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은 보통 30분은 걸리는데 선생님은 평소 치아관리를 잘하시는지 치석이 별로 없어서 10분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양치질은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 하는 스케일링은 보험이 되니까, 치석이 없더라도 꾸준히 하시는 게 좋습니다."
어제 치과에 들려 스케일링을 받던 중에 간호사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입 주위에 구멍 난 천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입을 최대한 벌린 채, 거북하고 민망한 자세로 눕다시피 앉아있는 내게, 어떤 대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듣고만 있었다.간호사는 눕힌 의자를 일으켜 세우며 입가심을 하라고 했다. 입안을 헹궈 뱉어낸 물에는 작은 핏덩이와 핏물이 보였다. 그제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스케일링 할 때마다 듣는 말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이를 참 잘 닦으시는 것 같아요." 그녀는 말하면서 의자를 다시 눕히고는 내게 작은 치과용 거울을 들게 하고, 자신은 큰 손거울을 내 얼굴 위로 들었다.
"아주 작은 충치가 하나 있고, 오래전에 한 것 같은데 아말감이 떨어져 나간 게 이곳에 두 군데, 그리고 여기 때운 곳에서도 닳아서 치료할 곳이 두 군데 있어요. 이렇게 다섯 곳은 치료하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여기 씌운 곳 있잖아요? 이곳도 닳아서 이 아래 뿌리가 드러났어요. 보통 10년 마다 다시 씌워져야 하는데, 10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아직은 괜찮으니까 그냥 두고 많이 불편해지면 다시 해야 할 거예요."
나는 속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맞아, 10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 아마 2007년이었을 거야. 뉴저지에 살 때 4백 불 가까이 주고 했던 기억이 어슴푸레 떠올랐다. 그때는 치과 의료보험이 있었어. 의료보험을 적용하고도 금으로 하면 그렇게 한다고 했었지.
간호사에게 조언대로 하겠다고 하자,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치료와 안 되는 치료가 있는데 어떤 것을 할 것인지를 물었고, 나는 그 차이가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고 곧바로 답했다. "은퇴한 사람이라 의료보험이 되는 치료를 받겠어요." 스케일링을 받기 전에 의사에게 검진을 받았었다. 아주 가끔, 아주 약한 통증이 씌운 어금니에서 느껴지곤 했다. 무시해도 좋을 정도지만,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시리거나 하지도 않았다. 두드려 보기도 하고 흔들어 보기도 하던 의사는 나중에 통증이 심해지면 임플란트 하는 게 좋겠다는 소견을 주었다. 가장 불편한 것은 이 사이에 음식 찌꺼기가 끼는 것인데,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다는 게 50대로 보이는 의사의 의견이었다.
어렸을 때 치아가 부실했던 것은 이를 잘 닦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치약을 살 형편이 안 되었던지 주로 소금을 이용했고 아침에만 양치질을 했었는데, 철이 없어서 그랬는지 굵은 소금으로 이를 닦는 게 무척 싫었었다. 칫솔도 솔이 거의 닳아 없어질 때까지 사용했으니 치아 관리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가 썩어서 아파 죽게 되었어도 치과에 가지 못했고, 야매로 충치를 치료한다며 돌아다니는 돌팔이에게 몇 백 원 쥐어주고 뽑았었다.
어릴 때는 사과를 깨물면 피가 묻어났고 여름에 찬 것을 마시면 이가 깨지는 듯 몹시 시렸다. 최악의 경우는 군대에서 발생했다. 논산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 대기 중에 받았던 신체검사에서 충치 때문에 바로 자대배치를 받지 못하고, 충치를 빼느라 3~4일 지체하는 바람에 서울 출신이라는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는, 전남 광주 출신들과 같이 최전방 배치를 받았던 것이다. 소위 '빽'이 좋았던 서울 병력이 후방이나 카츄사 등 좋은 곳으로 배치됐다는 것은 훨씬 후에 알았다.
그런 경험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폭력에 가깝게 나타났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이를 닦도록 강제했다. 어떤 경우에도 이를 닦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이를 닦은 아이들을 검사해서 다시 양치질을 시키기까지 했으니 거의 병적이었다. 그런 덕분인지는 몰라도, 세 아이를 키우면서 치아 때문에 문제가 된 기억은 없다. 사랑니를 발치하고 교정한 것이 다였다. 아이들은 졸리면 버릇처럼 칫솔부터 찾았다.
간호사에게 칭찬을 받았던 양치질도 특별한 것은 없다. 침대에 들기 전에 반드시 양치질을 한다는 것뿐이다. 남들처럼 하루에 세 번 식사 후마다 닦지도 않는다. 하루에 한두 번 - 주로 한 번 자기 전에 정성껏 시간을 들여 양치질을 한다. 칫솔질은 가로보다는 세로 위주로 하고 입천장뿐만 아니라 혀까지 훑는다. 자주 하지 않는 이유는 귀찮은 것도 있지만, 잇몸이 깎여 이뿌리가 드러난다는 말을 들어서이다. 맞는 이론인지는 모르지만 스케일링도 자주하면 안 좋다는 말도 들었다. 미국에 살 때 치과보험이 있어서 무료였어도 거의 스케일링을 하지 않고 지냈던 까닭이다.
이를 오복의 하나라고 했던가. 특히 나이가 들어서는 더 그렇다. 주변에 이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을 보면 치아관리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다. 지금까지는 잘 버텨왔다. 마른 오징어 같은 질긴 음식이나 생 홍당무 같이 딱딱한 음식도 씹어 삼키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앞으로 자신이 없기 때문에, 6개월마다 검진을 받고 1년마다 스케일링을 꾸준히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검진 시에 발견되는 작은 충치나 깎인 부분의 치료는 간단하다.
이날 스케일링을 포함 진료비로 지불한 금액은 13,000원이었고, 치료를 위한 예약은 다음 주 월요일로 정했다.
- 모든 분들의 치아 건강을 위해, 제주에서 12월 29일 아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