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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Ed 이야기

(2011년 8월 11일)

 

2005년 무렵 내가 담당하는 부서(IT: Information Technology)에 직원을 하나 더 채용했는데 Hot Job Website에서 받은 이력서를 보고 두 친구를 선발하여 인터뷰와 간단한 시험을 치르기로 했었다. 내 밑에 있는 매니저가 몇 가지 테스트를 하고 난 후, 두 사람을 다 뽑았으면 할 정도로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내게 인터뷰를 하고 최종 선택을 하라고 넘겼다.


그렇게 뽑은 친구가 Edward Tomasula이었다. 뉴저지의 북서쪽에 있는 촌 동네인 뉴튼에 사는 그 아이는 바로 전 해인 200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내 아들과 생일만 3개월이 빠를 뿐 같은 나이여서 남 다른 호기심을 갖고 지켜 보았다.


삐쩍 마른 체격에 키만 껑충한 그 친구는 아주 선한 보이는 인상을 가졌다. 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밑에 동생만 5명이고 막내는 유치원에 다니는데, 장남인 자기가 벌어 부모님을 돕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력서에 의하면 고등학교 성적도 좋았고, 1년 동안 다닌 직업학교에서도 몇 천불의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주는 자격증도 취득한 상태였는데, 미국같은 선진국에서도 돈이 없어 대학에 못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당시 내게 다소 충격이었다. 또 그 아이에 비하면 내 아들은 철부지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 아이는 직원으로서 나무랄 데가 없었다. 아침 일찍 출근했고, 일처리는 확실했으며, 퇴근 후에도 매뉴얼을 공부하거나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느라고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기도 했다. 내가 준 일을 끝냈을 때는 반드시 처리결과를 이메일로 보고했고, 예상되는 문제점과 그 해결방법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일하는 것을 보면 19살 밖에 안 된 아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3개월의 수습기간(Probation)이 끝났을 때, 신입으로는 많은 편인 2만 8천불의 연봉을 제시했고 그 아이는 행복해 했다. 그 해 연말에는 1년이 되지 않는 신입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보너스도 특별히 배려했고, 해마다 급여를 최대로 올려주었다. 또 회사가 형편이 좋았던 당시에는 야간에 대학을 다니거나 인터넷 학교를 다니는 직원들에게 학비를 보조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었는데, 인터넷으로 대학공부를 하겠다는 그 아이를 위해 회사에 학비 추천을 해주기도 했다.


Ed를 알기 전까지, 사내에서 내가 아는 미국인들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단 두 가지 이상 일을 주면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느니, 먼저 준 일 때문에 바쁘니까 다른 사람에게 주면 안 되겠느냐는 등의 불만이 많았다. 별 것도 아닌 일 가지고도 'Too busy'를 입에 달고 사는 미국인들이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Ed는 그런 생각을 일축시켜준 친구이었다. 다소 어려운 일을 시켜도 어떡하든 마무리를 하고 나서 보고를 했고, 문제를 만나면 그 문제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방안도 함께 제시할 줄 아는 직원이었다. 항상 웃는 낯이었고, 'Thank you', 'Yes', 'Sure', 'Sir' 같은 긍정적 표현을 입에 달고 살며 예의마저 웬만한 아시안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지켰다.


그 아이가 하루는 내 방에 찾아왔다. 다른 부서에서 5만불을 줄 테니 자기 부서로 오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3만 8천불을 받고 있었다. 고등학교 출신의 2년 경력자를 5만불로 꼬득여서 데려가겠다는 심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 불만 없이 잘 지내고 있던 그 아이는 가난때문에 돈에는 약했고, 나로서는 다른 직원들도 배려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줄 수는 없었다. VP(Vice President)에게 쫓아가서 항의도 하고 했지만, 그 이상했던 회사는 내 말이 먹히지 않았다. (결국 뉴저지의 그 회사는 작년 말 다른 회사에 의해 인수되었다. 팔린 것만도 다행이라며 경영진은 희희낙낙했다고 들었다. 그들은 수백만에서 수천만불까지 챙겼다.)


에드워드 토마슐라는 그 회사에 다니면서 경력도 쌓았고, 자신의 능력으로 고졸로서는 많은 급여도 받았으며, 또 비록 통신과 인터넷으로지만 대학도 마쳐 학위도 받았다. 그는 지금은 그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로 갔다고 들었다. 얼마전 그의 페이스북에서 학사모를 쓰고 여자친구와 함께 환하게 웃는 그의 사진을 보았다. 나는 그를 그 회사의 최고 수혜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인종을 떠나 똑똑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어떤 곳에 있던지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가난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기회의 땅(Land of Opportunity)이라 불리는 것 아니던가?


<후기>

자식농사라는 주제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내용입니다만, 제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미국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가끔 아이들에게 잘못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아이들이 좀 더 뛰어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는 거지요.

그럴 때마나 내가 데리고 있던 Ed를 생각합니다. 너희들은 그 아이보다는 최소한 더 좋은 환경이었다고 자위합니다.


그 아이의 환했던 웃음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 친구들이 미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어가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