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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안전운전과 자동주행

(이 글은 '졸음운전'과 '끔찍했던 운전경험'에 이은 운전 시리즈 마지막 편입니다.)


1983년 초, 연수교육을 받았던 미국 플로리다에서 운전면허를 땄으니, 어느덧 33년의 경력을 가진 셈이다. 난생 처음 두어 달 운전을 하면서 자신이 생겼을 때 음주운전 사고를 냈던 기억도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접근이 어려워서 호기심이 가득하던 ‘Deep Throat’이라는 유명(하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지만)한 포르노 영화를 동료들과 보러  ‘Cocoa Beach’에 있는 트리플 X 레잇 극장에 가던 길이었다. - 사고가 날만 했다.


한국에서는 1987년 포니Ⅱ 중고차를 사촌형님에게 구입하면서 운전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오토매틱 자동차로 딴 면허증을 한국에서 바꾸었으니, 기어가 달린 수동차를 처음에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운전을 끝내고 차에서 내릴 때는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등을 좌석 등받이에 붙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앞을 주시하느라 사이드 미러를 볼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장소가 바뀌면 항상 운전에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을 보면 운전은 기술이 아니라 길 실력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처음 서울에서 하는 운전도 그랬고, 미국 뉴저지에서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때도 떨렸다. 다시 제주에 와서도 처음에는 비좁은 골목과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량들 사이에서 과연 이곳에서 운전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욕도 참 많이 했다.  “도그 새끼들, 어쩌자고 저렇게 운전하는 거야!”, “ㅆㅍ, 운전을 발로 배웠나?” 그러나 몇 년 살다보니, 나도 그들 도그와 별 차이 없이 변하고 말았다. 비슷하게 난폭해지고, 적당히 위반하며 다닌다. 욕할 필요도 없고, 욕먹어도 ‘그러는 너만 손해다!’하는 마음으로 무시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뉴저지 오렌지 성당 주임신부이었던 ‘박창득 몬시뇰’님에게 들었던 강론을 기억에서 꺼내본다.


- 신부들은 욕 안 할 것 같지요. 우리도 핸들을 잡고 거리에 나가면 여러분과 똑같이 쌍스런 욕을 합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사람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곧 후회하고 반성합니다. 신부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그런 마음이 드는 겁니다. 여러분도 항상 하느님께 신앙고백을 한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양이 깊은 몬시뇰도 이럴진대, 평범한 사람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모든 운전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나보다 빨리 가는 놈은 모두 미친놈이고, 나보다 늦게 가는 놈은 전부 멍청한 놈이다!” 

운전하다 보면 빨리 가려고 공간도 충분하지 않은데 기어이 앞으로 끼어드는 놈도 밉지만, 빨리 가지도 않으면서 1차선 도로에서 얼쩡거리는 놈은 더 얄밉다.


빨리 가서 할 일도 없는데도 아슬아슬하게 신호등에 걸리면 짜증이 나고, 마지막으로 겨우 건넌다는 지 통과 중에 신호가 바뀌면 짜릿한 스릴과 통쾌함을 느끼는 못된 심보도 핸들을 잡은 탓일 거다. 인간이라면 갖는 얄팍하고 치사한 감정은 노름할 때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운전능력은 여유다. 경험이 쌓여 여유가 생기면서 앞차에만 주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뒤차나 옆차, 심지어 옆의 옆을 지나는 차나 앞의 앞차까지도 의식한다. 오래전 출근길에 사고를 모면한 적이 있다. 뉴저지 22번 도로에서 287 고속도로로 들어서 1차선 쪽으로 차선을 변경해 가는데 백미러를 보니 어떤 차가 미친 듯이 쫓아와서 심하게 바짝 테일링했다. 불안해진 나는 차선을 바꿨고, 그 차는 쏜살같이 앞질러 나갔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1차선에서 사고 난 차량을 보았고, 뒤에서 받은 차는 미친 듯이 달리던 그 차였다. 후방주시를 게을리 했다면 빅팀은 내가 될 수도 있었다. 미국에서 운전이 위험한 것은, 드러그를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지난 달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에서 졸음운전을 한 고속버스 추돌로 사망한 21살의 여자아이들도 충분한 운전경험이 있었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안타까운 마음 때문일 것이다.


운전 실력은 ‘길’ 실력이라고 하듯이, 모르는 길에서는 운전 실력이 뛰어나도 쓸모가 별로 없다. 경험이 아무리 많더라도 처음 맨해튼에서 운전하면서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원웨이를 모르면 그렇다. 그런데 그런 것도 IT 기술의 발달로 GPS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해결되었다. 15년 전만 해도 미국을 여행하려면 ‘아틀라스’라는 커다란 지도책이 필수였다. 아니면 ‘AAA’ 로컬 오피스에 들려 여행할 곳의 지도부터 챙겨야 했다.


GPS가 등장하면서 ‘지도를 보는 남자의 능력’도 - 여성들은 이상하게 지도를 볼 줄 모른다 - 필요 없게 되었으며 길 실력(?)도 별 볼 일 없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자동주행 차의 등장이 현실로 다가왔다. 보다 정밀해진 GPS 기술과 정교한 센서 기술이 결합된 결과다. 앞으로 2~30년 후에는 운전으로 먹고사는 일은 없어지는 대신, 더 안전하고 더 싸게 자동주행을 실현하는 기술로 먹고사는 직업이 생길 것이다.


나이가 들면 운동신경이나 반사 신경도 그만큼 둔해지고 사고도 잦아진다. 노인들의 천국, 플로리다를 운전하다 보면, 사고가 발생한 장소에 노인들만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오래 전 뉴저지에 살 때의 일이다. ‘세븐레이크’에 가려면 287 노스로 가다가 87번 고속도로와 합쳐진 후에 17번을 만나면 나가야 한다.


17번을 만나 Exit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차 한 대가 내 앞으로 돌진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사고를 피할 수 있었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따지려고 쫓아갔다. 그 차도 놀랐는지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있었다. 70이 넘어 보이는 노인 부부는 내게 ‘We’re very sorry.’를 반복했다. 노인의 설명에 의하면, 우측레인에서 하나 좌측레인으로 가다가 갑자기 ‘17번 Exit’를 발견하고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두 차선을 한 번에 건너온 것이었다.


이제 자동주행이 실현되어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이나 여수 마래터널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80살이 넘어도 자동주행으로 사고 없이 운전할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될 지도 모른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보려면, 건강에 애쓸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50년 후의 후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 조상들은 자동차를 직접 운전했다더라.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도 그렇게 많았다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 항상 안전운전 하시기 바라며, 제주에서 2016년 8월 23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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