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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

뉴스는 대부분 자극적이다. 자극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뉴스도 상품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과 마찬가지 이유로 눈에 잘 띄도록 하기 위해서 자극적일 필요는 충분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바카라로 수만 불을 잃었다는 것보다는 어쩌다 당긴 슬롯머신에서 수십만 불이 쏟아졌다는 기사가,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거나 부동산으로 도널드 트럼프 같이 거부가 되었다는 기사가, 도박이나 주식, 부동산 투자 잘못으로 파산했다는 기사보다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당연하다. 뉴스의 소비자는 독자지만 수익은 광고주로부터 온다. 독자가 많은 뉴스나 시청률이 높은 방송에 광고가 몰리고 수익은 커진다. 주식투자 대박기사에는 증권회사의 광고가 몰리지만, 주식실패로 자살한 사람의 기사에 광고하는 회사는 없다.


이민도 마찬가지다. 이민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뉴스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실패보다 성공한 사례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반박할 수도 없다. 구체적 통계도 없으나 굳이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기준도 쉽지 않은 탓이다. 분명한 것은 이민 변호사 같은 이민관련 업소가 광고를 하기에는 이민성공사례 기사가 가장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이민사회는 뉴스에서 흔히 보는 사례와는 달랐다. 특히 LA지역에서 경험했던 것은 자신의 선택이라 누구 탓을 할 수 없기에, 표현만 하지 못할 뿐 후회하며 마지못해 살아가는 분들도 많았다. 한국에서의 편했던 생활을 그리워하듯 추억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해외입양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최소한 엊그제 방영한 KBS '추적 60분, 수감번호 '2275' 나는 누구입니까 - 해외입양의 민낯'을 보기 전까지는. 몇 년 전 SBS를 통해 알려진 '워싱턴DC에서 노숙하는 쌍둥이 자매(관련 글 보기)'와 같은 사례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미국(한국에서 입양된 아이의 70% 이상)이나 유럽의 중류층 이상의 유복한 가정에 입양되어 훌륭한 성인이 되었을 거라고 믿었던 것은, 장관이 되었거나 운동선수가 된 입양아의 성공사례들만 접한 것이 원인일 거다. 그러나 양지만 존재하는 세상사란 있을 수 없다. 햇빛이 강할수록 그림자의 음영도 짙어지는 법이다. 방송에서 소개된 크리스가 바로 그랬다. 1976년생의 크리스는 두 살 때 미국 아리조나로 입양되어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았는데, 양부모가 시민권에 필요한 서류절차를 끝내지 않고 죽는 바람에 무국적자가 되었다가 범죄를 저질러 한국으로 강제 추방된 케이스였다.


이민국 직원은 인천공항의 입국심사대에 그를 데려다 놓고 돌아갔고, 한국말도 못하고 돈 한 푼 없이 갈 곳도 없는 그는 공항에서 보름을 노숙했다고 한다. 결국 강남 테헤란로의 은행을 어설프게 털다가 잡혀서 은행강도 혐의로 복역하고 있다. 그보다 더 기막힌 사연은 킴 크레이그(Kimberly Craig, 한국명 민정희) 씨의 경우다. 1973년 여섯 살에 입양된 그녀는 두 번의 파양을 거치는 힘든 삶을 살았다. 역경을 이겨내고 대학을 마쳐 공무원으로 일하며 결혼도 해서 두 딸을 가진 그녀는 자신을 버린 나라 한국을 평생 원망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은 딸이었다. 한국에 호감을 지녔던 딸, 인디아는 더 늦기 전에 뿌리를 찾아보기를 권했고, 그녀는 3개월 일정으로 자신의 뿌리를 찾는 여행을 계획했다. 그녀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권 신청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다. 이왕 계획한 여행을 취소할 수 없던 그녀는 한국여권을 회복시켜 영주권자로 한국을 찾는다.


6살 때의 희미한 기억으로 자신의 뿌리를 수소문하던 중에, 그녀의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간 사실을 알게 된다. 뿌리가 미국에 있는 줄도 모르고 한국에서 찾았던 그녀가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택시에 여권과 영주권이 든 수첩을 놓고 내리는 바람에 잃어버린 것이다. 여권을 재발급 받고 영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에 커다란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영주권을 포기하는 과정을 거쳐야 서류를 진행할 수 있다는 행정절차 때문이었다. - 관련법규가 복잡해서 여기서 다룰 문제는 아니다.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그녀는 한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3년째 한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여행자의 자격으로라도 미국을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입양했던 양부모의 무지도 무시할 수 없겠으나, 그보다도 한국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더 크다는 것이 방송의 내용이었다. 입양아 한 명 당 2만 불의 수입이 생겼던 입양기관과 정부는 상품을 택배로 보내듯 아이를 배송하기 바빴을 뿐, 아이에 대한 사후관리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아이가 시민권을 받았는지, 양부모에게 학대받지 않고 잘 지내는 지에 관심이 없고, 잘 사는 나라에 입양 보내면 좋은 가정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만 강조했다는 것이다. 인구과잉으로 산아제한을 하던 시절이니 불쌍하게 태어난 자국민을 해외로 내보내기에만 급급했던 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돈벌이에만 급급했을 뿐 사후관리에 그토록 무책임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한국말도 전혀 못하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이, 한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되어 이렇듯 아무 대책 없이 추방되어 한국으로 오는 사람이 1년에 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


<후기>

이 프로를 보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이들에게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돕는 교회가 있기는 하지만, 여건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역이민이나 은퇴계획을 가진 분들을 만나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탈북자나 다문화 가정을 봉사 대상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원하는 기관도 많아서 그런 분들을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고 섣불리 접근하다는 오해 사기에 십상입니다. 뉴스나 신문에서 보는 것과 현실은 차이가 큽니다.


이런 분들을 돕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바로 역이민자들인 우리입니다. 말도 통하고 그들을 이해하는데도 그들 나라에 살아본 우리가 약간의 힘만 보태도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뜻있는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대한민국의 수치스러운 과거


 감옥에 있는 크리스가 방송 기자에게 보낸 편지


 킴 크레이그의 입양당시 여권


 시민권이 없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경범죄로 추방된 입양 한인들을 돌보는 목사


 미국 국적이 아닌 것을 몰랐던 입양아 출신 한국계 미국인들이 말하고 있다. 입양부모들이 고인이 되어 방법이 없다는 그들이 절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보다 훨씬 못했다. IR-3는 입양부모가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직접 방문하는 경우 발급하는 비자로 이 경우에는 아이가 바로 시민권자가 된다. 그런데 IR-4는 아이를 택배로 상품 보내듯 입양기관에서 비행기에 태워 보내는 경우다. 양부모가 공항에서 아이를 받고, 나중에 시민권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양부모의 무지로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즈음에 가장 많은 아이들이 수출(?)되었다.


 아동 시민권법이 개정된 2001년 이전에 입양된, 15,0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국적확인이 안 된다고 한다.


 황당한 일을 당한 이들에게 누군가의 도움은 삶에의 구원이 될 것 같다.


 모든 이민자들이 윤택한 삶을 살지 않듯, 모든 입양아들이 행복한 생활을 영위한 것도 아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 탓이라고 여기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실패한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진 빚을 갚는 것이 은퇴한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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