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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머리 깎기

지금은 얼마인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살 때는 이발비로 보통 20불을 지불했다. 팁을 포함하면 23불이나 25불을 주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가격이 비싸다고 여겼다. 머리를 감겨주는 것도 아니고 베큠으로 몸에 묻은 머리카락만 제거해주는데도 한국에 비해 몇 배나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회사 내에 있는 구내이발관을 이용하면 5~6천원으로 머리를 감는 것은 물론 면도까지 말끔하게 할 수 있었다.


주로 한아름에 쇼핑하러 가면서 같은 건물에 있는 이발소를 이용했는데 처음에는 17불이었던 이발비가 20불로 요금이 오른 후에는 싼 이발소를 찾았다. 내가 찾은 15불 짜리 이발소 이름이 'Tony's barber'였다. 가구나 의자가 낡고 가운이 얼룩졌어도 이발하는 솜씨만큼은 불만이 없었다. 나중에 토니라는 이름의 이발소가 많은 것이 의아했으나 지나쳤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풀렸다. 대통령 전속 미용사가 'Toni & Guys'라는 미용실 원장 정씨라는 거다. 'Toni & Guys'는 영국의 유명한 미용실 브랜드이며, 영국에 유학 갔던 정씨가 독점 사용권을 획득해서 국내로 들여왔고 전국에 30여 체인점을 거느리고 있다고 뉴스에서 전한다. 우리는 보통 토니(Tony)와 폴(Paul)이라고 하면 남자 이름이라고 알고 있다. 허나 여기에 스펠 하나만 바꾸거나 추가하면 여자 이름이 되는데 발음은 같다. 'Toni'와 'Paule'이 그것이다. 이태리식 이름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맞는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Toni & Guys'이라는 이름으로 봐서 남녀가 함께 이용하는 미용실임을 알 수 있다.유럽문화에 생소한 아시안 이민자로서 'Toni & Guys'가 얼마나 유명한 브랜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학까지 다녀온 정씨는 예약 손님만 받는 우리나라 최고 미용사 가운데 하나로 특히 숏컷의 전문가라고 한다. 정씨에게 머리 컷하는 요금은 남성의 경우도 12만원이라고 한다. 나 같은 구닥다리 촌놈은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학에 미용을 전공하는 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비웃었던 적이 있는데 크게 잘못했다. 유학까지 필요한 일인지 몰랐기에 저지른 무지의 소치였다. 최순실로부터 인정받아 대통령의 올린머리를 담당했고, 대통령은 머리를 하지 않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정씨의 남편은 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뻔했다는 말도 있고 정씨는 이병철 씨의 외손자이자 배우 고현정의 전남편인 신세계 정용진 회장 집 맞은편에 살 정도라고 하니, 미용이나 이발을 허드레 일로 생각했던 나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


3년 전 영국 왕실의 초청으로 버킹검 궁을 방문했던 박 대통령은 5명으로 제한된 궁내 숙박 인사에 정씨 자매를 포함시키는 바람에 외교전문가는 거기에 낄 수 없었다. 정씨는 머리, 정씨 동생은 화장 담당이었다. 당시 국내의 언론은 박 대통령이 영국 왕실의 황금마차를 타는 등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것만 요란하게 보도했다.


▼ 박대통령의 버킹검 체류를 수행한 다섯 명은 모두 몸종들 뿐이었다. 여권번호 앞자리 'G'는 Government의 뜻으로 관용여권을 뜻하고 'M'은 복수(Multiple)여권으로 일반인이 소지하는 민간인을 의미한다.


미국 LA에서 후배에게 에어컨 일을 배우며 헬퍼를 할 때, 하루는 후배가 자신의 머리를 자랑했던 적이 있다. 1970년대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분에게 이발을 했다는 거다. 바리깡을 안 쓰고 가위로만 컷했다며 35불 주었다는 짧은 머리는 내 눈에는 뭐가 다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는 만져보면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나는 한국 아줌마가 하는 미장원에서 10불도 안 주고 컷할 때였다. 아무리 느낌이 좋아도 매일 자라는 머리를 35불 주고는 절대 안 깎겠다고 했던 기억이, 박 대통령의 7시간에 얽힌 뉴스를 보며 떠올라 웃음이 난다.


하루를 기분 좋게 지내려면 이발을 하라는 말이 있었다. 단정하게 머리를 깎고 말끔하게 면도를 하면, 확실히 개운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전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한국에서나 가능했던 말이다. 제주에서는 이발소 찾기가 힘들다. 대신 미용실은 골목마다 있다. 남자들도 웬만하며 미장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발소는 사우나에나 있고 어쩌다 찾은 이발소는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나이든 사람뿐이다. 그래도 굳이 나는 면도를 해주는 이발소를 찾는다. 만3천원이라는 작은 돈으로 어떻게 그만한 호사를 누리겠는가.


호사를 부리러 나가고 싶지만 바람 부는 제주의 험한 겨울 날씨가 주저하게 만든다.


<후기>

우리가 어릴 때는 여자 중학생들도 이발소에서 머리를 했었는데 말 그대로 상전벽해입니다. 앞으로 이발소는 없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젊은 사람이 하는 이발소는 보지 못했으니까. 이발소들이 살아남기 위해 퇴폐적으로 운영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미용실과의 싸움에서 경쟁력을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지난번 서울에서 어느 이발소를 들렸는데 무슨 체인점인지는 몰라도 새로운 시스템이었습니다. 5분 정도 걸려 머리만 컷해주고, 머리 감는 것과 면도 등 나머지는 셀프 서비스였습니다. 가격은 무척 싸긴 하던데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도대체 뭔 일을 했길래 7시간에 대해 그토록 악착같이 밝히지 않는 걸까요? 어제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추궁했는데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국력의 낭비인지 한심합니다. 그럴수록 궁금증만 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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