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퇴이야기

병원과 친해지다

병원에 가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살 때는 병원에 갈 일이 별로 없었다. 30년 전 부친 회갑 때,  - 옛날에는 환갑잔치도 했고, 회사에 부모회갑을 보고하면 얼마간의 축하금도 나왔다. 하하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 과식을 했는지 잔치 다음날 배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맹장염 같다며 수술한 것과 알러지 비염으로 코가 막힌 탓에 코로 숨쉬기가 어려울 때 갔던 게 다다.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이 있었어도, 웬만하면 참고 견뎠지 병원에 가기가 꺼려졌는데, 그 이유는 집 가까운 닥터오피스는 영어 때문에 위축되었고, 한인이 사는 곳까지 가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했고 한 시간을 운전해서 가서도 한참씩 기다려서야 의사를 만나는 게 너무 귀찮았다.

그러나 50대에 들어서면서 병원에 갈 일이 많아졌다. 눈이 뻑뻑하고 아파서 안과를 찾았더니, '안구 건조증'이라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진단도 받았었고, 봄가을 찾아오는 알러지로 비염이 심해질 때는 예전과는 다르게 간지러운 눈이 참기 힘들어 병원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아는 게 병이라고, 신문과 방송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1년에 한번쯤은 정기진단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또 2~3년에 한번씩은 위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도 받아봐야 될 것 같았다. 아마 그것보다는 있는 보험을 써먹지 않으면 웬지 억울할 것 같은 손해보기 싫은 마음씨가 한몫했을 것 같기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정말 병원과 친해진 삶을 살고 있다. 5분,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친절한 간호원과 의사, 미국과 비교하면 전혀 없다시피한 기다림과 거기다가 저렴한 진료비와 약값까지, 공연히 괴로움을 참고 견딜 필요가 없다.

지난 9월 말, 갑자기 날씨가 차졌다는 것을 잊고, 평소 습관대로 찬물로 샤워했다가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열도 없고 아픈 곳도 없는데, 기침이 심했다. 특히 저녁과 새벽에 심해져서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괴로움이 컸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기침 감기 정도로 병원을 찾을 위인(?)이 아닌 것이다. 기침아, 네가 이기는지 내가 이기는지 보자며, 미국에서 사온 나이퀼을 먹고 전기장판을 뜨끈하게 켜놓고는 땀흘리며 자면서 쉬는 것으로 대항했다.

한달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었다. 좀 나아지다가도 다시 심해지기를 반복했다. 집사람이 '미련한 곰탱이'라며 놀려댔다. 결국 집사람과 나들이 갔다가 눈에 뜨이는 의원에 들렸다. 의사가 청진기를 대보고 십초 정도 목구멍을 들여다보더니 한마디 한다. '기관지염'이라고. 주사 한대 맞고 약 3일치를 지어왔는데, 기침은 그날 저녁부터 바로 멈췄다. 다음날에도 언제 기침이 있었냐는 듯 말짱했다.

한달이 넘도록 고생을 한 것을 생각하니, 미련했던 고집불통의 내 모습에 부화가 났고, 그날 저녁 남은 약봉지는 바로 쓰레기 통에 쳐넣는 것으로 부화를 달랬다. 그런데, 2~3일이 지나자 다시 기침이 나왔다. 에고 놀래라! 3일치 약을 하루만 먹고 버린 것이 후회로 찾아왔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다시 같은 의원을 찾아갔고 이번에는 저항하지 않고, 말 잘 듣는 아이처럼 3일치 약을 다 먹었다. 기관지염이 완치되었슴은 물론이다. 한 번 진료비와 약값이 만원 가량, 두 번이니 2만원 들었다. 두번째는 재진이라고 다소나마 더 쌌던 것 같다.


지난달이었던 것 같다. TV의 어느 건강프로에서 백내장, 녹내장 등 눈에 관한 건강다큐를 방영했다. 그것을 본 게 또 탈이었다. 나도 백내장 검사를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와이프 돋보기 때문에 안경점에 들렸다가 윗층에 있는 안과를 찾아갔다. 눈에 기계를 갖다대고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 오른쪽 시력이 너무 떨어진다며, 정밀검사를 권했다. 30분 기다려 양쪽 눈 X-Ray를 찍고, 다시 의사를 만나 한마디 들었다. '아무 이상이 없다.'이었다. 다만, 눈이 뻑뻑하다고 했더니 '인공눈물'을 처방해주었다. 이날 X-Ray 검사료 포함 진료비 22,000원과 눈에 넣는 안약 세 종류에 4천원 들었다.


어제는 오늘 제주를 떠나는 '주노아톰'님을 서귀포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갔고, 아톰님은 운전과 점심과 찻집 등 풀코스로 서브를 했다. 송별회(?)로 내가 대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계도보여행대회' 언어봉사에서 받은 이십만원을 써야 한다는 말에 말도 꺼내보지 못했다. 말과 생각이 이미 통하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걸으면서 혹은 먹고 마시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에 열중했다.


점심으로 해물탕과 소주 한 병을 곁들었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거 집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이드 디쉬로 나온 접시에 '무'처럼 생긴 것이 두쪽 들어있었는데, 입안에 넣고 깨물자 혀가 약간 아리는 듯한 느낌이 왔다. 이게 알러지 유발 물질이었던 것 모양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기침과 함께 양쪽 코가 꽉 막히며 콧물이 줄줄 흘렀다. 눈도 정신없이 가려웠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고,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호젓하고 운치있는 찻집에 들려 차를 마시는 것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현관을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집사람이 기겁을 하며 놀란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눈두덩이가 부어 눈이 거의 감겨있었고 볼, 그리고 입술까지 퉁퉁 부어 내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온 몸이 가렵기 시작하고 있었다. 거웃이 있는 부분부터 따가운 듯 가려움이 왔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알러지 증상이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병원을 가더라도 응급실로 가야할 것 같아 망설여지는 사이에, 집사람이 이웃에게 전화를 걸어보더니 24시간 여는 병원이 있다고 알려준다. 15분 걸려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가 저녁 먹으러 일어섰다가 나를 보고 진료실로 되돌아 갔고, 친절하기도 한 젊은 의사는 주사 한 대와 약 3일치를 처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도 뚤리고 가려움도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부기도 다 빠졌다. 진료비 4천원, 약값 2천원 들었다. 이러니 병원과 친해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어제 너무 재밌는 시간을 가져 신이 나를 질투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것도 즐거웠다.


<후기>

주노아톰님! 

4개월만에 해후하는 사모님과 즐거운 시간 가지시고 3일 후 맞이하는 회갑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걷다가 본 한라산의 모습이 웅장하다.


▼ 제주에서는 웬만하면 어디서든 바다가 보인다.


▼ 내가 자주 걷는 마을길


▼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에 있는 주역방. 이곳에 관한 글도 한 번 써야겠다.


▼  상처가 나서 무더기로 버려진 감귤. 먹을 수 있는 것일 텐데 아깝다.


▼ 걷다가 쳐다본 하늘의 모습이 신비롭다.


▼ 어떤 도그 자식이 계곡에 구형 TV를 버렸다. 아마 차를 타고 가다가 던져버린 듯.



'은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과에서  (0) 2016.12.29
종합건강검진  (0) 2016.03.14
동창회  (0) 2013.12.13
인터넷에서 가져온 역이민 관련 글  (0) 2013.11.22
장수(長壽)와 건강  (0) 201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