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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한국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2011년 8월 10일)

 

한국의 가정 대부분은 아이가 고2만 되면 입시체제로 들어간다고 한다. 부정을 탈까봐 부부관계도 피하고,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봐 발걸음 조차 조심한다고 하며, 입시생 위주로 모든 생활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말을 한국에서 입시생 아이들을 둔 친구들에게 들었던 적이 있다.


나는 다행히(?) 미국에 있던 때문에 그런 입시전쟁까지는 치루지는 않았지만, 여름방학때가 되면 아이들을 프라이빗 스쿨로 라이드를 주느라고 아침과 점심시간이 바빴던 기억은 있다. 또 아이비리그를 나온  이웃의 자제에게 과외를 시키느라 몇백 불의 지출을 하기도 했지만, 한국의 친구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아래는 아이들이 중학교 때 받아온 과제물이다. (기억에 의한 것으로 실제와는 다를 수 있슴)


* 과제로 주어진 책을 읽고 아래에서 6개 문제를 골라 작성할 것.


1. 당신이 이 책을 썼다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100단어 이상을 사용하여 작성할 것.

2. 당신이 다른 제목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3. 당신이 이 책의 결론을 다르게 쓴다면 어떻게 쓰겠는가? 그 이유는?

중략

9. 당신이 이 책의 출판사 사장으로 이 책을 신문에 광고하려고 한다. 광고를 작성하라.

10. 당신이 이 책을 서점에 전시하기 위한 포스터를 그려라.


이 과제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미국에 온 건 아니지만, 정말 잘한 일이라고 흐믓하게 생각했었다. 무조건 외우고 답해야 하는 한국의 교육과 비교가 되었던 것이다. 주어진 문제를 무조건 다 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있는 문제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이 아이가 어느 곳에 적성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수학문제도 푸는 과정이 맞았으면 답이 틀렸더라도 60% 이상의 점수가 주어졌다. 한국이라면 0점 처리되었을 거다. 아니 내가 아는 한국이라면 푸는 과정이 틀렸더라도 답만 맞으면 되었을 거였다. (이런 식의 평가가 결과만 좋을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이 정당화되는 사회 시스템과 정치문화를 만들었을까?)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어쩌다 찾아가 보면, 10명 안팍의 아이들이 교사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앉아 토론식 수업을 하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이곤 했다. 칠판 앞에는 한국에서 처럼 선생이 올라서는 교단도 없었고 교탁도 한쪽으로 치워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선생이라는 직업을 '교단에 선다'라고 표현하는데 아이들보더 높은 곳에 위치하게 하는 교단도 쓸데없는 구시대적 권위의 상징이 아닐지 모르겠다.)


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어떤 선생은 '차려, 선생님에게 경례!'하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에게 등을 보이고 칠판 가득히 판서를 한다. 우리는 이유도 모르고 열심히 적는다. 필기가 끝났는지 묻기가 무섭게 지우고 또 판서를 한다. 필기가 느리고 시력이 나쁜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나가는 선생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별로 말이 필요 없었다.


토요일 오후, 학교에 남아 공부하다가 남의 교실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덩치 큰 선생으로 부터 폭행에 가까운 무차별 폭력을 당했던 일도 있다. 선생에게 맞을 일을 한 적이 없는 범털(?)이었던 나로서는 평생 잊지 못하는 기억이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아주 싫어했다. 그들은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진 깡패같은 사람이었다. (물론 훌륭한 선생님도 많은데, 그 분들에게는 미안하다.)


1983년, 다니던 직장에서 미국연수를 보내주었다. 플로리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콜로라도 덴버에 들렸다. 고등학교 절친이었던 그 친구는 자기 엄마가 하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늦은 나이에 콜로라도 유니버시티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친구와 하루종일 붙어다니느라 수업도 같이 들었던 경험이 있다.


조교인지 젊어보이는 친구가 들어와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질문이 끝나자 다음 시간에 질문 받을 교재의 범위를 알려주고 난 후, 거기의 주요내용을 2~30분에 걸쳐 대략 설명하고는 다음 시간까지 공부해 오라고 하고는 나갔다.

즉, 공부는 각자가 알아서 하고 이해가 안 되고 모르는 게 있으면 다음 시간에 질문하라는 거였다.


내가 다니던 대학시절은 고등학교의 연장이었다. 자유롭게 술마시고 담배 피고 머리를 기를 수 있었던 것만 빼면. 100분의 강의시간 내내 판서만 하던 교수(같은 학교 선배)도 있었고, 공부 열심히 하던 친구들이 질문을 하면 진땀을 흘리며 쩔쩔 매던 교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수도 소수이긴 했지만 간혹 있긴 했다.


지금 가장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때 다 때려치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지 않은 것이다. 하긴 당시에는 회사에서 동료나 상사들에게 '장박사' 라는 별명까지 들어가며 잘 나가던 때이니 공부 하기가 싫었겠지만.

(지나간 과거라고 객기를 부려 하는 소리다.)


작금, 한국의 매스컴들이 한국에는 왜 스티브 잡스같은 사람이 한국에는 없느냐고 한다.

글쎄다, 내가 아는 교육시스템이 한국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없지 않을까?

미국에 유학가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 있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아니,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한국의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살아남지 못하겠지만.


<후기>

교육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미국과 한국의 교육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경험에 입각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좋아졌겠지요. 외국에서 공부한 교수들도 많고, 모든 여건이 많이 좋아졌으니까.


그러나 그 형태만 변했을 뿐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죽어라 공부하고 대학에 가서는 학문보다는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만 몰두합니다.

입시와 취업위주로만 학창시절을 보내다보니, 요즘 젊은이들은 문학과 예술같은 소양과는 거리가 먼듯 합니다.


소위 명문대 다닌다는 아이들에게 데미안이나 상록수 같은 고전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어보면, 제목과 저자만 알지 읽었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더군요.


그러나 이게 한국식이니 이 땅에 살려면 이런 방법대로 살아야 하는 것도 또한 현실입니다.

이것이 싫다면, 저처럼 아이들 외국에서 공부시켜 그곳에서 살게 만들어 준 다음, 돌아오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