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탄핵 무효표와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

대부분의 국민이 예상하고 원했던 대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234표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재밌는 것은 무효로 분류된 7표다. 이것들은 찬성을 의미하는 '가'라고 쓰고는, 그 위에 '○' 또는 '「」'를 그려 넣어 '㉮' 또는 '「가」'로 고의적인 무효표를 만든 것이다. 탄핵 투표 전에 야당과 비박계는 투표 후 폰으로 사진을 찍어두기로 했다. 무기명으로 진행하는 투표에서 만에 하나 탄핵이 부결될 경우, 사진을 공개해서 자신의 결백(?)을 공개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짐작하기 쉽다.


'부' 또는 '否'라고 쓰고 싶지만, 일단 '가' 또는 '可'라고 쓰고 사진을 찍은 뒤에 '○' 또는 '「」'를 써넣어 무효표를 만들어 사실상 반대한 것이다. 탄핵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찬성표 수만 세어 200표를 넘어야 한다는 규정을 악용한 꼼수다. 탄핵을 지지한 야당이나 비박계 의원의 소행이겠으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조차 바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탄핵 직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조사기관에 따라 78.2~81%의 국민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를 포함한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234명의 찬성은 정확히 78%이며 무효표 7표까지 포함하면 80.3%인 셈으로 정확하게 여론조사의 결과와 일치한다. 지난 10월 29일부터 시작되어 7차에 걸친 광화문 촛불집회는 국민이 주권을 직접 행사하는 광장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이 직접 민주주의가 간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의회에서 정확하게 민심을 대변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으나 관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주 통쾌하다.


유사한 일이 지난달 미국에서도 있었다. 여론조사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실제로는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였다.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와 플로리다 같이 선거인단이 많은 주가 결정적이었다. 여론조사에서는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답했으나 실제로는 트럼프에게 표를 준, 소위 '샤이(Shy) 트럼프 지지자'들 때문이라는 것이 언론의 분석이다. 자신의 지지가 떳떳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떳떳하지 않은 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지는 않았으나 이민으로 이루어진 다인종 국가 미국에서 각종 차별에 대해, 얼마나 엄격하게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1961년부터 시행된 '인종, 종교, 피부색, 출신 국가에 따른 고용차별 금지'에 대한 행정명령은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법이며 정의다. 하지만 이런 법과 정의에 따르고 싶지 않은 미국인들이 바로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이다. 인종주의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자들이 트럼프를 당선시켰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선자(僞善者, hypocrite)라고 부른다. 악을 품고 있으면서 선을 가장한 채,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고의적인 무효표를 만든 국회의원과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절대 마음속은 드러내고 싶지 않지만, 들키지만 않는다면 나쁜 짓도 마다하지 않는 부류다.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더라도 철부지 시절을 떠올리면 나도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없어도 있는 척하고, 몰라도 아는 척하고, 수치스러운 짓을 했으면서도 안 한 척했으니까.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이해한 척 고개를 끄떡였던 미국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부끄럽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면서도 당당히 저항하지 못했던 과거가 생각나면 지금도 괴롭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처신했던 흐뭇한 기억은 스스로에게 자랑스럽다. 이도 저도 아닌 경우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거에는 들키지만 않으면 수치를 몰랐으나 지금은 나밖에 모르는 사실도 부끄럽기만 하다.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광장 민주주의로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어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헌재에서도 탄핵 결정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미국이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로널드 레이건처럼 연예인에 가까운 트럼프는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강경론자나 인종주의자들 위주로 행정부를 채우고 있고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철없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그런 증거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트럼프가 펼칠 국수주의에 편승해서 미국의 주식시장은 활황이다. 자신에게 이익만 되면 정의도 얼마든지 뿌리칠 사람들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얼마든지 있다. YS가 칠푼이라고 일갈한 박근혜를 끼고 그녀의 대중적 인기와 지역주의에 편승해서 호가호위한 사람들도 일신의 영달을 위해 정의를 저버린 사람들이다. 이제 미국이 그럴 참이다. 반인륜적 트럼프에게 붙어서 미국의 정신에 반하는 정책으로 개인의 영달을 추구할 인물들로 행정부가 채워지고 있다. 한국의 1년은 미국의 10년이라고 했던가. 항상 미국을 쫓아가던 한국이 드디어 미국을 추월했다는 느낌이 갑자기 왜 들까.


미국이 한국의 광장 민주주의를 따라 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하하하, 농담이다.


▼ 트럼프 당선 후에 일반 학교에 이런 낙서가 자주 등장한다. 미국에서 살아가야 할 자식들을 생각하면 괜한 걱정은 아니다.


▼ 평소 이런 주장을 하는 인사들이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서고 있다. 그의 당선에 기여했던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이나 크리스 크리스틴 뉴저지 주지사 같은 인문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것도 비슷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김종인도 그랬다.


▼ 트럼프 당선 후 KKK와 같은 전국적 조직을 가진 인종차별 단체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실도 문제다.


<후기>

결점이 없는 완전한 인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문제는 결점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결점을 감추는 사람이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결점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알면 고치면 되지만, 모르면 고쳐질 가능성조차 없습니다. 이민자로 살아본 경험에 비추어 최근 두 나라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공통점을 찾아보았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될 트럼프와 한국의 대통령인 박근혜의 공통점은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오바마가 미국출생이 아니라며 출생증명서를 공개할 것을 수 년 동안 끈질기게 주장했던 트럼프는, 오바마가 출생증명서를 공개한 후에도 사과는커녕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세 차례의 담화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탄핵 가결 후 오늘까지도 최순실은 자신의 시녀에 불과한 인물이었다며 전근대적인 사고를 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보기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는 점에서 같은 부류가 아닐까요?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  (0) 2017.01.09
아들과 바둑, 그리고 하사비스  (0) 2017.01.09
Dynamic Korea  (0) 2016.12.06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자!  (0) 2016.11.21
반동(反動)의 시대  (0) 2016.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