우체국 등이 있고, '센츄리 21'이라는 백화점도 있다. 그리고 모리스 타운의 상징인 헤드쿼터 플라자가 있다.

 

멜 깁슨이 나오는 '패트리어트'라는 독립전쟁 영화를 보면, '워싱턴 장군은 뉴저지 모리스 타운에 주둔하고 계십니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바로 그 당시 제너럴 워싱턴이 주둔했던 사령부 자리라고 전해진다. 지금도 그 근방에는 독립군 수백명이 동사(凍死)했다는 기념비가 있으니, 역사가 짧은 미국으로서는 우리나라의 경주같은 유적지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중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자주 찾는 곳이 모리스 타운이다.

 

그 헤드쿼터 플라자의 이스트 타워 12층에 회사가 있었고, 내 사무실에는 동쪽으로 난 창문으로 날씨만 괜찮으면 저 멀리 능선을 넘어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두 타워가 뚜렷이 보였다.

 

그날도 날씨가 좋았고 여느날과 다름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장비들을 점검하고, 콜을 처리하는 등 바쁘게 일하는 중에, 누군가가 늦게 출근하면서 맨하튼에서 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하는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경비행기가 운전 부주의로 어느 건물에 부딛혔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곧이어,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가다가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는 뉴스에 되돌아왔다는 직원이 들어오면서 흥분된 어조로 떠들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사무실로 뛰어들어가 창밖을 보니 동쪽 저 멀리에 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 쪽에서 연기가 나고 있어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TV가 있는 유일한 방인 회의실로 갔더니 이미 몇 명의 직원들이 넋을 잃고 TV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이미 발개진 눈에 달기똥같은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남쪽 타워는 이미 무너져 내렸고, 북쪽 타워에는 상층부에서 시커먼 연기가 나고 있었으며, 화면은 비행기가 틀어 박히는 장면과 남쪽 타워가 무너지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잠시 후, 북쪽 타워까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다.

미국 친구들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어안이 벙벙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시간이 가고 있는 중에, 건물 관리실에서 사람이 와서 대피(Evacuate) 하라고 소리지르며 다녔다. 이웃 카운티인 서머셋 카운티에 여객기가 추락했다며, 근방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헤드쿼터 플라자도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객기가 떨어진 곳은 뉴저지의 서머셋 카운티가 아니라 펜실베니아의 서머셋 들판이었다.

 

덕분에 화요일임에도 일찍 퇴근 했지만, 지금도 미국의 젊은 친구들이 발개진 눈으로 흘리던 눈물과 흐느끼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지만, 자기들이 직접 당하지 않은 참극에도 자기 일 처럼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었다. 그리고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있던 자리에서는 한 달이 넘도록 시커먼 연기가 창문을 통해 뚜렷이 보였었다.

 

세상 일이란 게 때론 복잡하게 보이지만, 간단하게 정리하고자 하면 쉬워지기도 한다. 특히 지난 일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그 때 그 싯점에서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 미 건국 이후 처음으로 본토가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과 함께, 미국의 중심부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은 모든 것을 혼돈으로 몰아 넣었다. 경제는 침체 속에 빠져들었으나, 침체된 경제를 억지로 인위적인 방법으로 부양하기 위하여 건설경기와 부동산을 부축였다. 그 결과 몇 년 후 서브 프라임 모게지 사태가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왔고, 또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전쟁을 일으키는 빌미가 되었다.

 

이슬람 입장에서 보면, 때리는 시어미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이스라엘보다 사사건건 이스라엘을 편드는 미국이 더 미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화해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위해 균형감감을 유지하던 클린턴에 비해, 부시가 당선된 이후 이슬람에 강경 일변도였으니, 그들로서는 어떻게든 미국을 혼내주겠다는 생각을 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와 어른의 싸움 아니 레슬러와의 싸움과 같은 것이니 정면대결은 불가능 했고, 테러 이외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가 혼란한 틈을 타서, 몇몇 국가의 동의를 얻어 2천년 동안 살던 팔레스타인들을 쫓아내고 세운 이스라엘, 그리고 그들의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과의 갈등이 오사마 빈 라덴 한 사람을 죽였다고 사라질 수 있을까?
이슬람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고 외면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까?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에서 9/11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취재해서 보도한 적이 있었나?
수조 달러가 들어가는 테러와의 전쟁만으로 제2, 제3의 오사마 빈 라덴을 막을 수 있을까?

 

똑 같은 일이 이곳 제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천 가구 이상의 주민이 사는 곳에 백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사천리로 찬성을 얻어낸 다음 추진하고 있는 서귀포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그것이다. 세군데의 사전 후보지 중에서 주민들이 물러보여서 해군기지의 위치가 결정되었다고 KBS가 보도하고 있다. 투명한 절차와 공청회를 거쳐 결정해야 함에도 2주간 동안의 공시 - 그것도 자세한 설명도 없이 종이 한 장으로 - 만을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반대하고 있는데도,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정부는 안보라는 명분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안보는 정직과 원칙 위에서 성립한다.
아무리 국방력이 튼튼해도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다면 모래성과 같다.

월남의 패망이 증명하고 있고, 역사가 가르치고 있다.

 

작년에 국방부 조달관련 부정부패사건을 발견해 국방부에 고발한 김영수 해군 소령이 강제 전역되었다. 사관학교 출신의 정의감에 불탔던 젊은 장교가 부패한 장성들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힘에 입각한 범죄자는 군에 남고, 불의에 참지 못하는 힘없는 사람은 도태된 대표적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불법 시위자가 되고, 평화로웠던 마을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몇몇은 범죄자로 전락하고 있다.

 

정직과 원칙보다는 술수와 힘이 사회를 지배하고 국가를 지배하고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후기>

이곳 제주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2주간 너무나 좋은 가을 날씨를 보이더니, 일기예보에서 전하는 태풍 탓인가 봅니다.

 

17년 만에 추석을 고국에서 맞이합니다. 옛날에는 명절이 괴로웠습니다. 거래처에 줄 뇌물과 선물을 준비하느라 비자금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요.

 

미국에서는 까맣게 잊고 지냈었지만, 간단하게 약식으로 제사 지내고 저와 비슷한 분들과 어울려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