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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동창회

3~40년 정도 된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과 친구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ROTC들은 군대에 갔고, 군대에 미리 갔던 친구들은 돌아와 복학을 하기도 했고, 대학원을 가거나 취직을 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유급을 해서 아직도 학교에 남아있던 친구들도 있었다.

 

1970년대 전교생이 등록금 절반 정도의 장학금 혜택을 받는 국립특수대학으로, 등록금이 다른 국립대학의 절반도 안 되었다. 다섯 개 학과에 한 학년이 180명 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의 단과 대학이었지만, 저렴한 학비 때문에 가난한 처지의 학생들이 많았고, 평균 예비고사 성적만은 서울대 보다 높았다. 유급률이 얼마나 높았던지, 3학년이 되었을 때는 40명 동기 중에 19명만 남았었다.

 

겨우 유급을 면하고 졸업한 나는 멍청했던 탓에 육군 일반병으로 군대를 갔고 -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지만, 제대하고 복직을 했으니까 1980년 초의 어느날이었던 것 같다. 출근하려고 버스정류장에 서있다가 과대표를 지냈던 동창을 우연히 만났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는 동기동창회 모임을 조직했다. 그 친구가 회장이 되고 내가 총무가 되어, 잊었던 친구들을 하나 둘씩 찾았다.

 

처음에는 그 모임은 회비를 걷어 친구들 결혼식에 화환을 보내고, 부조금을 전달했으며, 부모님 회갑연이나 아이들 돌을 기념하거나 집들이를 하며 명맥을 이어갔다. 지금과 같은 연말에는 망년회도 가졌고, 학창시절의 추억과 젊음의 기개를 안주삼아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졸업 후 한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 그러나 나이가 들어 별 볼 일 없는 처지(?)가 되자 대부분 나타났다.

 

지금은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간단하게 연락할 수 있었지만, 옛날에는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사용했으므로 총무가 할 일이 적지 않았다. 최근 두 개의 메일을 친구들로부터 받았다.

 

 

- 첫 번 째 이메일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내렸네요. 금년들어 쌓인 눈을 처음 봅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빙판길에 조심들 하시길 바랍니다.

 

어제 송년모임에 11명이 양마을에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송년모임을 가졌습니다.

양마을은 이전보다 음식 맛도 좋아지고, 손님이 많아져서, 7시도 안돼서 자리가 꽉 차서, 모임이 끝날때까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업이 잘 되고 있습니다.

김 ○○ 선배 성공했어요.  더욱 번창하시길....

 

어제 모임은 서 XX 사장이 스폰을 하여 양마을에서 양껏 맛있는 만찬을 한 후, 전 회장이 입가심으로 호프 한잔 했습니다.  서 사장, 전 회장, 두 분 감사합니다. 

 

 동기소식 NEWS

 

1. 신OO의 여식이 이번에 카이스트 박사학위를 받고, △△ 화학 과장으로 근무 예정입니다.

 

2. 서 사장은 아들과 딸 모두 카이스트 졸업 후, 작년에 아들이 경희대 의전에 입학하였고, 금년에는 딸이 카톨릭대 의전에 입학하였습니다. 서 사장 취임에 이어 집안에 겹경사네요.

 

3. 이XX군이 12월에 할아버지가 된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따님께서 순산하시길....

    할아버지 서열:  1. 엄XX   2. 김XX   3. 복XX   4. 이XX

    퀴즈) 자녀 결혼순서는 최XX, 강OO, 강□□, 이△△, 강○○, 장듀크(본인) 인데, 다음번 할배는 누가 될까요?

 

4. 복XX 손자 돌이 12월에 있었습니다.   무럭 무럭 잘 크길....

    복상무 왈 "손자 돌 잔치는  내가 차려줬는데, 손자는 식구중에 할배를 제일 찬밥 취급 한다나?"

 

5. 김XX군이 12월 말경 입국예정입니다. 김군이 입국하면, 년초에 번개모임 통보하겠습니다.

 

6. 이XX 교수 여식이 12/22 결혼합니다.  많이 축하해 주세요.

 

총  무      유  O O

 

 

- 두 번 째 이메일

 

동기 회장을 맡아 수고가 많다. 내가 여러 모임에 참석을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다.

딸 결혼식이 있어 청첩이라기 보다는 소식으로 동기들에게 전해 주기 바란다.

우리딸은 지금 검사로 재직하고 있는데 이번달 22일에 동기 검사와 결혼식을 갖는다.

불쑥 메세지만 하나 던져주는것 같아 미안하다. 앞으로 동기 모임에 참석하도록 노력하겠다.

 

이▽▽

 

 

친구들이 자신들의 일을 소재 삼아 이런 글을 쓰는 것을 알면 나를 나무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관심이 많은 내게는 좋은 소재라 친구들의 있을지 모르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글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서사장이라는 친구는 유급을 경험한 친구다. 그러나 내가 실패했던 고시에 합격하여 고위공직자로 퇴직한 후, 정부산하기관에 사장으로 취임했다.

 

할아버지가 된 복상무는 제일 친했던 친구이었으나, 이민자가 되고난 후에는 소원해져서 서로 연락하지도 않고 지내게 되었다. 앞으로도 내가 먼저 연락할 일은 없을 듯하다. '아웃오브 사이트, 아웃오브 마인드'로 인해 멀어진 여러 친구들 중의 하나다.

 

검사 딸이 결혼한다는 이교수는 대학시절 유신반대운동에 앞장 섰던 친구다. 워낙 비밀리에 움직여 체포된 적이 없어 친구가 고백할 때 까지는 알지 못했었다. 4학년 말 학교 앞에서 막걸리 한 말을 둘이 마셨던 적이 있었다. 유신반대 삐라를 등사해서 뿌리고 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3학년 말부터 두 세 시간만 자며 코피가 쏟아지도록 공부했다고 했었다. 결국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한 후, 국책 연구소에서 일했고 지금은 모교에서 교수로 있다.

 

그 친구의 청첩장을 이메일로 보고, 서초동 대검찰청에 예식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나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고, 부조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내 처지가 그랬던 것 처럼, 축하하는 마음만 보낼 것이다.

 

할아버지 서열 1위인 엄XX는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다. 굴지의 대기업 임원시절, 출장간 일본 동경의 호텔에서 아침에 주검으로 발견되었었다. 소위 과로사였던 것이다. 그렇게 자랑하던 서울대 법대 다니던 아들이 졸업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 아들이 돌 때는 친구가 해외에 있어, 금반지를 들고 친구가 없는 집에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40명의 동기들 중에 나처럼 일찌감치 삼식(三食)이 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고, 소위 출세를 한 친구도, 크게 돈을 번 친구도, 이미 고인이 된 친구도 있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지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는 거다. 거기엔 실패한 인생도, 성공한 인생도 없다.

 

그저 각자에게 주어진 삶만 있을 뿐이다.

 

<후기>

인생이 꼬여 가시밭길에서 고생을 한 벗도 있고, 학창시절에는 별로였지만 졸업 후에는 탄탄대로에서 잘 나간 친구도 있습니다. 단지 차이는, 누구는 좋은 시간에 알맞은 장소(Right time in right place) 있었다는 것이고 또 누구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30대 중반 쯤 되었을 때 (세속적으로)가장 출세한 친구들은, 재수를 하고 입학해서 유급을 경험했던 친구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커먼 세단을 타고, 운전수가 열어주는 문으로 동창회에 나타나던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학창시절 우리끼리 하던 농담이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 다니면서 장학금을 받는 것은 부모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만큼 학비가 쌌습니다. 우리는 수업료가 면제되는 학교에 다녔으니까.

 

그런데도 장학금을 타서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친구가 있었고, 장학금을 받은 불효자는 학교 근처의 음식점에서 학우들에게 막걸리를 사곤 했습니다. 그런데 장학금으로 막걸리를 샀던 친구들이 나중에 잘 안풀려 고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행복이나 성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이민생활도 마찬가지겠지요. 잘 되었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고국을 떠나 힘들었던 모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내 동기들에게 보내고 싶은 같은 정도의 갈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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